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김모(24)씨는 최근 직장 동료로부터 자신이 소개팅 어플리케이션(앱)에서 즉석 만남을 원한다는 대화명을 띄어놓은 채 남성들에게 메시지를 돌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확인해보니 해당 앱 계정에 김씨의 수영복 사진을 비롯해 얼굴이 그대로 드러난 일상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누군가 김씨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진을 도용해 남성들과 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씨가 사진 도용 사실을 신고하자 회사 측은 해당 계정을 삭제했다. 하지만 김씨는 언제든 자신의 사진이 무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직장 동료가 말하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것”이라며 “노출이 있는 사진도 함께 올려서 남성들에게 연락을 돌린 게 소름 돋는다”고 했다.
타인의 사진을 도용해 소개팅 앱에서 이성에게 접근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SNS에 올라오는 사진을 가져와 사진 속 인물이 직접 앱을 이용하는 것처럼 위장한 ‘허위 계정’을 만들어낸 뒤 이성과 대화하고 만남을 하자고 제안하는 방식이다. 사진 도용은 초상권 침해에 해당되지만, 형사처벌 규정은 없어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남의 사진 도용해 이성 만나려는 사람들... 운영사도 적극 대응 안해
23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20년부터 1년 동안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를 유료로 이용한 경험이 있는 남·녀 소비자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도용으로 의심되는 프로필을 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73.3%였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사진을 도용해 이성으로부터 관심을 받아 만남을 하겠다는 속셈으로 사진을 도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도용된 사진이라는 사실이 들통이 나더라도 일단 연락이 닿기 때문에 도용을 하는 것”이라며 “일단 만남을 성사시키고 그 다음에 해명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 만나게 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소개팅 앱 운영사로서도 사진 도용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대응할 유인이 없다. 대다수 소개팅 앱은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연락하기 위해서는 유료로 포인트를 충전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앱을 운영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아름다운 외모 등 이성의 눈길을 끌만한 이용자가 많을수록 매출이 올라가는 구조인 셈이다.
사진을 도용해도 ‘딥페이크(deepfake·영상이나 음성 등을 합성해 만든 허위 영상물)’ 등 음란물에 사용된 것이 아니라면 형사처벌은 불가능하다. 민사소송을 통한 손해배상 청구는 가능하지만, 연예인 등 공인이 아닌 일반인의 경우에는 손해배상이 인정되기도 어렵다는 게 법조계 해석이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소개팅 앱의 경우 채팅할 때 단순히 초상권을 침해한 게 아니라 인격권이나 명예가 훼손될 만한 발언을 했다면 합산해서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면서도 “인정이 많이 되지는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소개팅 앱 관계자는 “사진 도용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고 있다”면서도 “임의로 타인 사진을 도용하는 걸 원천적으로 막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 악의 없는 일반 이용자도 피해...일부 업체는 “가짜 계정” 내부 고발도
자신의 사진을 도용당한 피해자뿐만 아니라 허위 계정을 사용하는 사람과 만나기 위해 앱에서 유료결제를 하는 이용자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
지난 3월 한 달 동안 소개팅 앱에 약 10만원을 지불한 박모(31)씨도 프로필 도용으로 더 이상 앱 사용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한 여성과 1주일 넘게 문자를 주고받다 만나기로 한 당일 해당 여성이 유령회원인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누가봐도 자신에게 과분한 여성이 ‘나를 높게 평가’했다는 알림이 떠서 바로 문자를 보내려고 아이템을 결제했지만, 약속 날 당일부터 잠적했다”고 설명했다.
일부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앱 운영 회사가 남성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고의적으로 여성 회원처럼 보이는 허위 계정을 만들어 게시글을 작성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오고 있다. 소개팅 앱 특성상 남성 회원이 더 많기 때문에 남성의 시선을 사로잡을만한 외모를 가진 여성들의 사진을 도용해 유료 결제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작년에는 누적 회원 수가 수백만명에 달하는 소개팅 앱 업체가 업체가 수백개의 가짜 계정을 만들어 직원들에게 여성 회원으로 활동하도록 강요했다는 내부 고발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앱 운영회사 대표 등을 전자상거래법과 표시광고법, 개인정보호법, 사기 혐의로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