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정문 맞은편에 걸려있는 국가공무원노조의 현수막. '구내 식당 휴무 반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박소정 기자

“상목아, 6363원으로 뭘 사 먹으라는 거냐. 구내식당 휴무 반대!”

4월 초부터 행정안전부·기획재정부가 입주해 있는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앞에 국가공무원노동조합이 내건 현수막 문구다. 6363원은 공무원이 매달 받는 급식비 14만원을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한 달간 출근하는 평균 일수인 22일로 나눈 금액이다. 대체 무슨 사연일까.

이 현수막은 정부가 이달부터 시행 중인 ‘자영업자 살리기’ 정책 때문에 걸렸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민생경제점검회의에서 공식화한 정책이다. 공무원과 직원들에게 구내식당 대신 밖에서 밥을 사 먹어 주변 상인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라는 취지다.

이 때문에 이달부터 정부 부처, 지자체,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청사 구내식당 문을 정기적으로 닫고 있다. 공무원들이 받은 공지에 따르면 정부세종청사는 매달 첫째 주·셋째 주 금요일은 1·2·5·6·중앙동이, 둘째 주·넷째 주 금요일은 7·9·11·13·14·16·17동의 구내식당이 쉰다. 2·13·17·중앙동 구내식당은 주말·공휴일에도 문을 열었는데, 이젠 중앙동에서만 주말에 밥을 먹을 수 있다. 이런 조치는 이달 1일부터 6월 30일까지 석 달간 이어진다.

‘구내식당 정기 휴무’는 과거에도 종종 실시됐다. 주로 경기 침체로 소상공인들이 위기를 겪을 때였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에는 월 1회, 코로나19 때에는 주 1회 쉬었다.

그때에도 공무원 사회에서는 ‘비싼 돈 주고 밖에서 밥을 사 먹어야 한다’는 불만이 나왔다. 이번에도 일부 공무원 사이에서 “정부가 밥값을 줄 것도 아니면서 비싼 외식을 강요한다”는 말이 나왔다. 공무원노조는 행안부와 정부청사관리본부를 찾아 이런 의견을 전달했다. 행안부는 비판을 감안해 휴무일을 최소화했다는 입장이다.

2016년 9월 28일 정부세종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조선DB

공무원들이 불만을 갖는 원인은 세종시의 비싼 물가에도 있다. 세종시와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구시가지인 조치원을 제외한 세종시에서 김치찌개 백반 1인분 가격은 1만원이다. 전국 1위인 대전(1만200원)과 비슷하고, 서울(8500원)보다 18% 비싸다. 세종시의 삼겹살 200g 가격은 2만3700원인데, 서울(2만276원)은 물론 다른 모든 시·도보다 비싸다.

물가 상승률도 가파르다. 통계청에 따르면 세종시의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2.6% 올랐다. 전국 17개 시·도 중 1위다. 전국 1위 상승률 기록은 작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4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다. ‘외식’ 품목이 포함된 개인서비스 물가 상승률은 4.4%로 역시 전국에서 가장 높다.

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A씨는 “구내식당에선 4500~5000원이면 한 끼를 해결하는데 청사 바깥에 나가면 순댓국밥 한 그릇에도 1만원은 기본”이라며 “(세종시 특성상) 청사에서 식당까지 멀어 점심시간 1시간 내에 밥 먹고 복귀하기도 촉박해 불편하다”고 말했다.

청사 인근 상인들은 매출 증가가 잘 체감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식당 업주는 “구내식당이 금요일에 쉬지 않느냐”면서 “세종시 공무원들은 원래도 금요일에는 서울로 올라가 버리고 세종시에 잘 없다”고 말했다. 또 여러 건물이 1개의 건물처럼 이어져 있는 세종청사 특성 상 공무원들은 휴무가 아닌 옆 건물 구내식당을 가도 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큰 불편을 못 느낀다는 반응도 있다. 공무원 B씨는 “어쩌다가 한 번 구내식당이 닫는 것이기 때문에 딱히 강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노조는 사소한 일에 문제를 제기하지 말고, 임금 협상 등 정말 필요할 때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