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있는 단위농협과 수협, 산림조합의 대표를 선출하는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지난 8일 치러졌다. 이날까지 적발된 선거사범은 432명. 이 중 296명은 금품을 받아챙겼고, 78명은 불법선거운동을 벌였다. 경찰과 선관위의 집중 단속에도 ‘돈 선거’라는 오명을 벗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과거 조합장 선거는 조합마다 개별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금품수수 등 선거 비리 문제가 계속되자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서는 조합장 선거를 위탁받기 시작했다. 2015년부터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리 아래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조합장을 선출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공정성 시비는 곳곳에서 불거졌다. 지난 2월 광주에서는 조합장 후보 측근들이 조합원들에게 현금 100만원이 돈봉투를 건네며 지지를 호소한 일이 있었다. 1월에는 경남의 한 조합 후보 예정자가 조합원 8명에게 11만원 상당의 물품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법(위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됐다.
선거 비리 가담자들은 법정에서 벌금형 또는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벌금액이 100만원 이상이거나 징역형을 받을 경우, 조합장에 당선되더라도 그 지위는 무효된다. 금품을 수수한 조합원들에게도 과태료는 부과된다. 과태료는 금품 가격의 10~50배에 달한다.
◇ 선거 넉달 전부터 조합원 찾아가 돈 봉투 건넨 후보 ‘징역형’
법정에서 징역형을 선고받는 경우도 있다.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있었던 2019년, 충남 금산군의 한 조합장 후보로 나온 A씨는 위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A씨는 선거인들의 집을 개별적으로 찾아가고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받았다.
A씨의 불법행위는 선거를 4개월 앞둔 시점부터 시작됐다. 2018년 11월 A씨는 조합원 22명을 찾아갔다. 위탁선거법에서는 선거인을 호별(개인별)로 방문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A씨는 개개인의 주거지 또는 근무지에 찾아가 “조합장 선거에 출마할 생각인데 잘 부탁한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현금이나 선물도 함께 건넸다. 5만원이 담긴 돈 봉투나 선물을 제공하며 청탁을 했는데, 금품 가액은 총 173만8000원 상당이었다. 당시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후보자는 2018년 9월 21일부터 선거 당일인 이듬해 3월 13일까지 기부 행위가 제한됐었다.
이에 대전지법 형사1단독 유석철 판사는 A씨에게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조합장 선거는 투표자가 상대적으로 소수여서 위법행위가 선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고, 선거의 공정성을 침해해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선거 비리에 가담하는 건 후보자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5년 1월 대구에 살던 조합원 B씨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 C씨를 돕고자 유권자들에게 쌀을 나눠줬다.
B씨는 다른 조합원들의 주거지에 찾아가 3만원 상당의 쌀 포대를 건넸다. 그는 쌀과 함께 “C 후보를 잘 부탁한다”는 협조의 말도 덧붙였다. 그로부터 약 7개월 뒤, 위탁선거법 위반으로 법정에 선 B씨는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후보자를 위해 선거인들에게 물품을 제공하는 것은 조합원들의 의사를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반영해야 할 선거의 공정성을 크게 훼손한 것”이라며 “엄단할 필요성이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 “자진신고하면 누군지 특정 돼...선관위가 적극 나서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유권자가 제한된 조합장선거 특성상 불법행위가 근절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검찰 출신 이홍열 법무법인PK 변호사는 “조합장 선거는 소수의 조합원을 상대로 이뤄지는데, 후보자도 조합원들을 알고 친분이 있는 경우가 많아 과거부터 금품 지급이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경우 금품을 받은 조합원이 신고를 하면 누군지 특정이 돼 신고를 꺼리곤 한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조합원들이 자진 신고를 하더라도 신원 보장이 확실히 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고, 나아가 유권자들의 신고에 의존하기보다는 수사 기관이나 선관위에서 적극적으로 먼저 수사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번 조합장선거를 관리한 선관위 관계자는 “금품수수와 관련된 위법행위는 선거가 끝난 시점에라도 철저히 조사해 엄중 조치할 방침”이라며 “돈을 받은 사람에게는 최고 50배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