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과 서울고등검찰청.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검찰에 출석한 지난 10일 아침, 서울고등검찰청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직원들이 근무하는 검찰청사 인근은 ‘아수라장’과 다를 바 없었다. 검찰청 서문에서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이재명을 구속하라”고 외쳤으며, 동문에서는 이 대표의 지지단체 회원들이 “검찰 독재, 야당 탄압을 중단하라”며 맞섰다.

양쪽에서 욕설과 고성이 나오는 와중에 검찰 청사에는 뜬금없이 잔잔한 발라드가 흘러나왔다. “이제는 우리가 서로 떠나가야 할 시간...이젠 추억으로 남기고 서로 가야 할 길 찾아서 떠나야 해요.” 1991년 5월 발매된 뒤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삽입곡으로 더욱 유명해진 015B(공일오비)의 ‘이젠 안녕’이 이 대표의 검찰 출석일 출근송으로 선정된 것이다.

검찰과 이 대표는 출석 일자와 시간을 두고 매서운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당시 검찰은 이 대표에게 오전 9시 30분 출석을 요구했으나, 이 대표는 11시 22분쯤 검찰 청사에 도착해 포토라인 앞에 서서 10분 동안 ‘대국민 입장문’을 읽었다. 이에 조사 시간이 부족했던 중앙지검은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이 대표와 4차장검사와의 티타임 없이 곧바로 조사를 시작하기도 했다.

검찰이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지난 16일에도 청사에서는 의미심장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 어리석은 자존심을 포기해...제 모습을 드러내봐, 금으로 발라놓은 가면을 깨뜨려...거꾸로 돌아가는 이 세상을 바꿔.” 2010년 방영된 드라마 ‘추노’에 삽입됐던 ‘바꿔’라는 곡이다. 드라마 추노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도망친 노비를 잡아오는 추노꾼들의 이야기를 담은 퓨전 사극이다.

구속영장을 청구하기 직전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해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 탓에 이날 직원들의 얼굴에는 온종일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웅장하고 비장한 멜로디의 퇴근송이 흘러나오자, 퇴근하던 직원들은 한 번씩 뒤를 돌아보며 청사를 떠났다.

검찰 청사의 출퇴근송은 매일 직원들의 신청을 받아 선곡한다. 라디오에 노래를 신청하듯, 검찰 내부망을 통해 신청하는 구조다. 이 대표가 검찰에 출석한 날과 구속영장을 청구한 날에도 구성원들의 추천을 받아 노래를 선정했다.

일부 직원들은 ‘절묘한 선곡’이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공교롭게도 이 대표와 관련된 일이 있을 때마다 이 같은 노래가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청사에 근무하는 검찰 구성원들의 심경이 어느 정도는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만 검찰은 이에 대해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검찰 청사의 한 관계자는 “출퇴근 음악은 검찰 구성원들의 추천을 받아 선곡한다”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