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 A씨는 2019년부터 서울 중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에서 일했다. A씨는 중요한 계약을 수차례 따내며 능력을 인정받았으나 계약 수수료 중 20%만 받도록 되어 있어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다. A씨는 더 좋은 조건에서 일하기 위해 이직을 결심, 작년 5월 퇴직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공인중개사무소 대표인 B씨가 퇴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현행법상 B씨와 같은 개업공인중개사는 소속공인중개사인 A씨와의 고용관계가 종료되면 이 사실을 관할구청에 신고해야 한다. 법에서 신고 주체를 개업공인중개사로 한정한 것이다.

B씨가 고용관계 종료 신고를 하지 않겠다고 버텼고, A씨는 일은 그만뒀는데도 10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중구청에 해당 공인중개사무소 소속으로 등록돼 있다.

A씨는 서초구청에 ‘사실상 B씨와의 계약관계가 종료됐으니 서초구 관할 공인중개사무소에서 일할 수 있도록 등록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미 중구청 관할 공인중개사 소속이기 때문에 요청을 받아주면 이중등록이 된다는 이유였다. 이중등록의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결국 A씨는 B씨를 상대로 고용종료 신고절차를 이행하라는 가처분 소송을 작년 11월 제기했다.

자사 공인중개사 이직을 막기 위해 고용관계 종료 신고를 하지 않는 등 공인중개사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신고 여부는 고용관계 종료 여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법원의 구체적인 해석이 처음 나오면서 공인중개사 이직 논란이 사라질 것인지 관심이 집중된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 모습./뉴스1

◇ 法 “고용관계 종료 신고, 보고적 신고에 불과”...공인중개사 이직 수월해지나

9일 법조계에 따르면 A씨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박범석 수석부장판사)는 지난 6일 ‘소속공인중개사 고용관계 종료신고절차 이행가처분 신청’ 사건에서 그동안 논란이 됐던 공인중개사법 15조 1항과 관련한 구체적인 해석을 내놨다.

공인중개사법은 개업공인중개사가 소속공인중개사와의 고용관계 종료 신고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업공인중개사는 공인중개사무소 개설등록을 한 사람이고, 소속공인중개사는 개업공인중개사에 소속된 공인중개사를 의미한다. 소속공인중개사도 고용관계 종료 신고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규정은 없어 개업공인중개사만 신고 주체가 되는 것이다.

결국 개업공인중개사가 퇴직을 허락하지 않으면 소속공인중개사는 그곳에서 계속 일해야 하거나 아예 중개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회사에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공인중개사가 이직하면 수익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들을 잡아두기 위해 일부러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꼭 신고 절차를 거쳐야만 고용관계가 종료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했다. 고용관계 종료 신고는 단순한 통보이기 때문에 공인중개사가 퇴사 의사를 밝히거나 일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고용관계가 사실상 종료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공인중개사법과 관련해 “고용관계 종료신고의 주체를 개업공인중개사로만 한정하고 있기는 하다”면서도 “(신고가) 권리의무 관계를 창설·변경·종료하는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고, 행정청에 대한 ‘보고적 신고’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어 “고용관계 종료 신고 없이는 다른 개업공인중개사 소속으로 일할 수 없다는 취지의 규정이 없다”며 “고용관계가 실질적으로 종료됐음에도 신고 절차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 다른 개업공인중개사에서 고용관계 신고를 할 수 없다고 해석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재판부는 A씨가 다른 곳에서 일해도 처벌받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동일한 시기에 복수의 개업공인중개사 소속으로 활동한 경우 처벌하는 것”이라며 “A씨가 B씨의 소속공인중개사로 더 이상 근무하고 있지 않다면 ‘둘 이상의 공인중개사사무소에 소속된 경우’에 해당하지 않아 처벌을 받을 위험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가처분 신청 자체는 기각했다. 가처분의 경우 본안소송 없이 긴급한 법원의 판단이 필요한 경우 제기되는데, 급박한 사유가 소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재판부는 B씨를 상대로 한 가처분이 아닌, 소속공인중개사 등록 신고를 거부하고 있는 행정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라고 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과 같이 본안판결을 통해 얻고자 하는 내용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내용의 권리관계를 형성하는 경우 본안판결 전 A씨 권리가 종국적으로 만족을 얻는 것과 같은 결과에 이르게 돼 통상의 보전처분보다 높은 정도의 소명이 요구된다”며 “A씨가 주장하는 피보전권리나 보전의 필요성이 고도로 소명됐다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행정청이 B씨와의 고용관계 종료신고 절차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른 개업공인중개사와의 고용관계 신고를 거부할 경우 이러한 거부처분에 관해 다투는 것이 A씨의 법적 지위에 관한 불안을 해소할 방법일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 “신고 절차 없이도 계약관계 끝낼 수 있어...계약서 작성 때 관련 조항 명확히 해야”

이번 사건을 담당한 법무법인 명륜의 김형우 변호사는 판결 결과에 대해 “법원이 신고 절차가 없어도 사실상 계약관계가 끝났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며 “그렇다고 해서 B씨 측에게 의무를 이행시키는 것에 부담을 느껴 신청을 기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구청이 소속공인중개사 등록을 받아주는 게 맞는데, 거절한다면 구청이랑 다투는 게 더 명확하다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특히 “소속공인중개사가 고용관계 종료 신고를 할 수 있는지 여부는 문헌상에 나와있지 않다”며 “보고적 신고이기 때문에 소속공인중개사가 등록 신고를 하라고 한 것이어서 소속공인중개사도 신고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다만 김 변호사는 법원 판단과는 별개로 논란에 휩싸이지 않도록 계약서 작성 시 관련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계약서에 고용이 종료됐을 경우 반드시 신고한다는 내용을 넣고 이를 위반했을 때 일당 얼마를 지급한다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