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모(70)씨가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훈정동 종묘광장공원에서 집비둘기들에 잘게 자른 빵을 먹이로 주고 있다. 서울시는 유해야생동물인 집비둘기에 먹이를 주면 과태료 최대 100만원을 부과할 수 있는 조례를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 ‘먹이주기 금지 구역’이 정해지지 않아 단속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김관래 기자

이달부터 서울시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다가 적발된 시민에게 최고 1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이런 내용의 조례를 도입한 지자체는 전국에서 서울이 유일하다. 비둘기가 너무 많아져 배설물로 각종 피해를 일으키는 상황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그러나 공원에서 비둘기 먹이를 주고 있는 시민들은 과태료 부과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다. 과태료 수준이 다른 법 위반 행위와 비교해 지나치게 높다는 의견도 있다. 또 먹이주기 금지가 비둘기 피해 방지를 위한 실효성 있는 수단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90대 노모와 함께 산책을 나온 이모(74)씨가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집비둘기에 귤을 먹이로 주고 있다. /정두용 기자

◇비둘기에게 빵조각 뿌리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과태료요?”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종묘 앞 공원. 사람도 배가 고파지는 때인 오전 11시 45분쯤 배모(70)씨가 가방을 들고 나무 사이로 들어갔다. 가방 안에서 검정 비닐봉지 두 개를 꺼내 관목 사이에 뿌렸다. 잘게 자른 피자빵 조각과 쌀이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비둘기 수십마리가 일제히 날아와 먹이를 쪼아 먹었다. “구구구구”하는 소리가 공원을 메웠다.

15일 서울시에 따르면 배씨처럼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면 과태료 최고 100만원을 부과할 수 있는 조례가 시행 중이다. 그러나 배씨에게 이 사실을 알려줬더니 “처음 듣는다”며 “비둘기한테 먹이도 마음대로 못 주나”라고 했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내용의 서울시 ‘유해 야생동물 먹이주기 금지에 관한 조례’는 지난 1월 24일 시행됐고, 과태료 부과는 이달 1일부터 가능해졌다. 유해 야생동물에는 비둘기 외에 참새, 까치, 까마귀, 멧돼지, 두더지 등도 포함되지만 개체 수가 지나치게 많은 비둘기가 주요 대상이다. 비둘기 배설물은 강한 산성을 띠어 문화재·건물·차량 등을 부식시키고, 인간이 노출되면 식중독이나 설사, 폐렴을 앓을 수 있다.

조례가 제정된 배경에는 먹이에 따라 달라지는 비둘기 번식력이 있다. 야생에서 비둘기는 1년에 1~2회 두 개씩 알을 낳는데, 먹이가 풍부한 도심에서는 1년에 4~6번 알을 낳는다. 암컷 비둘기 한 마리가 1년간 늘릴 수 있는 개체 수가 먹이를 줄이면 최대 12마리에서 2~4마리로 감소하는 셈이다.

지난 5일 서울역 내에서 집비둘기가 사람이 다가오자 날아가는 모습. 서울시가 ‘유해야생동물 먹이주기 금지 구역’로 지정을 검토 중인 곳에는 서울역이 포함되지 않았다. /김관래 기자

◇서울만 유일하게 비둘기 개체 수 꾸준히 늘어… “먹이 줘서” 추정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례 규정을 실제로 시행하는 것은 전국에서 서울시가 처음이다. 전국 광역 시·도 중 유일하게 서울시만 비둘기 개체 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비둘기 피해 민원이 많은 곳을 관리지역으로 지정하고 매년 개체 수를 조사하고 있다. 서울 관리지역 비둘기 수는 2019년 7233마리에서 2023년 9429마리로 30.4% 늘었다. 반면 전국적으로는 같은 기간 4만5383마리에서 3만89마리로 33.7% 줄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비둘기에 과도한 먹이가 공급돼 개체 수가 많아졌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다만 아직 서울시가 비둘기에게 먹이를 준 사람을 단속할 수는 없다. 먼저 먹이를 줄 수 없는 구역을 지정해야 하는데 아직 행정예고만 이뤄진 상태다. 서울시는 비둘기 먹이주기 금지 구역으로 38곳을 검토 중이다. ▲성동구 서울숲, 중구 남산공원 등 도심 공원 22곳 ▲중구 서울광장, 종로구 광화문광장 등 기반 시설 4곳 ▲여의도, 반포 등 한강공원 11곳 ▲문화유산인 성동구 수도박물관 등이다. 서울시는 “비둘기가 많아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평소 대합실 등에 비둘기가 많이 돌아다녀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 서울역 등 지하철역, 철도역은 빠졌다. 배씨가 비둘기에게 대량의 먹이를 준 종묘 앞 공원 역시 포함되지 않았다.

서울역 역사 안에서 만둣집을 운영하는 나모(29)씨는 “비둘기가 매장 안으로 자주 날아온다. 그때마다 깜짝 놀란다”며 “먹다 남은 음식을 주는 승객들이 있어서 역사 내에도 비둘기가 많다”고 했다. 역사 밖에서 가판대를 운영하는 송모(86)씨는 “비둘기가 매대에 올려진 땅콩을 쪼아댄다”며 “단속을 해 줬으면 하는데, 서울역은 왜 과태료 대상에서 빠진 거냐”고 물었다.

그래픽=정서희

◇담배꽁초 여러 번 버려도 과태료 5만원… 비둘기 먹이 주는 건 처음 걸려도 20만원

개정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과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비둘기 먹이주기 금지 구역에서 먹이를 주다 처음 적발되면 20만원, 두 번째는 50만원, 세 번째부터는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런데 담배꽁초를 무단 투기하는 것은 몇 번이 적발되더라도 과태료가 5만원이다. 승용차를 운전하다 제한속도를 시속 60㎞ 초과하면 과태료 13만원이 부과된다. 사업을 하다가 발생한 폐기물을 무단으로 소각해야 과태료 100만원이 나온다. 종묘 공원에서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을 지켜보던 김모(30)씨는 “먹이는 안 줬으면 좋겠는데, 100만원은 너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먹이주기 금지보다 효과 좋은 ‘불임 먹이’ 줘야”… 서울시는 부작용 우려

동물보호단체는 정책 효과에 의문을 표했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국내에 비둘기 개체 수가 너무 많다”면서도 “일본·이탈리아·영국 등에서도 지정된 장소에서 비둘기에 먹이를 주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개체 수 감소 효과가 크지 않았다”고 했다.

이 대표는 대안으로 “불임 먹이를 주자”고 했다. 벨기에 브뤼셀시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시내 12곳에서 불임 성분이 들어간 옥수수 알갱이를 비둘기에게 줬더니 개체 수가 66% 줄었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시 관계자는 “환경부 ‘집비둘기 관리 지침’을 보면 불임 먹이를 주면 먹이사슬에서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