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재활시설 가온누리 전경. /가온누리

정부로부터 사업비까지 받았던 정신 재활시설 이전 계획이 주민 반발로 ‘백지화’ 위기에 놓이면서 법정 공방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정부가 중증 정신 질환자 시설 확충 계획을 밝힌 가운데 ‘혐의 시설’ 낙인부터 지우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매년 정신질환자와 마약류 중독자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사회적 복귀를 위한 재활 시설 확충이 시급한 상태다. 정부 역시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있지만, 지역 주민 반발이 만만치 않아 난색을 표하고 있다.

◇사업비 받았는데 주민 반발에 ‘불허’…2년째 첫 삽도 못 뜨고 소송 준비

11일 정신 재활시설 ‘가온누리’는 아산시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심판을 제기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 충남도, 아산시 등으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시설을 이전하려던 과정에서 아산시가 건축 인허가 ‘불승인’을 결정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신대호 가온누리 원장은 “기존 시설이 노후화해 안전진단에서 위험하다는 판단을 받고 정부 보조금 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이전을 계획했었다”며 “시비, 도비, 국비까지 다 받은 상태였는데 아산시가 민원으로 갑작스레 건축 허가를 반려했고, 이에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경기 남양주시 마약중독재활센터 경기도 다르크(DARC). /뉴스1

가온누리에 따르면 현재 시설은 10년 전 설립됐다. 신 원장이 오래된 가옥을 매입해 리모델링하며 운영해 왔지만, 세월을 견디지 못해 결국 이전을 결정했다. 당초 2021년 새 건물을 지어 올해 이전을 마무리하려 했지만, 현재 첫 삽도 뜨지 못한 상태다.

신 원장은 “정신보건법상 지자체 단체장이 시설 설립을 장려해야 하는데 지역 주민 반발로 차별하고 있다”며 “입소자들은 언제 이사 가냐고 하는데 소송까지 진행하게 될 처지에 놓여 ‘양치기 소년’이 된 기분”이라고 했다.

아산시 관계자는 “보건소에서 사업비까지 나간 것은 맞는다”면서도 “건축 인허가는 (별도 문제로) 불승인했다”고 말했다.

정신 재활이나 요양원과 같은 시설이 혐오시설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경기도 포천시 한 마을에 노인 요양원이 들어선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지역 주민들은 “정신질환자들이 들어 올 수 있다”며 반대했다. 당시에도 지자체가 건축주를 상대로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고, 법정 공방을 다툰 것으로 알려졌다.

현 추세라면 정부 계획도 제동이 불가피하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 5일 중증 정신 질환자의 일상 회복을 돕는 정신 재활 시설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전국 시·군·구 226곳에 최소 1곳씩 시설을 두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정신 재활 시설이 없는 곳은 102곳(45%)이다. 수용 인원도 약 6900명에 불과해 중증 정신 질환자(약 65만명)의 1% 정도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다.

◇마약류 재활시설도 ‘난항’…”중독 치료 받을 곳 없어진다”

마약 중독 재활센터인 경기도 다르크(DARC)는 지난 10월 남양주시에서 양주시로 시설을 옮겼다.

앞서 지난 4월 남양주 퇴계원에서 남양주 호평동으로 시설을 옮긴 지 불과 반년 만이다. 시설을 이전한 뒤, 다르크는 인근 주민의 민원에 시달렸다. 학교 인근 유해시설이 들어섰다는 이유에서다.

일러스트=정다운

결국 남양주시는 지난 6월 신고 없이 시설을 이전했다며 정신건강복지법 위반으로 경기도 다르크를 경찰에 고발한 데 이어 7월 운영 중단을 골자로 한 행정명령도 내렸다.

다르크 측은 이전하기 전 지자체에 문의한 결과, 운영에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법정공방까지 진행했지만, 결국 백기를 들었다.

임상현 경기도 다르크 센터장은 “현재 양주 시설도 임시 거처이기 때문에 내년 2월 중이면 옮겨야 하는데 마땅한 곳이 없다”며 “시설을 폐쇄하면 기존 입소한 아이들이 갈 곳을 잃어 다시 방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역시 올해 4월 마약 관리 대책 일환으로 주거형 재활시설을 신설·운영하는 정책을 내놨지만, 답보 상태다. 사실상 국내서 유일하게 주거형 재활시설을 운영 중인 다르크가 지자체와 잡음을 빚은 여파다. 새로운 단체 지역은 물론, 지역 선정에도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