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형님이요.”
우람한 체형에 터질듯한 뱃살, 한쪽 팔에는 문신을 연상케 하는 토시까지. 꽉 끼는 운동복을 입어 몸매가 다 드러나는 20대 남성은 값비싼 외제 차를 어디서 구했냐는 여자친구의 질문에 인맥을 과시하듯 이렇게 말한다. 그의 별칭은 ‘문신 돼지(문돼)’. 구독자 수 119만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별놈들’에서 만든 동영상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스스로를 ‘99대장’(99년생들 중 싸움을 제일 잘한다는 의미)이라고 칭하며 거들먹거리는 유튜브 속 그의 모습은 “열받지만 재밌다”는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문신 돼지 캐릭터가 등장하는 동영상 상당수가 조회수 100만을 넘었다. 댓글에는 ‘어디서 본 듯한 허세 가득한 사람들의 모습을 똑같이 따라 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인물들의 특징을 극적으로 묘사해 풍자한 콘텐츠가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99대장 나선욱’ 뿐만 아니라 조직 사회에 적응하지 않고 제멋대로 구는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합성어) 직원을 풍자한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 캐릭터도 흥행하고 있다. 이런 캐릭터의 인기 비결은 사회적 지탄을 받는 대상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웃음으로 승화시켜 통쾌함을 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일상생활에서 목격한 불편함, 웃음으로 승화
쿠팡의 OTT(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쿠팡플레이에서 방영하는 SNL 코리아 시즌3의 ‘맑눈광’ 캐릭터도 소셜미디어(SNS)에서 연일 화제다. 맑눈광은 프로그램 속 코너인 ‘MZ 오피스’ 속 등장인물의 별칭이다. 조직사회에서 그동안 금기시됐던 행동을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하는 게 포인트다. 가령 근무 중 에어팟을 착용해 직장 선배들의 지시사항을 제때 듣지 못한다거나, 회식 자리에서 선배가 고기를 굽고 있는데도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있는 행동을 한다.
작년 12월 맑눈광과 그의 선배가 기 싸움을 벌이는 장면만 편집한 유튜브 쇼츠(1분 이내의 짧은 동영상) 누적 조회수는 29일 기준 490만회를 기록했다. 비슷한 내용의 ‘MZ 오피스 진서연 편’은 지난 27일 게시된 지 하루 만에 조회수 216만회를 넘었다. 게시된 영상에는 “조금 과장됐지만 회사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일을 잘 살렸다”며 “진짜 우리 회사에 저런 후배가 있다”는 댓글이 달렸다.
99대장 나선욱과 맑눈광이 등장하는 콘텐츠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목격한 불편한 상황의 특징을 정확히 꼬집어 풍자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회적 문제가 되는 모습을 해학적으로 묘사해 웃음을 주면서도 시민들이 문제가 될 만한 행동들을 재차 비판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문신충’을 연기하는 99대장 나선욱의 인기는 실제 조폭들이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공공연히 세를 과시하고 있는 실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문신을 드러내고 약자에겐 서슴없이 못된 짓을 하면서도 강자에겐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고개를 숙이는 이들의 모순과 허세를 정확히 끄집어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는 평가다.
맑눈광도 MZ세대와 기성세대의 갈등이라는 현상과 맞물려 있다. 당돌함과 개인주의로 무장해 눈치를 보지 않는 신입사원의 모습이 20대들에게 인기라면, 이들과 함께 일하며 속앓이를 하는 40대 직장인들에게는 스트레스가 아닌 웃음을 선사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2020년 발간한 ‘한국기업의 세대 갈등과 기업문화 종합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인 63.9%가 세대 차이를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도 일상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인물들에 풍자적인 요인을 적용한 것이 인기의 핵심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주변에 있을법한 이야기에 풍자적 요소가 가미돼 공감을 사는 것”이라며 “사회적으로 금기시되거나 자제가 요구되는 행동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니 그 과정에서 대리 충족을 느끼는 대중들도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