정부의 임시 공휴일(10월 2일) 지정으로 이번 추석이 장기 연휴가 되면서 편의점 안전 상비약 품목 확대 문제가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편의점 가맹본부 3사(CU, GS25, 세븐일레븐)가 이달부터 안전 상비약 중복 구매를 막기 위한 방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24시간 미운영 매장에 안전 상비약 발주 제한 조치를 하면서 연휴 기간 상비약 구매가 어려워질 거란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안전상비의약품 약국 외 판매 제도(이하 안전 상비약 제도)’는 약국 영업 외 시간에 국민들의 의약품 구입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2012년 도입됐다. 병원과 약국이 영업하지 않는 시간의 공백을 해결하자는 취지다. 당시 보건복지부가 제정 당시 6개월 후 품목을 재조정하기로 했지만, 판매 품목은 10년째 제자리다.
최근 대한약사회 등이 편의점의 관리 부실과 오남용 위험 등을 이유로 맞서자, 편의점들이 관리·감독을 강화하면서 편의점에서 안전 상비약을 구매하기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편의점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편의점에서 팔 수 있는 상비약은 4개 질환군 13개 품목으로 ▲해열진통제(타이레놀 160㎎·500㎎) ▲어린이용 해열진통제(어린이 부루펜시럽·어린이용 타이레놀정·어린이 타이레놀 현탁액) ▲종합감기약(판콜에이·판피린) ▲파스(신신파스·제일쿨파프) ▲소화제(베아제 2종·훼스탈 2종) 등이다.
미국에선 150여 개 성분 의약품 3만 종류가 약국 밖에서 판매되고, 일본도 2000종류 의약품을 약국 밖에서 살 수 있다는 걸 고려하면 턱없이 적다.
6일로 늘어난 추석 연휴를 앞두고 소비자들 사이에선 위급 상황 발생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병의원과 약국이 장기간 휴업하면서 연휴 도중 아이가 갑자기 배탈이 나는 등의 일이 발생하면 문 여는 약국을 찾아 헤매야 해서다.
만 6세 자녀를 둔 김 모(42)씨는 “명절에 아이들이 과식하면 설사를 하거나 배탈이 날 수 있는데 지사제를 구하려면 약국에 가야 해서 너무 불편하다”면서 “되도록 상비약을 구비해 두는 편이지만 만약 약이 떨어지거나 하는 비상사태에 약을 살 수 있게 편의점에서 다양한 종류의 약을 팔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 국민 편의를 위해 편의점 상비품 판매 품목을 더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나왔다. 편의점 안전 상비약은 심야 시간대 공백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병의원 접근성이 떨어지는 도서·산간 등 의료 인프라 열악 지역에서는 약국 대체재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소아과 부족 현상 등 의료대란이 거듭 일어나는 상황에서 편의점 안전 상비약은 위급 시 꼭 필요한 대안이기도 하다.
소비자공익네트워크가 올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편의점 안전 상비약 구입 경험이 있는 응답자의 62.1%가 ‘품목 수가 부족해 확대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또 지사제, 화상치료제, 제산제 등 질환군을 확대하고 기존의 해열진통제와 감기약도 품목을 추가하자는 응답이 많았다.
하지만 대한약사회 측에서는 약 판매는 편의성보다는 안전성이 우선이라고 반박한다. 응급실에 가야 할 환자가 대신 약을 먹고 상태가 더 악화하는 등 오남용 문제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판매 주체인 편의점의 관리 태만도 문제 삼고 있다. 최근 한 시민단체가 전국 편의점(1050개)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비약을 판매하는 편의점 10곳 가운데 9곳이 판매준수사항을 위반하고 있었다. 동일 품목을 한 번에 2개 이상 판매하거나 사용 시 주의사항을 게시하지 않는 식이다.
이에 편의점 가맹본부 3사는 이달 1일부터 자정 노력의 명목으로 관리 강화에 나섰다. 1인 1회 1품목 판매 준수를 위해 동일 점포에서의 초과·중복 구매 불가 시스템을 구축했고, 24시간 운영을 하지 않는 가맹점에는 안전상비의약품 발주를 아예 차단했다.
염규석 편의점산업협회 부회장은 “약국이 문 닫는 심야 시간대와 명절에 편의점에서의 안전상비의약품 판매가 집중되는 만큼 가맹본부들의 안전상비의약품 관리 정비는 편의점의 사회적 기능 강화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안전 상비약 품목 확대를 두고 찬반이 첨예한 만큼 신중한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시민 수요와 전문가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품목 확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