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행정소송의 경우 수임료가 1000만원이 넘기도 해요. 가해자 쪽 부모는 그 돈을 주고라도 기록을 지우려 하죠.”
지난 2018년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A군은 같은 반 남학생의 성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 심의를 받게 됐다. 학폭위 처분은 ‘강제전학(8호)’. 초등학교를 졸업해도 2년 더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남아있는 처분이었다. A군의 부모는 곧바로 변호사를 찾아가 행정소송을 맡아달라고 의뢰했다.
사건을 맡은 변호사는 법정에서 강제전학 처분이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A군의 나이가 어린 점, 아직 성추행이라는 개념에 대한 성교육조차 이뤄지지 않은 점, 선도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점 등을 들어 강제전학 처분을 낮춰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재판부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같은 해 말 A군에게 내려진 강제전학 처분은 취소 결정됐다.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가 아들의 학교 폭력 처분을 낮추려고 재심, 행정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알려져 낙마한 가운데, 자녀 생활기록부에 남을 주홍글씨를 없애기 위해 1000만원이 넘는 비용을 불사하고 변호사를 찾는 부모들의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학교폭력의 유형이 물리적 폭력에서 언어폭력,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의 폭력 등으로 다양화 되고 가해 학생 연령은 낮아지면서 ‘학폭 대응’이 변호사들에게도 중요한 시장 중 하나가 됐다.
학폭 처분은 크게 세 단계를 거친다. 학폭이 발생하면 먼저 학교에서 자체 조사를 시작하고, 각 교육지원청에 설치된 학폭위에 사건을 회부해 심의를 거친 뒤, 학폭 처분을 내리게 된다.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은 주로 학폭 처분 결과에 불복하는 쪽에서 제기한다. 행정심판은 법원이 아닌 행정심판위원회 판단을 받는 것으로 주로 행정소송 전 단계에서 진행된다. 행정소송은 법정에서 이뤄지는 절차로 변호사가 대리인이 돼 학폭 처분의 위법성을 다투는 것이다.
이 같은 불복절차는 주로 가해 학생 측에서 제기한다. 학폭위 처분을 무효화하거나 수위를 낮추기 위해서다. 학폭위 처분 결과는 수위에 따라 졸업 후 2년 또는 영구적으로 학교생활기록부에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6~2020년까지 제기된 학교폭력 행정심판 가운데 약 93%는 가해자 측에서 제기됐다.
유한나 법무법인 강건 변호사는 “가해자의 경우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남기 때문에 추후 입학사정관 등이 해당 기록을 보게 될 때를 대비해 부모들이 높은 소송가액을 감내하고서라도 가해자에게 내려진 전학 및 퇴학 조치 등을 행정심판·소송을 통해 취소, 변경하려고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소송전에 나서는 고객층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초등학생 부모들도 학폭위 단계서부터 적극적으로 변호사를 고용하며 학폭 처분을 내리고자 애를 쓰고 있다.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변호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연령이 낮아지고, 학폭 유형도 다양하고 교묘하게 바뀌고 있어 어린 학생의 부모들도 소송전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며 “초등학생이 서면 사과(1호) 처분만 받아도 불복하고 행정심판이나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학폭 사건이 법조계에서 새로운 시장으로 자리잡으면서 학폭을 전담하는 변호사 역시 증가하고 있다. 현재 대한변호사협회에 전문 분야를 학폭으로 등록한 변호사는 17명으로 2019년(4명) 대비 4배 이상 증가했다.
한아름 법무법인 LF 변호사는 “최근 서울 행정 재판부에 학교폭력 전담부서가 생길 정도로 학폭 관련 사건 수가 늘어났고, 전문성도 중요해지는 추세”라며 “이 같은 흐름에 맞게 업계에서도 매년 학폭사건을 수임하는 변호사가 2배씩은 느는 것 같다”고 짚었다.
학폭 사건을 맡는 변호사들의 ‘몸값’도 상승세다. 학폭 사건을 주로 맡는 한 변호사는 “2020년까지만 해도 300만원 중반에서 500만원 선까지 수가가 형성됐었는데, 최근엔 대형 로펌까지 학폭 사건에 가세하면서 수임료가 천차만별이 됐다”며 “최근엔 440만~550만원이 최저 소송비로 형성돼있고, 1000만원 이상의 고액 금액으로 위임 계약을 체결하기도 한다”고 상황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