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의료, 요양과 돌봄을 지자체가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통합돌봄’ 제도가 내년 3월 말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일선 지자체가 지역 특성에 맞는 통합돌봄 정책과 서비스를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국가와 상급 지자체는 지원 역할을 맡는 방식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본격 시행이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인데 준비가 제대로 되고 있는 지자체가 드물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국 지자체 가운데 통합돌봄 전담 조직을 꾸린 시군구가 8.7%에 그치고 있다.
◇ 내년 3월 말 전국 229개 지자체 ‘통합돌봄’ 시작
통합돌봄의 근거가 되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은 작년 3월 말 제정됐고 시범 기간(2년)을 거쳐 내년 3월 말 시행된다. 지자체가 노쇠·장애·질병·사고 등으로 일상생활 유지에 어려움이 있는 노인·장애인 등을 선정해, 보건 의료·건강 관리·장기 요양·일상 생활·가족 지원 등 정책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연계해 주는 게 골자다.
경기 부천시가 시범 사업을 하고 있다. 결핵과 낙상 갈비뼈 골절로 거동이 어려운 독거노인 A(81)씨가 대상자로 선정됐다. 부천시는 A씨 집 안에 낙상 방지 문턱 단차와 미끄럼방지 매트를 설치하고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도와줬다. 또 보건소 방문 건강 관리·진료 서비스, 도시락·차량 이동·가사 서비스도 지원했다.
서울 동작구에 살고 있는 김모(82)씨는 “밥 먹는 것부터 병원 가는 것까지 지자체가 통째로 거들어준다면 노인이나 장애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전담 조직 만든 지자체 8.7%에 불과… 복지부 “인력 증원 협의해야”
지자체가 통합돌봄의 주축이 되려면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 광주광역시 서구는 통합돌봄 시범 사업을 하면서 ‘통합돌봄국’을 두고 그 아래에 ‘돌봄정책과’와 ‘돌봄정책팀’을 뒀다. 충북진천군도 ‘통합돌봄 1전담팀’을 마련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자체는 아직까지 전담 조직을 구성하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1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229개 시군구 중 통합돌봄을 위한 전담 조직을 꾸린 시군구는 지난해 말 기준 20개(8.7%)에 불과하다.
통합돌봄의 컨트롤타워인 복지부가 지자체 조직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 조례 개정 표준 모델을 만들어 전국에 배포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한편 통합돌봄을 위한 인력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통합 돌봄 시범 사업을 하는 47개 지자체에서 관련 업무를 하는 공무원은 250명 정도다. 지자체 한 곳에 5명꼴인데 이 정도로는 본격 시행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본격 시행을 위해 어느 정도 인력이 필요한지도 제대로 추산되지 않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시범 사업 실시 지역을 대상으로 필요 인력을 검토하고 있다”며 “아직은 숫자를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범 사업 때는 ‘증원’ 아니라 기존 인원의 ‘재배치’를 통해 관련 직원을 두라는 행정안전부의 지침이 있었는데, 내년 법 시행이 본격화하면 인력 증원에 대해서도 협의를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 지자체 85% “통합 돌봄 모른다” 답변… 전문가 “준비 서둘러야”
지자체의 통합돌봄 준비가 늦어지고 있는 배경에는 통합돌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다. 보건복지부 연구용역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해 말 수행한 ‘지자체별 노인 의료-돌봄 통합 지원 운영 현황 분석 연구’에 따르면,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시범 사업의 구체적 내용까지 알고 있다’고 응답한 지자체는 전체 15%에 불과했다. 나머지 85%는 ‘전혀 모르고 있다’ ‘잘 모른다’고 응답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민사회 단체가 지자체에 통합돌봄 준비를 촉구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전북희망나눔재단은 지난달 31일 전북자치도에 “전북도가 통합돌봄의 실질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통합돌봄과’를 신설해, 인력·재정·인프라 등을 확충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요청했다. 전북은 도민 4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지역으로, 전국에서 네 번째로 노인 비율이 높다.
전문가들은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돌봄통합법에는 지자체가 이것저것 하도록 책임과 의무를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막상 현장의 여건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방 공무원들의 조직 정비, 인력 확대 그리고 이를 위한 재정 확충에 더해, 현장 방문을 실질적으로 수행할 주민센터의 기능 격상·협업 등 추진해야 할 과제가 산적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