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학기부터 학부모가 제기하는 민원을 일선 교원이 아닌 학교장을 중심으로 구성된 대응팀이 처리한다. 학교 차원에서 다루기 어려운 민원은 교육지원청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통합 민원팀도 구성한다. 학교장이 교원의 교육활동이 침해받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실태를 반영해 학교장의 책무성도 강화한다.
교육부는 23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교권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했다. 지난달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2년차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며 교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한 달 만에 대책을 마련했다.
◇민원대응팀, 학교로 접수되는 모든 민원 통합 접수…어려운 민원은 교육지원청으로
한국교총에 따르면 현직 교원들은 97.9%가 민원 스트레스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응답했다. 그러면서 교육 활동을 침해하는 학부모 등에 대한 제재 조치를 요구했다. 교육활동 침해 건수는 지난해 3035건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2662건)보다 14% 늘었다. 학부모 등이 제기하는 협박이 늘어나고 있고, ‘정당한 교육활동을 반복적으로 부당하게 간섭’하는 비율(20.8%)도 높은 수준이다.
교육부는 이 같은 민원 처리를 현장 교사가 부담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교원 개인이 아닌 기관이 민원에 대응하는 체제로 개선하기 위해 학교장 책임하에 교감, 행정실장, 교육공무직 등 5명 내외로 민원 대응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각 교육청과 학교가 2학기부터 민원 대응팀을 자율적으로 시범 운영한 뒤 내년부터 본격 시행한다.
민원 대응팀은 학교 대표전화나 홈페이지를 통한 모든 민원을 통합 접수하고, 민원 유형을 분류한다. 단순한 요청은 민원 대응팀이 직접 처리하고, 교직원 협조가 필요한 사안은 교직원이 처리할 수 있도록 연계한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교육활동 침해 가능성이 높은 민원은 학교장이 책임지고 처리할 수 있도록 한다.
개별 학교에서 다루기 어려운 민원은 교육지원청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교육장 직속의 통합 민원팀도 설치·운영한다. 통합 민원팀은 과장급, 팀장급, 변호사 등 전문 인력을 포함해 5∼10명으로 구성된다.
교원에게는 개인 휴대전화로 들어오는 민원 요청에 응하지 않을 권리가 부여된다. 학부모는 앞으로 자녀가 갑작스럽게 결석해야 하는 경우에도 교원 개인에게 연락해서는 안 된다. 학교 민원대응팀을 통해 학교에 연락해야 한다.
인공지능(AI) 챗봇도 활용한다. 교육부는 AI 챗봇을 개발해 단순·반복 민원이나 야간·주말 민원에 응대한다. 지능형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개선해 지각·결석 증빙자료 등을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한다.
◇학교장이 교육활동 침해 은폐 않도록 의무 부여
학부모가 무분별하게 아동학대로 신고하더라도 교원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다.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 법령과 학칙에 따른 정당한 생활지도를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와 구분한다. 교원이 생활지도를 한 것이 아동학대라는 신고가 접수됐을 경우, 지방자치단체나 수사기관이 조사·수사하기 전 교육청 의견을 반드시 듣도록 의무화한다. 또 경찰청과 협의해 교육활동 관련 아동학대를 수사할 때 학교 현장의 특수성과 교원의 직무 특성을 반영한다.
학교장에게는 교육활동 침해 사안을 은폐하지 않도록 의무를 부여한다. 시·도 교육감은 학교장이나 교원이 사안을 은폐·축소해 보고할 경우 징계 의결을 요구하도록 하는 내용의 교원지위법 개정도 추진한다.
유명 웹툰 작가 주호민(41)씨가 아들을 담당한 특수교사를 아동학대로 고소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대책도 마련됐다. 특수교육대상자가 일으키는 문제 행동에 교사의 대응이 정당한 교육활동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행동중재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 특수교사 대상 장애학생 행동 중재 전문가 양성과정 운영도 확대한다.
◇교육활동 침해한 학부모는 서면 사과·재발방지 서약·특별교육 이수
학부모 책임성도 강화한다. 학부모가 특이 민원으로 교육활동을 침해한 사례를 분석해, 대표적인 행위를 침해 유형으로 규정한다. 예를 들어 매일 퇴근 직전에 전화해서 한 시간 이상 악의적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행위는 ‘목적이 정당하지 않은 민원을 반복 제기하는 행위’로 유형화해 침해행위로 신설한다. 또 학교에 중탕기를 보내겠으니 소화를 잘 하지 못하는 자녀에게 우유를 데워서 먹이라고 요청하는 민원에는 ‘교원의 법적 의무가 아닌 일을 지속적으로 강요하는 행위’를 침해유형으로 규정한다.
또 교육활동 침해 학부모를 대상으로 ‘서면 사과 및 재발 방지 서약, 특별 교육 이수’ 등의 제재를 신설한다. 특별교육을 이수하지 않을 경우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근거도 마련한다.
학교 방문절차도 강화한다. 새롭게 마련된 민원처리 절차에 따라 ‘학교 출입증 및 출입에 관한 표준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외부인이 비정기적으로 출입할 때 절차를 강화한다. 외부인이 학교에 출입하려면 사전에 예약한 후, 학교에 도착해 신분증을 확인해야 출입할 수 있도록 한다. 또 학부모가 민원을 제기하려 방문한 경우 민원대응팀이 학교 정문부터 민원 면담실까지 동행한다.
◇학생인권조례 자율적 개정 지원…’교육공동체 권리와 의무에 관한 조례’ 확산 유도
교육부는 지난 17일 발표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안’의 후속으로 고시 해설서를 다음달 중 학교에 배포한다. 교원이 학생에게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말라고 2회 이상 주의를 줬지만 계속 사용하는 경우 휴대전화를 압수할 수 있다.
또 지금은 학생의 ‘휴식권’을 강조하느라 교원이 수업 중 잠자는 학생을 깨우기 어려웠다. 앞으로는 고시에 따라 학생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교원이 주의·지시할 수 있게 된다. 칭찬도 차별로 인식했던 것을 고쳐 앞으로는 교원이 칭찬·상으로 학생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교육부는 교육활동 침해 학생이 조치 사항을 이행하지 않으면 출석정지 이상의 처분을 가중하도록 명시한다. 학급교체·전학·퇴학 조치를 받은 교육활동 침해 사안에 대해서는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할 수 있도록 교원지위법 개정에도 나선다.
학생 인권만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지적을 받은 학생인권조례는 경기도, 광주광역시, 서울시, 전북도, 충남도, 제주도, 인천시 등 7개 시·도에서 시행 중이다. 교육부는 자율적인 개정을 지원하고, 학생, 학부모, 교원 등 교육 3주체의 권리와 책임을 담은 ‘교육공동체 권리와 의무에 관한 조례 예시안’을 마련해 확산을 유도한다.
교육부는 유치원 현장에 적합한 고시 해설서도 개발한다. 보육교사 권리 보호를 위해 보건복지부 주도로 ‘영유아보육법’ 개정도 추진한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교원이 홀로 어려움과 직면했던 상황에 대해 교육 수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교육부는 올해를 ‘교권 회복’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교육 3주체 간 권한과 책임을 조화롭게 존중하는 ‘모두의 학교’를 만들어 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