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학교폭력 가해자는 대학에 입학할 때 모든 전형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치르는 2026학년도 대입에선 학폭 가해 학생 처분 결과가 수시는 물론 수능 점수 중심인 정시 전형에 의무 반영되고, 2025학년도 입시에서도 대학이 자율적으로 반영한다.

학폭 가해 기록이 학폭 가해 기록이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보존되는 기간은 현재 2년에서 4년으로 늘어난다. 국회에는 ‘10년’으로 늘리자는 법안이 제출돼 있지만, 두 배 수준으로 늘리는 데 그쳤다. 학생이 4년제 대학에 진학해 졸업하는 경우 취업에 영향을 주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 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정부는 12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제19차 학교폭력 대책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학교폭력 종합대책’을 심의·의결했다. 정순신 변호사가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아들의 학폭 문제로 하루 만에 낙마하면서 사회적인 논란이 되자, 정부가 학폭 근절 정책을 강화한 것이다.

한 총리는 “학교라는 공동체가 학교폭력으로 무너지고 있다”며 “피해학생과 그 가정에 평생의 고통을 남기고, 가해학생의 미래도 망치는 것이 오늘날 학교폭력의 현실”이라고 했다. 이어 “더 이상 만연화된 학교폭력을 묵과할 수 없다”며 대책을 발표했다.

◇중대한 학폭 저지르면 대입 당락 좌우할 수준으로 반영

정부가 마련한 대책은 학생부 중심의 수시는 물론, 수능 점수 위주인 정시 전형에도 학폭 가해 사실을 의무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정부는 ‘2026학년도 대입전형 기본사항’에 대입 수능, 논술, 실기·실적 위주 전형에서도 학교폭력 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조치를 필수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할 방침이다. 현재는 학생부 교과, 학생부 종합 등 학생부 위주 전형에만 학폭위 조치 사항이 평가에 고려되고 있다. 모든 전형에 학폭위 조치 사항이 반영되게 된다.

대입전형 기본사항은 각 대학이 따라야 하는 대입전형 원칙을 제시하는 것으로,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마련한다. 입학일 기준으로 2년 6개월 전에 공표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2026학년도 대입전형 기본사항의 구체적인 내용은 올해 8월 공개될 예정이다.

현재 고2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2025학년도 대입전형 기본사항은 이미 지난해 발표됐기 때문에 학폭위 조치 반영을 의무화할 수 없다. 다만 최근 학폭이 사회 문제가 되면서 일부 대학을 중심으로 2025학년도 대입 수능 위주 전형에 학폭위 조치를 자율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교육부는 중대한 학폭 가해 학생의 경우 당락을 좌우할 수준으로 학폭위 조치가 대입에 반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구체적인 반영 방식, 기준은 대학별로 결정하게 된다. 교육과정에서 인성이 중시되는 교·사대나 학교장 추천 전형 등 일부 학과나 전형에는 학폭 가해 학생의 지원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대학들도 나타날 수 있다고 교육부는 보고 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한민위 민족사관고등학교 교장, 고은정 반포고 교장 등 증인들이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정순신 자녀 학교폭력 진상조사 및 학교폭력 대책 수립을 위한 청문회에 출석하고 있다. 정순신 변호사는 건강상의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뉴스1

◇학생부 적힌 가해 이력 삭제, 피해 학생 동의 확인…자퇴해도 대입 반영

중대한 학폭을 저지른 가해 학생에게 내려지는 6호(출석정지), 7호(학급교체), 8호(전학) 조치의 학생부 보존 기간은 졸업 후 최대 2년에서 4년으로 연장된다. 학폭위 조치 보존 기간은 학폭 관련 최초 대책이 마련된 2012년에는 최대 10년(초·중학교는 5년)이었다. 그러나 1년 뒤 고등학교도 5년으로 단축하고 심의를 거쳐 삭제할 수 있게 완화됐고, 2014년에는 최대 보존 기간이 2년으로 줄었다.

또 학생부에 기재된 학폭위 조치를 삭제하기 위한 심의에서 피해 학생의 동의 여부와 가해 학생이 제기한 불복 소송 여부도 확인한다. 피해 학생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기록을 지울 수 없게 되는 셈이다. 또 가해 학생이 반성하지 않고 학생부 조치사항 기재를 회피할 목적으로 자퇴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학폭위 조치 결정 전에는 자퇴할 수 없게 했다. 자퇴생들의 학폭 조치사항 여부도 대입에 반영할 방침이다.

◇가해 학생 학폭위 결정 불복해 소송 걸면 피해 학생 진술권 보장

학폭이 발생할 경우 학교장이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을 즉시 분리해야 하는 기간은 3일에서 7일 이내로 연장된다. 이후 학교장이 피해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조치할 수 있는 ‘가해 학생 대상 긴급조치’에 학급 교체도 추가한다. 또 가해 학생의 출석 정지 처분 역시 학폭위 심의 결정까지 가능하도록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폭예방법)’도 개정할 방침이다.

피해 학생이 요청할 경우 학교장이 가해 학생을 대상으로 출석 정지나 학급교체 처분을 할 수 있도록 피해 학생에게 분리 요청권도 부여한다. 가해 학생이 학폭위 결정에 불복해 집행정지를 신청하거나 소송 등을 제기할 경우 피해 학생에게 이를 통보하고, 가해 학생이 제기한 불복 절차에서 피해 학생이 진술권을 얻을 수 있도록 국선대리인 선임 등도 지원한다. 피해 학생 전문 지원기관도 올해 303곳에서 내년 400곳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교권도 강화한다. 교원이 학폭 대응 과정에서 분쟁에 휘말릴 경우 고의가 아니거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교원의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개정할 방침이다. 학폭 책임교사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수업을 대폭 줄여주고 가산점 확대, 수당 인상 등도 검토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최근 심각해지는 사이버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소셜미디어(SNS)에서 사이버폭력을 감지하는 애플리케이션(앱) 홍보에 나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