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지난해 6월 청사로 활용하기 위해 매입한 경기도 수원시의 한 건물. 건물 매입에는 지난 2018년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 백혈병 사태’로 내놓은 500억원 중 약 260억원이 투입됐다. 사진은 공단이 매입한 건물 전경. /김양혁 기자

25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에 위치한 한 건물. 건물 외벽 곳곳에는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전선들이 드러나 있었다. 출입문 개폐 장치에는 먼지가 잔뜩 쌓였고, 난관은 녹이 슬었다. 출입구 주변에는 잡초들이 무성했다. 출입구와 주차장 모두 외부 출입이 되지 않게 막혀 있었고, 썰렁한 건물 내부 역시 오랫동안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은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수원역에서 도보로 15분가량 떨어져 있는 이 건물은 지난해 6월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청사로 활용하려고 매입한 곳이다. 공단은 지난 2014년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계획에 따라 인천에서 울산으로 내려갔고 수도권에 새 청사를 짓기 위해 이 건물을 매입했다.

문제는 공단이 지난 2018년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 백혈병 사태’로 내놓은 500억원 중 약 260억원을 투입해 이 건물을 매입했다는 사실이다. 매입가는 건물가 240억원, 부가세와 취득세 약 20억8000만원, 부동산 중개보수 등을 포함한다. 공단은 지난 2020년에도 삼성의 이 기금으로 청사를 매입하려다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매입 후 1년 반이 다 됐지만, 건물은 여전히 ‘휴업’ 상태다. 공단이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은 탓에 운영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르면 서울과 수도권에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청사를 새로 설립하려면 국토교통부 산하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공단은 이에 대한 검토 자체를 하지 않았다. 법을 어기고 청사를 매입한 셈이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지난해 6월 청사로 활용하기 위해 매입한 경기도 수원시의 한 건물.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아 출입구 주변에 자라난 잡초들. /김양혁 기자

운영 주체도 뒤죽박죽이다. 건물 외부에 붙은 폐쇄회로(CC)TV 설치안내문에는 ‘안전보건공단 스마트안전보건기술원 청사 건물’이라고 쓰여 있지만, 유리창 내에 붙은 안내문에는 건물 관련 문의 사항은 ‘미래전문기술원’으로 연락하라고 돼 있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지난해 6월 청사로 활용하기 위해 매입한 경기도 수원시의 한 건물.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아 난관에 녹이 슬었다. /김양혁 기자

여기엔 건물 매입 후 운영 주체에 대한 공단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애초 공단은 건물 운영을 미래전문기술원에 맡기려 했다. 별도 조직까지 새로 만들어 인력 배치도 했는데, 감사원은 ‘미승인 조직·인력’이라고 판단했다. 공단 홈페이지 내 조직도에는 여전히 스마트안전보건기술원이 표기돼 있지만, 별도 직원은 표시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지난해 6월 청사로 활용하기 위해 매입한 경기도 수원시의 한 건물. 건물 매입에는 지난 2018년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 백혈병 사태’로 내놓은 500억원 중 약 260억원이 투입됐다. 사진은 건물 외벽에 정리되지 않은 전선들의 모습. /김양혁 기자

공단은 건물 매입에만 240억원이 투입됐지만, 활용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없는 상태다. 공단 관계자는 “고용부와 운영을 어떻게 할지 협의 중”이라며 “건물 매각이나 다른 방안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등 여러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고 했다.

만약 공단이 매각을 추진할 경우 투입한 비용을 모두 회수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공단 건물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애초 건물 매각을 300억원대로 하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후 공공기관이 250억원 규모로 사들인 것으로 들었다”고 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 역시 “건물 분양이 잘 이뤄지지 않자, 결국 통매각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공단이 사들인 매입가를 그대로 회수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지난해 6월 청사로 활용하기 위해 매입한 경기도 수원시의 한 건물. 건물 매입에는 지난 2018년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 백혈병 사태’로 내놓은 500억원 중 약 260억원이 투입됐다. 사진은 공단이 매입한 건물 전경. /김양혁 기자

포털사이트에서는 허위 분양 정보를 게시한 것으로 추정되는 글들도 여럿 확인된다. 공단이 매입한 건물 완공 이전 일부 층에 대한 임대가 완료됐다는 게시글들이 여럿 올라와 있지만, 인근 공인중개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실제 계약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건물 인근에 새로 지은 건물들에는 ‘임대’라는 플래카드만 붙어 있을 뿐이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공단이 공공기관 이전 절차를 지키지 않고 건물을 매입해 초기 사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감사원 역시 “거액의 기부금이 취지대로 사용되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