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공인중개사 시험을 치르는 도중 급한 용무를 보러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볼일을 참던 응시자가 실수를 했고, 현 규정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등의 사례를 참고해 시험 도중 화장실 이용을 허용하라고 권고했으나, 시험을 주관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수용하지 않았다.
14일 인권위에 따르면 공인중개사 시험은 1교시 100분, 점심시간 후 2교시 100분, 3교시 50분 간 치러진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보는 중 수험자는 화장실에 갈 수 없고, 매 교시가 끝날 때까지 퇴실도 할 수 없다. 화장실에 가려면 ‘시험포기각서’를 제출해야 한다. 다만 설사·배탈 등 긴급한 사정으로 중도에 퇴실했을 경우, 해당 교시가 끝나기 전까지는 다시 시험을 보러 들어올 수 없다.
1950년대에 태어난 A씨는 2021년 공인중개사 자격 시험에 응시했다. A씨는 화장실 이용을 제한하는 규정 때문에 “시험 감독관에게 말도 못하고 억지로 참다가 결국 실수를 했다”며 “시험 중 화장실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생리현상을 억지로 참도록 하는 심각한 인권침해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생리현상으로 인한 고통과 심리적 불안감을 덜어주어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이 지켜지길 바란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산업인력공단은 시험시간이 2시간을 넘는 경우에는 응시자의 화장실 이용을 허용하고 있지만, 공인중개사 시험은 한 교시 시험시간이 최장 100분으로 2시간을 넘지 않아 화장실 이용을 제한했다고 인권위에 해명했다. 또 장애인 수험자나 필기시험·필답형 실기시험 중 시험시간이 긴 경우에는 화장실에 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다른 주요 시험에서는 어떻게 화장실 이용 규정을 두고 있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수능은 수험생이 감독관 동의 하에 화장실을 갈 수 있게 허용했다. 변호사시험, 공인회계사 1차 시험도 마찬가지다. 민간 시험인 토익도 화장실을 갈 수 있도록 했다.
인권위는 시험 중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고 화장실에 가면 시험을 포기하도록 하는 행위는 헌법 제10조에 보장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 일반적 행동 자유권을 침해한다고 봤다. 산업인력공단에는 “시험 당일 갑작스럽게 배탈이 날 수 있다”며 “다수가 응시하고 엄격한 관리가 요구되는 수능에서 화장실 이용을 허용하고 있지만 사회 문제로 제기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단 측에 공인중개사 시험을 비롯한 국가자격시험 도중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게 조치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인권위에 “화장실 이용에 대한 설문조사 등 수험자 의견 수렴을 거친 뒤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인권위는 “공단 이사장이 실행을 담보할 수 있는 구체적 권고 이행계획을 통지하지 않았다”며 권고를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관련 내용을 공표했다. 인권위는 “권고를 수용하지 않은 데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