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병역 면제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2500만원을 보내면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지난 2014년 10월 전남 나주의 한 카페. 군 입대를 앞둔 A씨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된 병역 브로커 B씨를 만났다. 자신 또한 병역 면제를 받았다는 B씨는 확실한 ‘군 면제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A씨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의뢰비를 1500만원까지 깎아주겠다는 제안에 넘어간 A씨는 한 달 뒤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길가에서 B씨에게 현금 1500만원을 건넸다.

브로커 B씨가 제안한 방법은 청각 장애를 진단받는 것이었다. 자전거 경음기 소리를 한 시간 동안 귓가에 울려 청각기능을 일시적으로 떨어뜨리고, 그 상태로 청각장애 진단 검사를 받는 수법이다. B씨의 지시에 따른 A씨는 이듬해 1월 허위로 청력장애 진단서를 발급받았다. 청력장애 4급을 판정받은 A씨는 결국 병역을 면제받았다.

그래픽=손민균

A씨의 군 면제에 성공한 B씨는 추가로 4명의 병역면탈을 도왔다. 명당 1200만~5000만원을 받으며 허위로 청력장애를 진단 받는 방식을 알려줬다. B씨가 브로커 활동으로 벌어들인 돈은 총 1억300만원에 달한다.

재판부는 B씨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대구지법 형사10단독 박효선 부장판사는 지난 2019년 7월 “다수의 입영대상자들을 상대로 병역 면제 방법을 제공하고 거액의 금전적 이득을 취해 죄질이 매우 불량하며 이 사건 범행은 병역제도의 근간을 해할 뿐 아니라 다른 국민들에게 박탈감을 주는 행위”라며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최근 뇌전증 환자 행세를 하며 병역을 감면받는 병역 면탈자들과 이들에게 뇌전증 진단법을 알려준 브로커들이 대거 적발되며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이른바 ‘뇌전증 병역비리’에 연루된 이들 중에는 부장판사 출신 대형로펌 변호사 아들, 운동선수, 가수, 배우 등도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서울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병무청과 병역면탈 합동수사팀을 꾸려 병역면탈 가담자에 대한 집중 수사를 벌이고 있다.

허위로 질병을 진단받아 병역을 감면받는 이들은 과거부터 있어왔다. 이러한 사례들이 일부 병역 대상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자, 온라인상에는 자신이 병역 브로커임을 내세워 ‘군 면제 상담’ 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심지어는 병역 브로커 행세를 하며 군 입대를 앞둔 이들에게 돈을 받고 잠적하는 사례까지 생기고 있다.

지난 2019년 4월 소셜미디어(SNS)에서 자신을 병역 브로커라고 홍보하던 C씨는 군 입대를 앞둔 D씨에게서 군 면제 상담을 요청받았다. C씨는 병무청 직원이나 병원 의사에게 로비를 하면 병역을 감면 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이는 돈을 가로채기 위한 거짓말에 불과했다.

이 같은 제안에 D씨는 2개월에 걸쳐 350만원을 모두 송금했다. 그러나 C씨는 돈만 가로챈 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결국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 2020년 5월 재판부로부터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 군 면제 받기 위해 없던 병 만들어내기도

병역 면탈을 위해 스스로 질병을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다. 고의로 손목을 훼손해 손목 수술을 받기도 하며, 비뇨기 질환을 야기하는 약물을 과다 복용해 없던 병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체육선수로 활동하던 D씨는 지난 2019년 신체검사에서 4급 판정을 받아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을 감면받았다. 감면 사유는 손목 질환. 스스로 자기 손목을 고의로 꺾고 돌리는 등 손목의 인대를 손상시켜 손목 수술을 받고, 이후 정형외과에서 손목 질환이 진단서를 받아 병무청에 제출했다.

한 공직자의 자녀는 일부러 약물을 과복용하기도 했다. 부작용으로 병에 걸려 군 면제를 받기 위해서다. 병역 대상자인 E씨는 2020년 비뇨기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의도적으로 약물을 남용해 실제로 원하던 병을 얻게 됐다. 결과는 신체검사 5급. 전쟁 때에만 투입되는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아 사실상 군 면제와 같은 처분을 받아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편법들도 오래 가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병역면탈에 대한 수사가 대대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병역 비리에 연루된 이들에 대한 적발과 처벌 모두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출신 이홍열 법무법인PK 변호사는 “병역비리의 경우 통상 병역대상자와 브로커에 대해서만 처벌이 이뤄졌지만 이번에는 병역면탈을 엄단하는 차원에서 주변 가담자에 대해서도 적극 기소가 이뤄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119에 허위 신고를 하거나 의료기관에서 허위 진술을 하는 등 범행에 가담한 주변인들 역시 공범으로 분류돼 기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어 “그간 공범에 대한 처벌도 잘 안 됐고 ‘걸리면 군대가면 된다’는 인식이 있어 병역 비리가 근절이 안 된 면이 있었는데, 이번처럼 적극적으로 가족 등 가담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진다면 일반인들도 리스크가 커지기 때문에 병역 비리 행태 역시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