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12일 오후 4시 45분,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한 원룸 지상 주차장에서 50대 남성이 길이 30㎝, 직경 3cm의 쇠망치를 30대 이웃 주민에게 휘두르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생면부지의 두 사람이 살인미수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로 얽히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주차 때문이다. 차량 5대까지만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에 피해자가 2대를 대자 가해자가 이날 “어이! 여기 주차장은 차를 2대 대면 안되네”라고 시비를 건 것이 화근이었다.
오랜 사회 문제로 지적된 주차난이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심해져 살인까지 초래하고 있다. 지난달 인천에선 외부 차량의 장기 주차를 막기 위해 요금을 받겠다는 건물 관리단 방침에 앙심을 품은 한 임차인이 주차장 입구에 차를 주차한 채 방치해 경찰에 신고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세입자가 일주일 만에 차를 빼고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가 사태는 일단락 했지만 갈등의 불씨는 꺼지지 않은 채다.
자동차 등록 대수 대비 공영 주차장, 아파트·주택·상가 등에 딸린 부설 주차장 비율을 뜻하는 ‘주택가 주차장 확보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서울이 작년 기준 106.5%다. 차량 1대당 주차장 1개 이상 확보됐다는 뜻이니 주차난이 없어야 할 것 같은데 서울시의 불법 주정차 민원은 매년 급증해 이제 전체 민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서울시와 전문가들은 애초 주차장 확보율이 200%는 되어야 하며, 도착지와 가능한 한 가깝게 대려는 주차 행태, 주차 요금을 아깝게 여기는 문화, 불법 주정차에 대한 단속·제재가 미흡한 점 등이 지금의 주차난을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당장 공영 주차장을 대거 확충하기 어려운 데다 모든 주차장이 항상 꽉 차 있는 게 아닌 만큼 효율적인 공간 활용을 위해 시장의 수요 공급 원리에 맞게 주차요금을 부과하게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주차난 원인...①절대량 부족 ②근접 주차 선호 ③공짜 인식
서울시의 주택가 주차장 확보율은 2010년 96.6%에서 작년 106.5%로 상승했다. 그러나 서울디지털재단은 2020년 연구에서 “차량 1대가 출발지와 목적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 2개의 주차장 수요가 발생하며 이상적인 확보율은 200%”라고 분석했다. 이 비율이 미국과 일본은 300% 안팎이다. 또 외부에서 그날그날 유입되는 주차장 이용 인원과 주차장 확보율 통계에 들어가지 않는 생계형 소형 화물 트럭 등을 고려하면 실제 확보율은 더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파트보다 다가구·다세대 주택의 주차장 확보율이 낮은데, 대다수 구도심의 노후 주택이 자동차가 대중화되기 이전에 지어져 주차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뒤늦게 주차 공간을 확보하려 해도 이면도로가 워낙 협소하고 단지 계획상 정비 절차가 까다로워 추가 공급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아파트도 지자체별 격차가 큰 편이다. 아파트 1가구당 주차면 1개 이상을 확보한 자치구는 서초구, 용산구, 성동구, 동대문구 등 4개에 불과하다. 노후 아파트가 많을수록 주차장 확보율이 낮다. 일부 신도시 지역도 사업자가 주택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주차장 공급을 제한해 낮은 편이다.
목적지에 최대한 가깝게 주차하려는 행태와 주차요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주차난을 심화시키는 원인이다. 서울시의 주차실태조사에 따르면 주차장 선택 시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은 ‘주차 후 목적지까지의 도보 시간’이며 평균 6분 이내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주차요금은 주요국과 비교해 낮은 편인데도 불법 주정차를 한 사람 대부분이 그 이유로 ‘요금을 내기 싫어서’라고 답한다. 영국 주차 서비스 업체 파코피디아의 작년 분석에 따르면 2시간 노상 주차 요금이 비싼 국가 순위에서 한국은 12위(6.38달러)로 1위인 호주(19.12달러)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불법 주정차 문제가 나날이 심해지지만 지자체는 적극 제재하거나 단속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의 불법 주정차 관련 민원은 2018년 연간 74만7362건에서 작년 120만3383건으로 61% 증가해 전체 민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에서 51%로 늘었다. 반면 지자체의 단속 건수는 279만1444건에서 208만1066건으로 줄었다. 도로교통법상 주정차 금지구역에 주차하면 차주에게 최소 4만원에서 최대 12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과태료 부과 주체인 지자체가 단속해야 하는데 주민들이 과태료에 워낙 민감하게 반응해 구청에 민원을 넣는 데다 선출직인 지자체장들도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지자체별 단속 인원도 10명 안팎이라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측면도 있다.
◇ 아파트 주차장, 낮에 텅텅 밤에 가득…사무실·상가는 정반대
서울 주택가 주차장 면수에서 공영 주차장 비중은 5.8%에 불과하다. 우리 정부에게 최우선 정책은 주택을 빨리 보급하는 것이었고 주차 문제는 후순위였다. 뒤늦게 공영 주차장을 늘리려 해도 부지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각 지자체는 공영 주차장을 확보하기 위해 빈 땅 매입 등에 나서고 있지만 단기간에 주차난을 해소할 수 있을 정도로 늘리기는 쉽지 않다. 이에 지자체에서는 담장이나 대문을 허물어 주차 공간을 조성하는 주택 보유자에 현금을 지급하는 정책도 하고 있다. 서울 강동구는 1면당 900만원을 준다.
전문가들은 부설 주차장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부설 주차장의 입지별 첨두시간(수요량이 최대치를 기록하는 시간)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파트 등 주거단지 주차장은 낮에 한산하고 저녁에 붐비는 반면 사무실이나 상가 주차장은 반대인 경향이 있다. 신우재 서울디지털재단 책임연구원은 “특정 지역 내에서 주차 수요가 시간대별로 엇갈리는 주차장을 서로 이용할 수 있게 되면 주차장을 더 건설하지 않더라도 주차 수요를 흡수할 수 있다”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주차장의 실시간 이용 상황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된 정보를 분석하여 주차 수요 예측과 분산에 활용한다면 원활한 주차장 연계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주차장 혼잡도에 따라 요금을 달리하는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실시간 가격 변동)을 도입하고, 주택을 공급할 때 면적 기준으로 주차장을 설치하도록 한 현행 규정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선 특별시는 주택의 전용면적이 85㎡를 초과하는 경우 65㎡당 주차장 1대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역세권에 있는 아파트는 굳이 주차장을 면적에 비례해 설치할 필요가 없으니 주택 공급자가 주변 교통상황을 고려해 자율적으로 설치할 수 있게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차가 하나의 상품’이라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줄 필요도 있다고 했다. 유 교수는 “외국은 주택을 구입할 때 베란다 확장, 시스템 에어컨 설치처럼 주차장 구입 여부도 옵션으로 선택해 홍콩에서는 1면이 18억에 팔린 사례도 있다”며 “우리나라는 패키지로 팔다 보니 사람들이 주차장 설치·유지·운영하는 게 얼마나 비싼지 모르는데 알면 주차를 공짜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