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이 가까이 있을 때 등을 돌리면 오히려 위험합니다.” (김명화 IKMA 이스라엘리 크라마가 체육관 관장 겸 대표)

유도 1단, 태권도 2단, 복싱 3년 경력을 보유한 27세 남성 기자도 흉기를 든 상대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본격적으로 호신술을 배우기 앞서 대처 수준을 가늠하기 위해 설정한 가상의 상황임을 알고 있는데도 머릿속이 하얘졌다. 공격자 역할을 담당한 사람이 흉기를 들고 위협해 오자 도망치려 등을 돌린 채 넘어지기 일쑤였고 궁지에 몰려 저항할 틈도 없었다. 실제 상황이었다면 목숨이 위태로웠을 것이다. 이 광경을 지켜본 김명화 대표는 “공격자의 움직임을 정확히 인지하고 제대로 된 방어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림역·서현역’ 흉기 난동 등 묻지마 범죄가 연달아 벌어지면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호신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법적 처벌 강화와 경찰력 투입 등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지만, 결국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국내에선 다소 생소한 호신 무술인 크라브마가(Krav Maga)를 가르치는 체육관에 등록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크라브마가는 이스라엘 군이 개발한 실전 호신술로 복싱, 레슬링, 유도, 가라테의 기법이 혼합돼 있다.

크라브마가를 배워보기 위해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IKMA 이스라엘리 크라브마가 체육관’을 찾았다. 김 대표에 따르면, 이날 칼을 든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기술인 ‘크라브마가 나이프 디펜스’를 무료 체험하기 위해 체육관을 찾은 사람은 20명이다.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지기 전보다 4배 이상 늘었다. 8월 신규 관원도 30명 가까이 늘었다. 2주 만에 월 평균(20명) 기록을 제친 것이다. 김 대표는 “여학생 6명을 그룹으로 ‘키즈반’을 운영해줄 수 있냐는 문의까지 올 정도로 사람들 관심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지난 12일 오후 6시쯤 김명화 대표가 크라브마가 기술을 이용해 흉기를 든 상대를 제압하는 동작을 시범하고 있다./전병수 기자

◇ 크라브마가는 ‘실전 특화’… 어떤 상황에서도 생존하는 법 터득

크라브마가는 이스라엘의 대테러 부대와 정보특수공작담당기관인 모사드 대원들이 실제 전투 현장에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호신 체계를 정립했다. 대부분의 기술들이 1 대 다수의 싸움 혹은 누군가가 기습적으로 달려오는 경우 등 최악의 상황들을 고려해 짜였다. 규칙과 조건이 정해진 스포츠와 달리, 실제로 전투 현장에서 벌어지게 되는 환경을 전제로 교육한다. 이를 교육자의 상황에 맞게 변형해 경찰을 대상으로는 진압, 민간인에게는 생존을 목적으로 강의를 진행한다.

김 대표가 운영하는 체육관은 관원 대부분이 민간인인 만큼 묻지마 범죄나 스토킹 피해 등 실제 국내에서 벌어진 범죄 사례를 바탕으로 크라브마가 기술을 이용해 생존률을 높이기 위한 호신법을 교육한다. 지하철과 같은 좁은 공간에서 갑작스럽게 폭력을 행사하는 상대를 어떻게 제압할 것인지, 흉기로 위협하는 공격자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 등 실제 있었던 사례와 유사한 환경을 조성해 방어법을 훈련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1대다, 흉기 소지자 등 경우의 수가 무제한인 실제 현장에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돕는 게 교육의 주목적이다. 현재 체육관 교육생들은 대부분이 민간인이라 지하철 묻지마 폭력, 칼부림 현장에서 어떻게 대응할지를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교육한다”라고 설명했다.

'실전 호신술' 이스라엘 크라브마가 체육관을 방문하다! 나이프 디펜스 기초 체험기

이날 함께 훈련한 관원들도 흉기를 든 범죄자, 갑작스러운 폭행 등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며 불안감이 커지자 대응력을 기르기 위해 이곳에 와 크라브마가를 수련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크라브마가를 2년 2개월 동한 수련한 이대환(36)씨는 “아내와 베트남 여행에 갔을 때 흉기를 소지한 현지 사기꾼들에게 돈을 갈취당한 경험이 있다. 이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해져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현재 크라브마가를 수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 시선은 상대의 ‘턱’에 고정...팔로 방어하고 손바닥으로 공격

칼을 든 상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기초가 되는 동작들을 배워봤다. 우선, 시선은 상대의 턱에 고정해 상대의 신체 전 부위가 방어자의 시야에 들어올 수 있도록 집중한다. 시야를 고정하는 이유는 시선이 상대방이 공격하는 방향에 쏠릴 경우 상대가 사방에서 연속적으로 공격하거나 다른 부위를 동시에 가격할 시에 순간적으로 취약 부위를 방어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야를 고정한 상태에서 공격이 들어오는 것을 가까운 팔로 차단한다. 공격을 차단하는 것을 습득했다면, 다음 단계는 차단과 동시에 상대에 충격을 가하는 것이다. 방어에만 집중하면 언젠가는 상대방의 공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또 상대방을 자극해 더욱 공격적인 행위를 유발할 수 있고, 방어와 동시에 상대를 타격해 충격을 준다면 상대방도 당황해 도망갈 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손으로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면서 손바닥을 벌려 안면부에 타격을 가했다. 일반적으로 상대에게 공격을 가할 때 주먹을 쥐고 때리는 장면을 연상하지만, 수련 기간이 짧은 교육생이 주먹으로 가격하면 손목 부상이 우려가 있어 손바닥으로 상대를 공격한다. 손바닥 아래 살이 두툼한 부위로 타격하면 주먹에 버금가는 충격을 줄 수 있어 도피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생존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 밖에 상대방이 달려올 때 상대에게 충격을 줌과 동시에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발차기 공격도 수련했다. 원거리에서 상대방이 다가올 경우, 핵심은 공격자와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신체 부위 중 가장 길고 타격할 때 힘이 가장 센 다리를 이용해 공격자에게 충격을 가해 상대와의 거리를 벌린다. 이때 발바닥으로 상대방을 밀려고 하면 상대방의 힘과 체중에 방어자가 뒤로 밀려나 넘어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발끝을 펴 상대방을 찌르듯이 찬다.

실전 응용 동작은 흉기를 공격자가 다가오는 상황을 전제로, 발차기를 이용해 거리를 먼저 유지했다. 충격을 입은 상대가 연속해서 공격하기 전에 상대의 움직임을 정확히 인지하고 흉기로 공격하는 시점에 맞춰 방어와 동시에 타격했다. 수련한 지 한 시간 만에 실전 동작에 나서 멈칫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호신술을 배우기 전과 비교하면 최소한 어떻게 막아내야 하는지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졌다.

지난 12일 오후 6시쯤 김명화 서울 서초구 이스라엘리 크라브마가 대표를 만났다. 김명화 대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이스라엘 크라브마가 협회(IKMA) 2대 회장인 하임 기든(Haim Gidon)에게 크라브마가 지도자 자격을 부여받았다./전병수 기자

흉기를 든 공격자를 만났을 때는 당연히 현장에서 빨리 벗어나는 게 제일 현명한 방법이다. 주변에 신체를 보호할 수 있는 의자, 책가방 등의 물건이 있다면 적극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불가피하게 도피할 수 없는 상황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럴 경우 생존률을 높이기 위해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부위를 보호하고,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한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김 대표는 “피해자들이 과연 도망치는 법을 몰라서 당했을까. 크라브마가를 수련하는 이유는 이같은 상황에서 무력하게 당하기보다는 정확한 방어법을 배워 생존율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함께 훈련한 관원들은 막연한 불안에 사로잡히기보다는 한 번이라도 제대로 유사한 환경에서 수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작년 3월부터 크라브마가를 수련한 밸미소(23)씨는 “크라브마가를 배우지 않았다면 요즘같은 때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 불안했을 것 같다. 주변 친구들은 겁이 난다고 호신용품을 구매하거나 외출을 꺼리는데, 막연히 불안해하기보다 제대로 된 방법을 배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