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따뜻해진 다음부터 해가 진 뒤 저녁이 되면 아파트 옆 산책로 주변에서 들개 짖는 소리가 들려요. 산책하고 있으면 가끔 보이기도 하는데, 들개가 대여섯 마리씩 떼를 이뤄 돌아다니는 데 크기도 커서 무서워요. 그래서 밤늦게는 밖에 못 나가게 됐어요.”
서울 은평구 응암동 백련산 인근 아파트에 살고 있는 오모(70)씨가 지난 23일 산기슭을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1일 서울시에 따르면 산에 살던 들개가 떼 지어 인근 주택가에 출몰하면서 시민들이 불안을 호소하는 사례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이런 민원이 제기되면 자치구가 들개 포획에 나선다.
하지만 이른바 ‘들개맘’이라 불리는 동물 애호가들은 들개 포획에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포획된 들개를 대부분 안락사시키는 게 문제라고 주장한다.
◇서울시에 “들개 포획해달라” 민원 연간 500여 건
서울시에 따르면 백련산 외에도 관악산이나 북한산 등 서울 시내 산 곳곳에서 “몰려다니는 들개를 목격했다”는 주민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에는 ‘들개를 목격했다’ ‘들개가 돌아다녀 무서우니 잡아달라’는 민원이 매년 500여 건씩 접수되고 있다.
서울 안에는 들개 195마리 정도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22년부터 작년까지 서울에서 들개가 662마리 포획됐으나, 아직 남아 있는 들개가 있다는 것이다. 시 관계자는 “유기견이 꾸준히 발생해 들개가 되고, 들개끼리 번식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들개맘이 포획틀 망가뜨려“ vs “포획 방해한 적 없어”
들개 관련 민원이 접수되면 자치구가 포획틀이나 마취총으로 생포하는 방법으로 들개 포획에 나선다. 그런데 이른바 ‘들개맘’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들개 포획을 방해하고 있다고 자치구 관계자들은 주장한다.
들개맘은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캣맘’처럼 들개 출몰 지역에서 물이나 사료, 간식을 챙겨주는 사람들을 말한다. 주로 여성이지만 일부 남성도 있다. 들개 때문에 불안을 느끼는 오씨는 “60대 여성이 거의 매일 오후 6~7시쯤 산기슭에서 들개에게 먹이를 주더라”고 했다.
은평구 관계자는 “들개맘이 포획틀 연결 고리를 망가뜨려 문이 닫히지 않게 하는 경우도 있다”며 “마취총을 사용하면 항의 민원을 넣는다”고 밝혔다. 관악구 관계자는 “포획틀 안의 들개 유인용 먹이통을 들개맘이 파손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기자가 만난 들개맘들은 포획 자체에 반대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지난달 26일 백련산에서 만난 들개맘 A씨는 “남아 있는 들개를 포획해 중성화 수술 후 입양까지 연계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들개를 입양한 적이 있다고 했다.
또 들개맘 B씨는 “들개는 추위·더위·폭우 등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며 “포획된 들개를 입양해 제대로 보호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 “입양 대신 안락사는 잘못돼”…“모두 안락사 아냐”
일부 들개맘들이 포획 작업을 방해하는 것은 ‘포획 이후’ 안락사 때문이라고 한다. 포획된 들개는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로 이송돼 입양을 기다린다. 들개는 유기견으로 분류되며, 20일 이내 입양이 이뤄지지 않으면 안락사된다.
서울시 기준으로 지난해 유기 동물 4589마리 가운데 40.8%가 입양되거나 보호자에게 돌아갔다. 11.5%는 안락사됐고 34.5%는 자연사했다. 약 절반이 보호소에서 죽음을 맞은 것이다. 보호소에 수용되는 유기 동물 대부분은 개라고 한다.
들개맘 A씨는 “지금까지 포획된 들개는 모두 안락사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 자치구 관계자는 “입양자는 품종, 크기, 사회성 등을 고려해 들개 입양이 쉽지는 않다”면서도 “모든 들개가 안락사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먹이 끊기면 민가로 내려와” vs “오히려 민원 줄어”
들개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에 대해서도 들개맘과 자치구 의견이 갈린다. 들개맘 C씨는 “먹이 주기를 통해 들개가 사람과 친해진다. 덕분에 들개가 사람에게 직접적 피해를 끼친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또 “먹이가 끊기면 들개가 민가에 더 가까이 다가와 민원이 제기될 것”이라고 했다.
자치구 측은 반대로 설명한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북한산에서 활동하던 들개맘 한 분이 사정이 생겨 먹이를 못 주게 된 적이 있었다”면서 “들개들이 먹을 게 없어지자 더 이상 산 밑으로 내려오지 않아 민원이 생기지 않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포획한 들개를 안락사시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김해정 전 동아보건대 동물반려학과 교수는 “들개는 다른 야생동물에게도 위협”이라면서 “들개맘들이 진정으로 들개를 위한다면 포획을 한 다음 입양이 되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