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 빨리 (알몸을) 가리세요!”
17일 오전 9시 20분쯤 서울 성북구 삼선동 성북구청 앞에서 경찰관 3명이 다급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치며 이불을 들고 뛰어왔다. A씨가 구청 앞에서 춤을 추다가 하의가 내려가자 그대로 상의까지 탈의하고는 나체로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약 40초간 추격전 끝에 A씨는 옷을 입었다.
A씨는 성북구 하월곡동에 있는 성매매 업소 집결지, 이른바 ‘미아리 텍사스’에서 일하는 성 노동자다. A씨 등 60여 명은 이날 오전 5시 30분쯤부터 성북구청 앞 인도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였다. 앞으로 2~3명씩 천막을 지키며 24시간 농성을 이어갈 계획이다. 경찰은 A씨를 공연음란죄 등의 혐의로 입건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미아리 텍사스 성 노동자들은 ‘이주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집회 참가자는 ‘성북구청은 우리 성 노동자들의 현실에 맞는 이주대책을 강구하라’ 등이 적힌 팻말을 목에 걸었다. 한 여성은 분홍색 잠옷을 입고 구청 앞 인도에 드러눕기도 했다.
◇300곳 성업하던 미아리 텍사스, 지금은 60~70곳 남아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미아리 텍사스 성매매 업소가 있는 지역이 ‘신월곡 1구역’으로 지정돼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건설은 이곳에 주상복합 건물 10동을 지어 아파트 2244세대, 오피스텔 498세대, 생활숙박시설 198실을 공급할 계획이다. 기존 주민 이주는 2023년 10월부터 이뤄졌으나, 철거 작업은 작년 12월에야 시작됐다.
성매매 업소 철거는 전날(16일)에 처음으로 2곳만 이뤄졌다. 성북구청과 서울북부지법은 전날 이곳을 대상으로 명도 집행에 나섰다. 다만 인부가 와서 철거 작업을 한창 벌이고 있는 대로변 상가와 달리 성매매 업소 집결지에는 플라스틱 의자와 쓰레기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햇빛이 들지 않는 좁은 골목을 따라 늘어선 업소 문에는 빨간색 스프레이 페인트(래커)로 ‘공가(빈집이라는 뜻)’라고 적혀 있었다.
가까운 곳에서 수퍼마켓을 운영하는 상인은 “과거 여기엔 300곳 가까운 성매매 업소가 영업을 했는데, 지금은 60~70곳만 남았다. 그런데 사람이 거의 찾지 않는다”면서 “안 나가고 끝까지 버티겠다는 곳도 있지만, 일부는 다음 달까지 떠난다는 말도 들린다”고 했다.
◇성매매 업소에서 먹고 자는 성 노동자들… “철거하면 갈 곳 없다”
성북구청 앞 집회에 참여한 성 노동자들은 성매매 업소가 철거되면 갈 곳이 없다고 말한다. 업소는 영업장 겸 집 역할을 하는데, 가진 돈이 거의 없어 이사할 곳도, 일할 곳도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전날 업소가 철거되어 잠옷 차림으로 쫓겨난 A씨는 분홍색 잠옷 차림에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성북구청 앞에서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말했다. 여전히 성 노동자로 일하는 B(61)씨는 “이제는 식당에서도 써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아리 성 노동자 이주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성 노동자 C(43)씨는 “아직 이주하지 못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사연이 있다”면서 “(성북구나 서울시가) 몸만 누울 수 있는 2~3평짜리 방 한 칸만이라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주대책위는 앞으로 매주 목요일 오전 9시에 성북구청 앞에서 집회를 이어갈 계획이다. 위원회는 앞으로 미아리 텍사스 업소 철거가 이뤄질 때마다 쫓겨난 성 노동자들은 구청 앞 천막에서 머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