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디지털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기술로 매개된 경험이 인간의 직접 경험을 대체하고 있다. 여행을 하거나, 대면 소통, 직접 그림 그리기, 디즈니월드에서 줄 서기 등의 경험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경험이 소멸하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까.
인류 지성사 연구자인 저자는 ‘경험의 멸종’에서 직접 경험이 사라진 요즘 세대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이제는 많은 아이들이 자연, 놀이, 음악, 언어에 대한 첫 경험이 스크린 등 기술을 통해 매개되는 세상에서 커가고 있다. 그들의 장난감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반응을 기록한다. 베이비 모니터는 그들을 지켜본다. 기기는 그들을 추적하고 모니터링한다.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온라인 아이디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든다. 그들은 디지털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 속에서, 온라인 세계를 지배하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공유를 거의 의무화한 곳에서, 경쟁과 지속적인 표현이 일반적이고 대면 상호작용의 가능성은 낮으며 익명의 괴롭힘이 쉬운 곳에서 성장한다. 직접 경험을 잃어 가는 아이들은 3초의 유튜브 동영상도 지체하지 못하는 조급한 사람으로 자란다. 전 세계 청소년 53%는 자신이 선호하는 기술을 잃느니 ‘후각을 잃는 편을 선택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저자는 기술 매개 경험이 직접 경험을 추월함으로 오는 부작용이 있다고 보고 있다. 가상 체험을 통해서 실제 경험을 모방하면서, 육체적 경험을 통해 얻는 이득을 포기하게 된다. 친구를 만나지 않는 10대들이 생겨나며 기다림과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감정의 무뎌짐 등을 경험한다.
현실에서 수많은 시도와 실패를 경험하는 것은 성장에 필요한 중요한 도구다. 현실 세계는 혼란과 마찰로 가득 차 있다. 실제 경험은 언제나 우연적이고 계산되지 않으며, 따라서 자신의 시도가 실패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데이터를 통해서 최적화된 기술 경험은 다르다. 기술 세계는 사용자가 실패할 가능성이 최소화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다. 저자는 “기술 사용자들은 이 매끄러운 세계에서 고통과 실패가 삭제된 경험으로 실제 경험을 대체한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불편함과 동시에 인간의 조건이 되는 그 현실의 경험들까지 함께 제거해나가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는 “관심은 가장 희귀하고 순수한 형태의 관대함”이라고 말한다. 물리적으로 구현된 존재로서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즉 같은 공기를 마시고, 말로 하지 않은 서로의 감정을 느끼고, 서로의 몸짓에 공감하는 것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 요소라는 게 저자 생각이다. 그는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이런 모든 요구를 충족시킬 수는 없다”면서 간접 경험의 한계를 경고한다.
일상 곳곳에서 멸종되는 직접 경험을 살려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의견이다. 인공지능(AI) 발전과 함께 디지털 도구 사용 빈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이지만, 여전히 여행을 하고 친구들과 대화하고 그림을 그리는 일의 중요성 역시 커질 것이다. 기술로 매개된 가상의 커뮤니티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물리적 실제인 공공 영역에서 지켜야 할 규범에 둔감해지며, 타인과 교류하는 능력을 더욱 상실하게 된다. 저자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우리’를 회복해야 하며, 멸종의 시대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이에 저항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크리스틴 로젠 지음|어크로스|364쪽|1만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