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중구 충무로에 있는 면적 1300㎡의 도로에 대한 사용료로 연간 15억원(추정치)을 우정사업본부에 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인천 부평구는 비슷한 이유로 부개동에 있는 면적 694㎡의 도로에 대한 변상금 7200만원을 우정사업본부에 냈다고 한다. 시민 편의를 위해 확장한 도로에 포함됐던 일부 땅에 대한 재산권을 우정사업본부가 요구하고 나선 데 따른 것이다.
이처럼 공공기관이 행정자산에 대한 재산권을 요구하면서 지자체와 갈등을 빚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사용료를 내야 할 처지에 놓인 지자체들이 공공기관을 상대로 변상금 부과 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행정력 낭비라는 의견과 함께 적법한 부과라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관리비 안 주면서 사용료 요구” vs “비용 안 걷었다 ‘경고’”
공공기관의 행정자산 사용료를 두고 갈등을 빚은 지자체는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을 비롯해 대구, 제주 등이 있다. 이들 지자체가 사용 중인 공공기관의 행정자산은 모두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활용되고 있다.
수도권이 경우 우정사업본부 소유의 땅을 도로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사용료를 두고 양측이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대구의 경우 한국농어촌공사의 저수지 인근 부지를 두고 갈등을 빚었고, 제주는 제주항공청 부지에 설치된 공원이 문제가 됐다.
이런 양측의 갈등은 공공기관이 이전까지 지자체에 부과하지 않았던 사용료를 내라고 한 게 발단이 됐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도로 파손이 발생했을 때 유지·보수는 모두 자체 예산으로 해결해 왔다”며 “이런 유지·보수 비용도 청구한 적이 없었는데 땅 사용료까지 내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지자체 관계자 역시 “재산에 대한 사용료를 주장하려면 이전에 관리 비용을 지원했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렇게 공공기관들이 지자체에 부지 등의 사용료를 부과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1년 국유재산법 시행령이 개정된 이후부터라고 한다. 국유재산법에 따라 지자체는 5년 단위로 도로, 하천, 공원 등을 포함한 행정재산을 공공기관의 허가를 받아 사용해 왔다.
그런데 시행령 개정으로 그동안 없었던 사용료 감면 규정이 신설됐다. 개정 시행령은 해당 재산을 매입하는 것을 전제로 한 사용료 감면 기간을 1년으로 제한한다. 공공기관은 이를 근거로 행정재산을 매입하지 않는다면 사용료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이런 법 개정 이전까지는 묵시적으로 사용 허가에 합의하는 관행이 있었다”고 했다.
공공기관 역시 할 말은 있다. 지자체에 비용 부과를 하지 않았다가 징계를 받는 등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22년 1월 소속기관인 제주항공청에 대한 감사 결과, 제주항공청이 소유한 땅을 제주시가 무상으로 이용하게 했다며 관련 업무 담당자 2명에 대해 경고 조치를 하라고 했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업무에 대한 책임 소지를 가리게 될 처지에 놓이다 보니 관련 법에 따라 조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자체 “법 개정 필요”… 국토부·기재부 “수용 곤란”
지자체들은 공공기관과 이런 불필요한 갈등으로 행정력을 낭비하지 않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서울시는 전국시도지사협의회를 통한 대정부정책건의로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에 법 개정을 요청했다. 대정부정책건의는 지자체의 정책건의 이후 17개 시도 의견을 조회한 뒤 전부 동의하면 관계부처에 통보되고, 관계부처가 의견을 답한다.
서울시는 기재부에 현재 관련 법들이 이해상충 관계에 있다고 주장했다. 공유재산법에서는 국가가 공유재산을 공공용으로 사용할 때 사용료를 면제받을 수 있다고 돼 있다. 반면 국유재산법에서는 취득을 전제로 1년만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돼 있다는 것이다.
또 국토부에는 도로법에 도로 편입 국유재산에 대한 무상사용 특례조항 신설을 요구했다. 도로에 편입된 국유지 중 국토부 소관 토지는 지자체장이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달라는 취지다. 국토부가 공공기관으로부터 토지 관리권을 받아 지자체에 넘기면 무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재부와 국토부 모두 “수용 곤란하다”고 했다. 기재부는 “지자체가 공용·공공용 등의 목적으로 무상사용할 경우 정부의 정책사업 추진 시 국유지 확보 곤란 등 부작용 우려된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기재부의 의견 등을 고려하면 법 개정 반영이 어렵다”고 했다.
이에 지자체는 공공기관과 소송까지 불사하고 있지만, 성과는 좋지 못했다. 수도권, 대구시, 제주시 등 모든 지자체가 공공기관을 상대로 변상금 부과 처분 무효 확인 소송 등을 제기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자체가 패소했다. 서울시는 1심에서 패소 후 항소심을 진행 중이며, 대구시는 1심과 2심 내리 패소한 뒤 상고하지 않기로 했다. 인천의 경우 아직 1심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