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전 10시 40분쯤 해당 아파트 입주민들이 대공진지 설치를 반대하며 조합과 구청을 규탄하고 있다. /김관래 기자

최근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한 신축 아파트 옥상 일부에 군사 시설인 대공진지가 설치되고 있다. 입주민들은 “시설을 철거하고 옥상을 원상 회복하라”며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이에 대해 군(軍), 구와 재개발조합은 “관련 법에 따라 사전 협의를 마친 사안”이라고 했다. 그동안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4일 조선비즈가 취재했다.

◇아파트 단지 내 1개동 옥상에 대공진지 설치 중… 입주민 “사기 분양”

해당 아파트 단지는 재개발로 지은 곳인데 작년 8월 입주가 시작됐다. 지난 2일 오전 아파트 입주민 약 25명은 강북구청 앞 인도를 점거하고 재개발 조합장과 강북구를 규탄하는 시위를 했다. 이들은 ‘내 집 위 군사시설 누가 허락했나’ ‘대낮에 벌어진 옥상 무단 점령 공사’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사기 분양 강북구청” “군사시설 반대한다”라고 외쳤다. 입주민 대표인 김모(44)씨는 “이 상황을 묵인할 수 없다. 입주민 동의 없는 시설은 철거하고 원상 복구해야 한다”고 했다.

군사 시설인 대공진지는 이 아파트 단지 내 1개 동 옥상에 설치되고 있다. 그런데 입주민들은 군사 시설이 아파트 옥상에 설치된다는 것을 모르고 분양받았다고 한다. 일반 분양으로 입주한 손모(56)씨는 “옛날 군사정권도 아니고 적어도 설치될 수 있다는 정도는 얘기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다른 입주민 이모(50)씨는 “조합에서 아무런 설명이 없다. 소통이 없어서 답답하다”고 했다.

서울의 한 고층 빌딩 옥상에 대공 무기가 설치돼 있다. /국방뉴스 유튜브

◇軍·구청·재개발조합 “법에 따라 사전 협의… 보안 문제로 입주민에 못 알려"

이에 대해 군, 구청과 재개발조합은 “대공진지 설치는 법에 따라 사전 협의를 마친 사안”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번에 설치되는 대공진지는 지난 2021년 수도방위사령부와 협의를 마친 사안이라는 게 재개발조합의 설명이다. 아파트 층수를 높이는 대신 군사 시설을 설치하는 조건으로 재개발 사업 인가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대공진지 설치 비용은 조합이 기부채납 방식으로 부담하기로 했다. 조합장은 “해당 시설물이 들어오는 게 재개발 사업 인가 조건이었다”며 “군 시설물이라 보안 서약 때문에 주민들에게 공고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강북구 관계자도 “군사시설 설치에 반발하는 입주민들은 사전에 공고해야 하지 않았냐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군사 보안 위반이 된다”고 했다.

수도방위사령부도 “재개발 등으로 대공방어 작전에 제한이 발생하면 보완 시설 설치를 조건으로 (아파트 건설) 사업에 동의하고 있다”며 “국가 방위를 위한 작전 활동에 양해를 구한다”고 했다.

이 아파트에 설치되고 있는 대공진지는 군인들이 상주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군은 이 진지에 실제로 장비가 반입되는지, 배치된다면 어떤 장비인지 등은 군사 기밀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서울 전역에 대공진지 설치 가능… 전문가 “재산권 제약 최소화돼야”

현재 서울 전역은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에 따라 대공방어 협조 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대공방어 협조 구역에서 특정 고도(77~257m)보다 높게 들어서는 건물은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 심의 결과를 반영해 건축 허가를 받아야 한다.

군은 원활한 작전 수행을 위해 해당 건물에 대공진지 설치와 같은 사항을 요구할 수 있다. 이런 시설물은 이미 서울 일부 고층 빌딩과 아파트 옥상에 설치돼 있다. 서울 시내 곳곳에는 ‘빌딩 GOP’라 불리는 대공방어 소초가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아파트 단지 내에 군사시설이 들어온다면 입주민들은 재산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군사적 필요성을 살리면서 재산권 제약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