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남부 안탈리아(Antalya)는 고대 문명과 현대 문화가 교차하는 도시다. 660km 길이의 해안선을 따라 세계 최다인 202개의 블루 플래그 인증 해변, 로마 제국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아스펜도스 극장, 오스만 시대 주택이 즐비한 칼레이치 구시가지까지. 안탈리아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복합 문화도시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최다 블루 플래그 해변…지중해 청정 휴양지
지난달 초 이스탄불에서 약 1시간 남짓 비행 끝에 안탈리아에 도착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지중해의 푸른 바다와 붉은 지붕이 이어진 절벽 도시. 안탈리아는 단지 풍경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도시였다. 수천 년을 관통한 유산과 오늘의 삶이 겹쳐진 풍경을 접한 관광객들의 미소에는 안탈리아에 대한 기대감이 묻어났다.
안탈리아가 단순한 역사 유적지를 넘어 세계적인 휴양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탁월한 자연환경에 있다.
튀르키예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안탈리아는 현재 202개 해변이 국제 환경인증 ‘블루 플래그’를 획득했다. 이는 단일 지역 기준 세계 최다 기록이다. 블루 플래그는 수질, 안전, 환경관리 등 100여 개 항목을 충족한 해변에만 부여되는 인증으로, 유럽 여행자들이 청정 해변을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다.
이와 함께 튀르키예 전체는 2019년 기준 463개 해변이 블루 플래그를 획득하며 청정 해변 보유국 세계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연평균 기온 21도, 연중 300일 이상 햇살이 지속되는 안탈리아는 오랜 시간 유럽인들에게 ‘신들의 휴양지’로 불려왔다. 최근에는 튀르키예 지속가능 관광 프로그램 인증을 받은 숙박시설도 늘어나며 친환경 여행지로의 입지도 강화되고 있다.
◇로마 문명의 흔적...아스펜도스와 시데
안탈리아를 찾는 또 하나의 이유는 고대 문명 유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아스펜도스(Aspendos)가 있다. 로마 시대의 웅장한 원형극장을 중심으로 발전한 이 고대 도시는 오늘날까지도 가장 잘 보존된 로마 극장의 하나로 손꼽힌다.
2세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시기에 건립된 이 원형극장은 최대 2만 명까지 수용 가능한 규모로, 오늘날까지도 오페라·발레 공연장으로 활용된다. 인근에는 당시의 아고라, 수로, 분수, 바실리카 등이 남아 고대도시의 면모를 보여준다.
특히 수로 시스템은 고대 기술의 정수로, 바위에 새긴 수력 타워와 물탱크는 오늘날까지도 구조적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아스펜도스는 2015년부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도 등재되어 있다.
안탈리아에서 동쪽으로 약 80km 떨어진 해안도시 시데(Side) 역시 고대 팜필리아의 주요 항구 도시였다. 시데는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이후 로마 제국 시기를 거치며 번영을 누렸다.
아폴로 신전, 로마 극장, 바실리카 등 주요 유적이 바닷가와 함께 어우러져 있어 관광객들에게 고대와 해양 풍경을 동시에 제공한다. 바다와 맞닿은 도시 특유의 개방감과 중세적 분위기가 공존하는 시데는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전통과 낭만이 깃든 구시가지 ‘칼레이치’
안탈리아의 중심에는 또 하나의 명소가 있다. 바로 칼레이치(Kaleiçi)라 불리는 구시가지다. ‘성 안의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이곳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이어진 성벽과 붉은 지붕의 전통 가옥, 좁은 골목길과 고풍스러운 항구가 어우러져 있다.
돌로 포장된 좁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빨간 기와지붕을 얹은 오스만풍 목조 가옥과 정원, 하얀 벽에 핀 부겐빌레아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가장 유명한 하드리아누스의 문(Hadrian’s Gate)은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방문을 기념해 기원후 130년에 세워진 대리석 아치로, 지금도 칼레이치의 상징처럼 도시의 입구를 지키고 있다. 이외에도 시계탑, 오래된 모스크와 교회, 로마·비잔틴·오스만 제국의 흔적이 공존하는 건축물들이 역사적 시간의 깊이를 더한다.
칼레이치의 밤은 낮과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해 질 무렵, 붉게 물든 하늘 아래 고대 항구에 정박한 요트들은 고요한 지중해 풍경과 어우러지며 낭만적인 야경을 만든다.
◇유럽 골퍼들의 성지...17개 챔피언십 코스 갖춘 ‘벨렉’
안탈리아는 해변과 유적뿐 아니라 세계적인 골프 관광지로도 부상하고 있다. 특히 벨렉(Belek) 지역은 11개 골프클럽, 17개 챔피언십 코스를 갖추고 있으며, 일부는 야간 라운딩도 가능하다.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유럽에서는 대표적인 골프 여행지로 널리 알려진 이유다.
닉 팔도가 설계한 코넬리아 골프 클럽을 비롯해 고급 리조트와 연계된 골프장은 수준 높은 골프 코스와 인프라를 자랑한다. 국제골프투어운영자협회(IAGTO)가 선정한 ‘유럽 최고의 골프 목적지’에도 이름을 올렸다.
벨렉은 다양한 국제 대회를 유치했다. 기자가 찾은 이때도 DP월드 투어 터키항공오픈이 열리고 있었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개최된 이 대회는 유럽투어의 주요 대회 중 하나로,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이곳을 찾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6년간 중단됐던 이 대회는 올해 다시 벨렉에서 부활했다. 레그넘 카리야 골프 클럽(Regnum Carya Golf Club)에서 열렸으며, 프랑스의 마르탱 쿠브라(Martin Couvra)가 최종 우승을 거머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