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늘어난 평균 수명은 우리에게 축복인 동시에 커다란 부담이기도 하다. 은퇴 후 살아야 할 기간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 2막을 두려워만 할 필요는 없다.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면 인생 전반부만큼, 혹은 그보다 더 풍요로운 후반부를 누릴 수도 있다. 조선비즈는 인생 후반부를 대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 중장년층,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던 20대 때와 같은 포부로 인생 2막을 설계한 40대들의 사례를 소개해 본다. [편집자 주]

“‘내가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되게 많이 드는 거예요. 저희 팀에서 제가 제일 연장자였거든요. ‘다른 걸 준비해야 하지 않나, 뭘 해야 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특별한 기술이 없잖아요. 그래서 나도 기술이 있었으면 좋겠다…세상이 변하는 것에 맞춰 내가 가질 수 있는 기술이 뭘까.”

문과 출신 방송작가로 일하다 40대에 전문성을 갖춘 직업 ‘노코드데이터 AI강사’로 인생 2막을 시작한 김재순씨가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시50플러스재단 중부캠퍼스에서 2023년 11월 14일 40대 직업캠프 1기 수료식이 열렸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제공

83.6세.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한국인의 기대수명이다. KB금융그룹 경영연구소가 지난 26일 발간한 ‘2023 KB골든라이프’ 보고서에 따르면 아직 은퇴하지 않은 가구는 평균 65세에 은퇴하기를 희망한다. 법정 정년(60세)보다 5년 더 일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은퇴하는 나이는 55세로, 법정 정년보다는 5년, 은퇴 희망 연령보다는 10년 빠르다. 반면 노후에 대한 경제적 준비를 시작한 시기는 45세다. 실제 은퇴 나이와 10년밖에 차이 나지 않아 충분히 준비하기에는 부족하다.

은퇴 후 약 4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나가려면 기대수명의 절반 정도인 40대에 접어들었을 때, 즉 ‘두 번째 스무 살’을 맞아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40대 스스로도 느끼고 있다.

하나은행 하나금융연구소가 2021년 펴낸 생애금융보고서 ‘대한민국 40대가 사는 법’에 따르면 40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제는 ‘은퇴자산 마련’(42%)이다. 주거 안정성(36%), 자녀 교육(16%), 자기 계발(6%)보다 앞선다. 그러나 ‘지금까지 얼마나 잘 해결하고 있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자가 평가 결과 은퇴자금 마련 항목은 100점 만점에 45점밖에 얻지 못했다. 낙제점인 셈이다. 자기 계발(44점)도 마찬가지다.

40대가 ‘은퇴 후’를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실제로 은퇴가 눈 앞으로 다가오고 있어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9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많은 근로자가 50세 즈음에 명예퇴직으로 주된 일자리를 떠난다”고 했다. 대학이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취업한 회사를 50세정도까지밖에 다니지 못한다는 뜻이다.

OECD는 한국 통계청 자료를 인용해 “주된 일자리를 떠난 퇴직자들의 연령은 평균 49.3세였고, 평균 근속기간은 불과 12.8년이었으며, 41%는 비자발적으로 일자리를 떠났다”고 했다. KB금융 경영연구소도 2023년 50대의 실제 은퇴 나이는 49세였다고 전했다. 그 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 소득 공백을 막게 된다. 그러나 노후를 위한 경제적 준비를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고 한 응답자 비율은 52.5%로 절반을 웃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지난 5월 40대 서울시민 124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40대 재직자 중 ‘정년까지 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는 응답은 33.8%, ‘정년과 관계없이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다’는 응답은 5.8%로 집계됐다. 10명 중 6명은 정년 전에 현재 일자리를 그만둬야 할 것이라는 불안을 안고 사는 셈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2년 12월 20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시50플러스재단 중부캠퍼스에서 4050세대 인생 전화기 전방위 지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제공

40대 중 현재 직장(일자리)에서 10년 이상 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비율은 34.0%에 그쳤다. 3명 중 2명은 10년 안에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40대들은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위한 지원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근로시간과 겹치지 않을 것 ▲산업 수요를 반영할 것 ▲창업 특화 등이 필요하다고 꼽았다. 또 조사 대상자의 49.8%는 온·오프라인 병행 프로그램을 선호했고, 오프라인 교육은 16.7%가 선호했다.

이르다고 생각되더라도 남들보다 한발 앞서 인생 2막을 준비하는 40대를 위해 서울시는 지원 대책을 마련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12월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50대 뿐 아니라 40대에게도 일자리와 취업 교육, 노후 설계를 지원하는 ‘다시 뛰는 중장년 서울런 4050′ 사업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오 시장은 “4050의 가장 큰 고민인 ‘직업 안정성’과 ‘노후 준비’를 돕겠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가 40대를 대상으로 제2의 인생 준비를 돕는 사업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1년 사이에 성과도 나오고 있다. 지난 14일에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에서 ‘40대 직업캠프’ 1기 수료식이 열렸다. 9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된 ESG평가사, 노코드데이터 AI강사 직무교육에 참여한 1기 수강생 총 60명이 2개월 만에 전문 분야를 갖춘 인재로 양성되어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됐다. 주말에만 강의가 진행되기 때문에 재직자도 참여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