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순찰로봇이 서울 한 시장에서 순찰을 돌고 있다. /이롭로보틱스 홈페이지 캡처

인공지능(AI) 기술을 지방자치단체가 현장 업무에 폭넓게 도입하고 있다. 인건비 투입 없이 24시간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을 활용해 불 꺼진 전통시장에서 화재 감시를 하고, 홀로 사는 어르신이 위험에 처하지는 않았는지 관찰한다. 불법 주정차나 금연 구역 흡연자를 단속하기도 한다. 다만 일부 제품은 ‘이름만 AI’인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불 꺼진 심야 전통시장 지키는 ‘화재 순찰 로봇’… 119 접수도 이제 AI가

28일 서울시에 따르면 ‘화재 순찰 로봇’은 마포농수산물시장, 남대문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 로봇은 자율 주행 방식으로 심야에 불이 꺼진 시장을 순찰하고, 열화상 카메라로 50도 이상의 높은 온도를 감지하면 시장 관계자에게 경보를 보낸다. AI가 영상을 분석해 화재 위험을 판별하기도 한다. 119에 자동 신고하는 기능도 있고, 고체 에어로졸 소화 장치로 초기 진화 작업도 할 수 있다.

2023년 12월부터 4개월간 광장시장, 마장축산시장, 남구로시장, 까치산시장에서 시범 운영했을 때 85건의 화재 위험 요인을 포착해 화재를 막았다.

서울종합방재센터에서 시범 운영 중인 ‘AI 콜봇’을 활용해 모니터링을 하는 모습. /서울시 제공

서울시는 큰불이 나거나 집중호우로 갑자기 119 신고가 폭주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AI 콜봇’을 전국 최초로 도입했다. 서울종합방재센터에는 보통 12명, 신고가 몰릴 때에는 32명이 119 신고를 접수한다. 그런데 대형 재난이 발생했을 때에는 119 신고가 몰려 처리하지 못했는데, AI 콜봇을 도입하면 ‘AI 상담원’에게 긴급한 상황을 전달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마치 상담원처럼 신고자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사고 유형과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긴급하다고 판단되면 119 접수 요원에게 우선적으로 연결해준다. 현재는 접수 요원이 걸려오는 전화를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신고가 폭주할 때에만 AI 콜봇이 연결된다. 지난 3월 시범 운영을 시작해 4개월간 1만1434건의 신고를 처리했고, 이 중 ‘긴급’으로 분류된 것은 2250건이다.

현재 AI 콜봇과 대화하면 말투나 음성이 어색해 AI라는 점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서울시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챗GPT처럼 자연스러운 상담이 가능하게 하고, 평상시 119 신고 전화도 AI 콜봇이 받아 접수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내년 하반기 중 시범 사업을 실시하겠다는 목표다.

홍대 앞 레드로드에 설치된 재난안전전광판에 인파 혼잡도 현황이 표출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제공

이태원 참사 이후 많은 인구가 밀집하는 곳에는 인파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지능형 폐쇄회로(CC)TV가 도입됐다. 영상을 AI가 분석해 1㎡에 몇 명이 서 있는지를 1초 단위로 측정할 수 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좁은 곳에 몰리면 자치구 재난안전상황실과 서울시, 소방, 경찰 등에 상황을 전파한다.

이태원 참사 다음 해인 2023년 11월 29일 새벽 홍대 앞 클럽 거리에서는 AI 인파관리시스템이 “현재 인파 밀집 주의 단계입니다. 안전 사고에 유의하시어 질서 있게 이동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경고 방송이 두 차례 나왔다. 당시 이곳에 모인 인파는 약 5만명으로 추산됐다.

한 어르신이 '효돌이'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울 관악구 제공

◇어르신 건강·안부 챙기는 ‘손자 대행’ 로봇 효돌이·효순이

어르신 돌봄에도 AI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서울시는 복지재단 사회적고립가구지원센터가 제공하는 ‘스마트 돌봄 서비스’는 지난해 4만4923가구가 이용했다. AI와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해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게 하는 서비스다.

서비스 중 ‘AI 안부 확인’은 AI가 자동으로 전화를 걸어 어르신이 식사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불편한 곳은 없는지 확인하고 동주민센터 담당자가 알 수 있게 한다. 또 휴대전화 이용 정보, 전기 사용량을 분석해 안부를 확인할 수도 있다.

말하는 로봇 인형 ‘효돌이’ ‘효순이’도 보급 중이다. 동작구는 이 AI 반려 로봇에 대해 “챗GPT 방식으로 양방향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하다”며 “손주 역할을 톡톡히 한다”고 설명했다. 어르신에게 먼저 말을 걸어 다양한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관악구는 초보 부모들이 24시간 육아 상담을 할 수 있는 AI 상담사 ‘코이’를 지난달 시범 도입했다. 서비스를 체험한 한 주민은 “사람 상담사에게 말하기 어려운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어 좋았다”는 후기를 남겼다.

AI 부정주자 단속 시스템이 거주자가 등록한 차량이 아닌 다른 차량이 들어오자 빨간불을 켜고 단속하고 있다. /강남구 제공

◇금연구역에서 담배에 불 붙이면 AI가 “흡연 멈춰주세요”

AI는 ‘단속’의 영역에도 들어왔다. 강남구는 지난해 거주자 우선 주차 구역에 인근 식당이나 카페 방문객 차량이 몰래 발레파킹(대리 주차)하는 ‘얌체족’을 막으려 AI를 활용한 부정 주차 단속 시스템을 도입했다.

기존에는 구청 직원들이 단속을 하더라도 견인차를 불러 부정 주차한 차량을 빼내는 데 오래 걸려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이 시스템은 주차면에 설치된 카메라가 어떤 각도에서도 차량 번호판에 적힌 숫자를 인식할 수 있다. 거주자 차량이 아닌데 주차하려 하면 빨간불이 들어오고 단속 안내 음성을 내보낸다.

서울 서초구는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 인근 등 금연구역 3곳에 ‘서초 AI 흡연 제로’ 안내판을 설치했다. 가로 40㎝, 세로 18㎝, 높이 28㎝ 크기로, 흡연 관련 민원이 자주 들어오는 곳 어디에나 설치할 수 있다. 안내판에 탑재된 카메라는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인식해 “우리의 소중한 가족들이 힘들어요. 흡연을 멈춰주세요”라는 경고 방송을 내보낸다.

서초구 관계자는 “단속원이 14명으로 많은 편이지만 지역이 넓어 한계가 있고, 야간에는 단속 공백이 발생한다”며 “AI는 연중무휴, 24시간 작동한다”고 했다.

AI 페트병 무인 회수기. /서울 은평구 제공

◇AI 기기라며 4000만원에 판매되기도

AI와 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새로운 서비스도 도입되곤 한다. 서울 은평구는 지난달 불광2동 주민센터와 역촌동 주민센터에 AI 기반 페트병 무인 회수기를 시범 설치했다고 밝혔다. 재활용하기에 좋은 투명 페트병과 재활용이 어려운 유색 페트병을 구분하고 자동으로 파쇄하는 기능을 갖췄다.

은평구 측은 조달청이 이 기기를 ‘혁신 제품’이라고 등록했고, 은평구는 신청을 해서 선정이 되어 설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기기를 만든 업체는 조달청 홈페이지에 “관제 소프트웨어를 제공해 수거 정보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기기 1대 가격은 396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