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낮 12시. 7~8평 남짓 되는 서울 홍대입구의 한 디저트 카페에서 10~20대 여성들이 “너무 귀엽다”, “오길 잘했다”는 말을 연발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 남성의 사진이 매장 벽을 비롯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여성들은 이 남성 사진이 들어간 컵 홀더와 음료, 디저트와 함께 인증샷을 남기느라 먹고 마시는 건 뒷전이었다. 케이크 진열대에는 ‘세운이가 구매한 쿠키’라는 팻말 옆에 고양이 모양 크림이 올라간 5500원짜리 머핀이 있었다.

지난달 31일 방문한 서울 홍대입구의 정세운 생일카페. / 소가윤 기자

이곳은 남성 가수 정세운씨의 생일을 맞아 팬들이 마련한 ‘생일카페’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생일 주간에 카페 등을 대관해 팬들이 직접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2010년대까지 팬들의 연예인 생일 축하 문화가 돈을 모아 값비싼 선물을 보내는 조공이었다면 이제는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오프라인 공간에서 만나 함께 축하하는 생일카페로 바뀌었다. 팬들은 이런 행사를 SNS로 적극 알리는데, 가끔씩 생일 당사자가 찾아오는 깜짝 이벤트를 경험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이날 찾은 생일카페에선 오전 11시 영업을 시작한 지 한 시간 만에 음료가 20잔 이상 팔렸다. 음료 가격대는 5000~6000원이다. 카페 사장 노모(38)씨는 개업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세 번째 연예인 생일카페를 진행했다. 그는 “오픈 초기이고 카페가 외곽에 있어 접근성이 좋지 않아 홍보 목적으로 생카 대관을 진행하기 시작했다”며 “팬들이 SNS에 생카 후기를 남기면 카페 홍보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K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생일카페’가 매출 부진으로 고민하는 자영업자들이 새로운 활로가 되고 있다. 팬들에게 장소를 무료로 혹은 인근 공간 대여 업체보다 저렴하게 해주면 평소보다 높은 식음료 판매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유동 인구가 많지 않은 한적한 곳에 있는 카페는 아예 며칠씩 장사를 접고 생카를 유치하기도 한다. 코로나19로 고사 위기에 놓여있던 동네 카페들의 ‘구세주’라는 평가다.

1일 정오 서울 용산 인근의 카페에서 걸그룹 프로미스나인 멤버 나경의 '생일카페'가 진행되고 있다./소가윤 기자

◇ 자비 털어 ‘생일카페’ 준비하는 팬들... “기념일 함께 즐기고파”

조선비즈 취재에 따르면 생일카페 문화가 유행하기 시작한 건 2~3년 전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생일카페는 팬들끼리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스타에 대한 마음을 공유하고 또 그 마음을 SNS를 통해 스타에게 전달하는 새로운 문화”라며 “비대면과 대면이 유기적으로 결합되면서 상승 효과가 나타나는 형태”라고 말했다.

주최자들은 경제적 이익을 보지는 못하지만, 다른 팬들과 함께 좋아하는 연예인의 기념일을 즐겁게 보내는 데 기꺼이 지갑을 연다. 지난 4월 남자 아이돌 그룹의 생카를 진행한 박모(22)씨는 두 달간 생카를 준비하는 데 100만원이 넘는 돈을 썼다. 현수막과 포스터 제작비부터 디저트 디자인 의뢰비, 전시 용품을 구매비 등을 모두 합한 금액이다.

또 다른 팬인 조모(21)씨도 네 달 전에 카페를 대관해 생카 준비에만 160만원을 사용했다. 럭키드로우(경품추첨)을 위해 상품 수량을 500개 준비했는데 다 팔린다해도 남는 몫은 50만원 뿐이라 손해다.

손해를 보는데도 생일카페를 주최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팬심’이다. 올해에만 팬인 여자 아이돌 그룹 멤버별로 세 번이나 생카를 진행한 정씨(24)는 “가끔 아이돌들이 생카를 찾아 인증을 해주면 고맙고 뿌듯하다”며 “일반인들도 카페 앞을 지나가다가 아이돌이 누군지 한 번 더 들여다보고 검색해주니까 팬 입장에서는 시간과 돈을 들이더라도 생카를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 특별한 날 맞아 통큰 소비 하는 팬들... 자영업자들 ‘반색’

최근 아이돌 생일카페를 유치하는 카페들은 대관료 대신 노쇼(no show·안 오는 것) 방지를 위한 예약금 정도만 받는다. 대신 생일카페를 진행하는 동안 판매되는 음료와 디저트 판매 수익을 챙긴다. 대관하는 기간 일반 손님도 받을 수 있고 매장에서 진행되는 각종 이벤트를 팬들이 직접 준비하기 떄문에 업주들 입장에서 부담이 없다.

생일카페를 찾는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특별한 날을 맞아 큰 지출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주최 측이 직접 제작하는 ‘특전’도 팬들 지갑을 여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한다. 특전은 아이돌 얼굴을 담은 종이컵, 포토카드, 스티커, 엽서 등 다양하다. 카페에서 판매하는 음료나 디저트를 구매하면 특전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음료나 디저트 구매 개수에 따라 특전 종류가 달라지기 때문에 1명이 여러 개를 구입하기도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골목 상권에게는 생카가 ‘구세주’다. 2년 넘게 용산구에서 디저트 카페를 운영하는 최예주(44)씨는 “코로나19 때 근처 골목 상권이 다 죽었는데, 생카에 오는 팬들이 많아지고 주변인들도 지나가면서 한 번씩 구경하고 가면서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단계인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