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오전 8시 30분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1가 한 건설 현장. 1만㎡ 부지에 지하 4층~지상 20층 규모 오피스 빌딩을 짓기 위한 터파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현장 옆 보도 위에 놓여 있는 주황색 기계가 눈길을 끌었다. 이름은 ‘지표투과레이더(GPR, Ground Penetrating Radar)’. 전파를 지하로 보내 반사되어 돌아온 신호를 분석해 땅속 구조를 탐지하는 장비다. 이날 영등포구는 GPR 장비를 투입해 싱크홀 대비 땅속 점검 작업을 벌였다.
영등포구로부터 지하 공동(空洞·빈 공간) 탐지 용역을 받은 광신이엔씨의 이태호(58) 전무는 GPR 장비를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 모니터에는 지하 5m까지 층별로 어떤 것이 들어차 있는지가 나타났다.
이 전무는 “이렇게 앞으로 밀면… 모니터 보이시죠? 자동으로 땅속 상황을 볼 수 있고, 기록도 됩니다”라며 “맨 위가 아스팔트죠? 그 밑은 골재구요, 신호가 우그러진 곳은 돌 무더기에요”라고 설명했다.
◇GPR 모니터에 ‘X자’ ‘역 U자’ 나타나면 땅속 빈 공간 의심
국토교통부 지하안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부터 작년까지 5년간 864건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이틀에 한 번꼴로 전국 어디에선가 도로가 밑으로 꺼진 셈이다.
이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장비가 GPR이다. 사람이 밀고 가며 조작하는 ‘핸디형’과 자동차에 매단 채 가동하는 ‘차량형’으로 나뉜다.
핸디형은 2D 단면 이미지를 제공한다. 차량형은 넓은 지역을 스캔해 3D 이미지로 보여준다. 차량형은 하루 최대 20㎞ 구간을 탐지할 수 있어 큰길에 주로 사용되고, 핸디형은 좁고 복잡한 인도 지하를 탐지할 때 많이 쓰인다.
장비 1대 가격은 핸디형 3000만~1억5000만원, 차량형 2억~15억원이다. 이 전무는 “차량형이 시각적으로는 좋지만 정밀도가 떨어지는 구간이 있어 핸디형을 함께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날 영등포구는 터파기 공사가 한창인 현장 인근 지하 공동 탐지를 위해 먼저 핸디형 GPR 장비를 투입했다. 가로, 세로 각 1m 정도인 이 기계는 50~100㎝ 너비로 지하가 어떤 상황인지 파악해 냈다.
GPR 장비에 부착된 모니터에 ‘X자’나 거꾸로 된 ‘U자’ 형태가 나타나면 땅속이 비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광신이엔씨 관계자는 “모니터에서 이상 신호가 감지되면 원격 프로그램으로 다시 확인해 실제로 공동인지 판단한다”고 말했다.
영등포구는 핸디형 장비로 한 차례 땅 밑을 들여다본 뒤 차량형 장비를 투입해 싱크홀 탐지에 나섰다. 500m 구간을 탐지하는 데 3분쯤 걸렸다. 이날 점검에서는 공동이 발견되지 않았다.
◇서울시 ‘지하 20m까지 계측’ 신기술 도입 추진
영등포구는 관내 도로 밑을 GPR을 이용해 5년에 1회 점검하고 있다. 작년에는 142㎞를 조사해 지하 공동 17개를 발견해 싱크홀을 예방했다. 올해는 1억4400만원을 들여 66㎞ 구간을 조사할 계획이다.
그러나 예산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많은 지자체는 싱크홀 사전 탐지를 못 하고 있다. 2020년부터 작년까지 5년간 서울시·부산시·광주광역시·울산시·경북도 등 5곳만 장비를 투입해 지하 현장 조사를 실시했다.
싱크홀 사전 탐지 구간도 차이가 크다. 작년 서울시는 5100㎞, 부산시는 1014㎞ 길이의 도로를 조사했지만, 광주시는 38㎞, 울산시는 6㎞를 조사하는 데 그쳤다. 또 GPR 장비를 자체 보유하고 있는 곳은 서울시·부산시뿐이다.
GPR 장비에 기술적 한계도 있다. 비가 내려 땅이 젖으면 전파가 수분에 반사돼 탐지 결과가 부정확하다. 또 최근 대형 싱크홀은 GPR이 탐지해낼 수 있는 지하 2m보다 더 깊은 곳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GPR 장비는 지하 5m까지 구조를 파악할 수 있지만, 2~5m 구간은 정확도가 떨어진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신기술인 ‘지반 침하 관측망’을 설치해 지하 약 20m까지 지층 변동을 계측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명일동 싱크홀이 발생한 지하철 9호선 4단계 1공구 현장에 이달 중 설치될 예정이다.
해외에서는 다른 기술도 쓰인다. 미국 플로리다주와 이스라엘은 위성을 이용한 합성개구레이더(InSAR) 기술을 도입했다. 위성이 동일 지점을 여러 차례 촬영한 뒤 지표면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방식으로, 대규모 지반 변형을 탐지하는 데 시도되고 있다.
류동우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도심의 광범위한 영역을 모두 조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굴착이나 누수 등에 취약한 지하, 지질 환경을 미리 선별하고 지도화해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