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담배 회사 KT&G(033780)가 액상형 전자담배를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KT&G는 2019년 5월 ‘릴 베이퍼’라는 액상형 전자담배를 냈다가 ‘폐 질환 논란’을 겪으며 1년여 만에 판매를 중단하고 단종했는데요. 이번엔 형태는 궐련형, 실상은 액상형인 담배를 새로 냈습니다.

6일 담배업계에 따르면 KT&G는 지난달 10일 액상형 전자담배 ‘에임 베이퍼’를 출시하고, 같은 달 16일부터 본격적인 판매에 나섰습니다. 궐련형 전자담배 기기 신제품 ‘릴 에이블’ 전용 스틱으로 출시됐지만, 여기에는 담뱃잎(연초 및 연초고형물)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에임 베이퍼' 등 KT&G의 궐련형 전자담배 전용스틱. /연합뉴스

담배사업법에서 전자담배는 니코틴이 들어간 용액을 기화해 흡입하는 액상형 전자담배와 연초 및 연초고형물을 전용 기기에 가열해 사용하는 궐련형 전자담배로 나뉩니다.

한때 전자담배계의 아이폰으로 불렸던 ‘쥴’이 액상형 전자담배에, ‘아이코스’가 궐련형 전자담배에 속합니다.

업계에선 당장 ‘액상형 전자담배’를 다시 팔고자 하는 KT&G의 묘수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니코틴이 포함된 액상만을 사용하는 액상형 전자담배이면서 겉은 궐련형 전자담배 전용스틱으로 낸 탓입니다. 에임 베이퍼의 신고·판매 자체도 궐련형 전자담배로 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KT&G는 지방세법 등 세법을 파고들었습니다. 세법상 전자담배는 궐련형과 기타유형으로만 나눈다는 점에 착안해 궐련형으로 신고했습니다.

여기에는 전용스틱 에임에 ‘에임 베이퍼’ 외에도 연초를 포함하는 ‘에임 리얼’, ‘에임 그래뉼라’가 포함됐다는 점이 이용됐습니다.

KT&G 측은 “정부 규제 당국과 6개월 넘게 협의를 거쳐 결정한 사안”이라는 설명이지만, 궐련형으로 지위를 확보한 에임 베이퍼는 풍부한 연무량을 강점으로 내세우며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실제 KT&G는 지난달 9일 궐련형 전자담배 기기 신제품 릴 에이블 출시 행사에서 “에임 베이퍼는 궐련형 전자담배의 단점인 연무량을 개선한 제품”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열에 반응해 기화하는 글리세롤과 프로필렌글리콜을 액상의 주성분으로 쓰는 액상형 전자담배는 담배를 찌는 형식인 궐련형 전자담배와 달리 풍부한 연무량이 장점입니다. 덕분에 궐련형 전자담배의 단점인 부족한 연무량을 채우는 용도(릴 하이브리드)로도 사용돼 왔습니다.

그래픽=손민균

문제는 KT&G가 출시한 액상형 전자담배 에임 베이퍼가 궐련형으로 인식돼, 과거 불거졌던 액상형 전자담배의 유해성 논란을 가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지난 2019년 9월부터 액상형 전자담배와 관련된 폐 질환 사망자가 미국에서 잇따라 보고되면서 시장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보건복지부도 쥴을 포함한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해 “사용 중단을 강력 권고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대마 성분을 액상에 녹이는 비타민E아세테이트가 폐에 들러붙는다는 결론이 났고, 국내 일부 액상형 전자담배 액상에서도 비타민E아세테이트가 검출됐습니다.

이후 액상형 전자담배 쥴은 2019년 국내 진출 1년 만인 2020년 시장에서 철수했고, KT&G도 쥴의 대항마로 출시한 ‘릴 베이퍼’를 같은 시기 단종했습니다.

업계에선 “단종됐던 KT&G의 액상형 전자담배가 신종 궐련형으로 돌아온 것”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KT&G 측은 “에임 베이퍼는 기본적인 외관뿐만 아니라 작동 메커니즘도 기존 궐련형 전자담배와 동일하기 때문에 궐련형 전자담배로 분류됐다”면서 “에임 베이퍼에는 폐 질환 논란을 빚은 비타민E아세테이트 등이 전혀 첨가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유해성 논란에 선을 긋고 나선 것이죠.

하지만 정부의 금연정책은 비상이 걸리게 됐습니다.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에임 베이퍼라는 신종 궐련형 전자담배까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궐련형의 단점을 채운 액상형 전자담배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궐련형으로 팔려도 되는지 점검해 봐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