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목아, 6363원으로 뭘 사 먹으라는 거냐. 구내식당 휴무 반대!”
4월 초부터 행정안전부·기획재정부가 입주해 있는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앞에 국가공무원노동조합이 내건 현수막 문구다. 6363원은 공무원이 매달 받는 급식비 14만원을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한 달간 출근하는 평균 일수인 22일로 나눈 금액이다. 대체 무슨 사연일까.
이 현수막은 정부가 이달부터 시행 중인 ‘자영업자 살리기’ 정책 때문에 걸렸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민생경제점검회의에서 공식화한 정책이다. 공무원과 직원들에게 구내식당 대신 밖에서 밥을 사 먹어 주변 상인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라는 취지다.
이 때문에 이달부터 정부 부처, 지자체,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청사 구내식당 문을 정기적으로 닫고 있다. 공무원들이 받은 공지에 따르면 정부세종청사는 매달 첫째 주·셋째 주 금요일은 1·2·5·6·중앙동이, 둘째 주·넷째 주 금요일은 7·9·11·13·14·16·17동의 구내식당이 쉰다. 2·13·17·중앙동 구내식당은 주말·공휴일에도 문을 열었는데, 이젠 중앙동에서만 주말에 밥을 먹을 수 있다. 이런 조치는 이달 1일부터 6월 30일까지 석 달간 이어진다.
‘구내식당 정기 휴무’는 과거에도 종종 실시됐다. 주로 경기 침체로 소상공인들이 위기를 겪을 때였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에는 월 1회, 코로나19 때에는 주 1회 쉬었다.
그때에도 공무원 사회에서는 ‘비싼 돈 주고 밖에서 밥을 사 먹어야 한다’는 불만이 나왔다. 이번에도 일부 공무원 사이에서 “정부가 밥값을 줄 것도 아니면서 비싼 외식을 강요한다”는 말이 나왔다. 공무원노조는 행안부와 정부청사관리본부를 찾아 이런 의견을 전달했다. 행안부는 비판을 감안해 휴무일을 최소화했다는 입장이다.
공무원들이 불만을 갖는 원인은 세종시의 비싼 물가에도 있다. 세종시와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구시가지인 조치원을 제외한 세종시에서 김치찌개 백반 1인분 가격은 1만원이다. 전국 1위인 대전(1만200원)과 비슷하고, 서울(8500원)보다 18% 비싸다. 세종시의 삼겹살 200g 가격은 2만3700원인데, 서울(2만276원)은 물론 다른 모든 시·도보다 비싸다.
물가 상승률도 가파르다. 통계청에 따르면 세종시의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2.6% 올랐다. 전국 17개 시·도 중 1위다. 전국 1위 상승률 기록은 작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4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다. ‘외식’ 품목이 포함된 개인서비스 물가 상승률은 4.4%로 역시 전국에서 가장 높다.
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A씨는 “구내식당에선 4500~5000원이면 한 끼를 해결하는데 청사 바깥에 나가면 순댓국밥 한 그릇에도 1만원은 기본”이라며 “(세종시 특성상) 청사에서 식당까지 멀어 점심시간 1시간 내에 밥 먹고 복귀하기도 촉박해 불편하다”고 말했다.
청사 인근 상인들은 매출 증가가 잘 체감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식당 업주는 “구내식당이 금요일에 쉬지 않느냐”면서 “세종시 공무원들은 원래도 금요일에는 서울로 올라가 버리고 세종시에 잘 없다”고 말했다. 또 여러 건물이 1개의 건물처럼 이어져 있는 세종청사 특성 상 공무원들은 휴무가 아닌 옆 건물 구내식당을 가도 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큰 불편을 못 느낀다는 반응도 있다. 공무원 B씨는 “어쩌다가 한 번 구내식당이 닫는 것이기 때문에 딱히 강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노조는 사소한 일에 문제를 제기하지 말고, 임금 협상 등 정말 필요할 때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