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월 2일 부산에서 피습을 당한 뒤 헬기를 타고 서울로 이송된 것은 특혜라는 국민권익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다만 국회의원에 적용할 행동강령이 없어 이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반면 이 대표를 헬기로 이송하는 데 관계된 서울대병원·부산대병원 의사는 공직자 행동강령을 위반해 징계를 받게 됐다. 권익위는 공무원과 달리 국회의원은 행동강령을 적용받지 않는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국회에 촉구했다.
정승윤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은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전날 전원위원회는 이 전 대표가 부산대병원에서 서울대병원으로 119응급의료헬기를 이용해 전원(轉院·병원을 옮김)된 사건에 대해 “국회의원에게 적용되는 행동강령이 부존재한다는 이유로 종결했다”고 밝혔다. 청탁금지법에 대해서도 입증할 자료가 부족하며 종결 사유에 포함된다고 봤다.
반면 권익위는 이 대표 전원과 119응급의료헬기 출동 요청 과정에 관여한 서울대병원·부산대병원 의사는 공직자 행동강령을 위반한 사실을 확인했다. 정 부위원장은 “이들에 대한 징계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감독기관인 교육부와 해당 병원에 위반 사실을 통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헬기 출동 과정에서 부산소방재난본부 공무원도 행동강령을 위반해 소방청과 부산시에 이 사실을 통보하기로 했다.
권익위 의결에 따라 이 전 대표와 천 의원은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는데 이 전 대표를 서울로 옮기는 데 관여한 공직자들만 처벌을 받게 된 셈이다.
◇국회의원도 공무원 행동강령 적용돼야 한다는 소수 의견도
원인은 행동강령 유무다. 공직자 행동강령은 ‘부패방지권익위법’에 따라 공직자가 준수해야 하는 윤리규정이다. 공무원 뿐 아니라 공직유관단체 임직원에게도 적용된다. 공직자 행동강령 위반 신고가 있다면 권익위가 직접 조사하고,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감독기관 등에 통보해 징계를 받도록 한다.
이 공무원의 범위에 국회의원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게 권익위 판단이다. 정 부위원장은 “(권익위는 2017년 11월 제정된) 국회 공무원 행동강령에서 국회의원은 제외된다는 입장”이라면서 “국회의원은 행동강령이 부존재해서 조사할 수 없다고 지금까지 진행을 해왔다”고 했다.
이 전 대표 사건을 계기로 공무원 행동강령을 국회의원에 적용하는 것은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킨다는 설명이다. 다만 전원위원회에서 국회의원에게도 공무원 행동강령을 적용해 처리해야 한다는 소수 의견도 나왔다.
정 부위원장은 서울대병원 의사에 대해 “각종 병원에서 가고 싶은 사람이 많아서 어떤 경우에 전원을 받을 것인지 매뉴얼이 있다. 그 지침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되어 특혜 제공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부산대병원 의사는 119응급헬기 출동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권한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요청을 해 알선·청탁으로 행동강령을 위반했다. 권익위는 전원 관련 규정은 위반하지 않은 것으로 봤다. 부산소방재난본부 공무원은 규정을 위반해 헬기를 보내 ‘이권 개입’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
정 부위원장은 ‘이 전 대표는 전원 대상, 헬기 이송 대상이 아니었다고 판단한 것이냐’는 질문에 “규정을 위반한 것은 명백하다”고 했다.
이 전 대표와 비슷한 사례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자주 나타난다는 게 권익위 설명이다. 공무원인 아들이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자 병원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해 치료를 받게 하는 것 자체가 특혜는 아니지만, 순서·절차 위반은 특혜에 해당한다. 정 부위원장은 “이런 경우 공무원인 아들과 치료해 준 의사만 처벌하고, 치료를 받은 아버지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제재 규정이 없다”고 했다.
◇”국회 공무원 행동강령 개정해 국회의원도 적용해야”
권익위가 전날 이 전 대표의 헬기 이송은 특혜라고 발표하자 민주당은 반발했다. 이해식 수석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대통령 부인의 디올백 수수에 대통령과 직무관련성이 없고 신고 의무도 없다며 무죄를 준 권익위가 야당 대표에 대한 응급치료는 유죄라고 말하는 것이냐”라며 “24일 정무위 업무보고를 앞두고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에 대한 물타기용으로 여당에게 재료를 제공하려는 속셈”이라고 주장했다. 천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김건희 여사 방탄을 위한 물타기”라고 했다.
앞서 야권은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수수 의혹’과 관련해 신고 접수 후 법정 기한인 90일이 넘도록 처리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정 부위원장은 “지난 번에 제가 ‘가방 사건은 90일 초과됐다면서 직무유기라고 탄핵을 한다느니 형사 고발을 한다느니 하는 데 헬기 사건은 90일이 지났는데 아무 말씀 안 하시냐’고 했었다”며 “’(이 전 대표의 헬기 이송) 사건도 총선이 끝나서 신속하게 정리하겠다’고 공언했다. 순서대로 처리한 것일 뿐 다른 고려가 없다”고 말했다.
정 부위원장은 국회의원만 행동강령 적용을 받지 안는 데 대해 “대법원장, 헌법재판관, 대법관 모든 분들이 (공무원) 행동강령의 적용을 받는다”고 했다. 이어 “국회 공무원 행동강령에서 국회의원만 누락된 입법 부작위가 된다. 국회에서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이번 기회로 논의해서 국회 공무원 행동강령에 국회의원도 포함된다고 개정을 하든지, 의논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