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관계에 대한 단순한 누락 등을 이유로 범죄자로 기소되고 유죄가 인정된다면, 과연 그 어떤 경찰관이 현장에서 일할 의욕이 생기겠습니까.”

경찰의 노동조합 역할을 하는 전국경찰직장협의회(경찰직협)는 10일 오전 9시 경기도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에 돌입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번 시위에는 경찰 24명이 참여해 11일 오후 5시까지 진행된다.

발단은 2021년 12월 22일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1단독 이인수 판사가 분당경찰서 구미파출소 소속 박모 경사와 윤모 경장에게 내린 1심 판결이다. 두 사람은 공전자기록 등 위작과 위작공전자기록 등 행사 혐의로 기소돼 당연퇴직 사유인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이 판결을 두고 경찰 내부는 발칵 뒤집어졌다. 내부망에는 박 경사 등 사건과 관련해 ‘경찰 탄압, 이대로 두고 볼 것인가’라는 글이 올라왔고 “저런 식으로 기소하고 재판하면 살아남을 공무원들 몇이나 되냐” “정말 억울한 기소다” “(단속)현장을 하나도 모르는 검찰이 공전자기록 위작으로 죄명을 변경했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경찰직협)가 10일부터 다음날까지 수원지법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인다./경찰직협

박 경사와 윤 경장은 2020년 2월 21일 112신고를 받고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불법 안마시술소에 출동했다. 이곳에서 안마시술소 2번 방과 4번 방에서 각각 남성 1명을 발견했다고 한다. 업주는 “이미 불법 마사지 행위로 적발돼 경제팀에서 조사를 받고 있어 형편이 매우 어렵다”며 “한번만 봐달라”고 호소했다.

박 경사 등은 업소 수색에 나섰으나 여성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이들은 112종합정보시스템에 “신고자가 말한 불법체류자나 안마사 자격이 없다는 여성을 확인할 수 없어 미단속보고”라고 작성해 112신고를 종결하는 했다. 풍속업무 미단속보고서에는 “신고 내용과 같은 불법사항을 확인할 수 없어 미단속보고” 등 내용을 기입했다.

그러나 한 신고자가 “단속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박 경사 등을 직무유기로 고소하면서 상황은 180도 반전됐다. 경찰 조사 결과 당시 4번 방에는 안마사 자격이 없는 태국 여성 1명이 더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박 경사 등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업주가 선처를 호소하자 박 경사 등이 “손님과 태국 여성을 밖으로 내보내라”고 말한 뒤 무자격 안마사가 현장에 없었다는 취지로 사건을 종결했다고 결론을 낸 것이다. 박 경사 등이 불법행위를 알고서도 이를 묵인한 채 112신고를 덮었다는 취지다.

그러나 사건을 검토한 검찰은 직무유기 혐의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고 박 경사 등을 공전자기록 등 위작과 위작공전자기록 등 행사 혐의로 기소했다. 박 경사 등이 112종합정보시스템과 풍속업무 미단속보고서에 허위 내용을 작성한 게 문제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공소 사실이 유죄라고 판단,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박 경사 등은 업주가 먼저 업소에 들어가 4번 방에 있던 태국 여성 무자격 안마사를 후문으로 내보내고 남자 손님에게 환불을 해준 뒤 돌아가도록 하자 그때서야 업소에 들어가 마치 손님과 무자격 안마사가 업소에 없었고, 따라서 의료법 위반 등 불법행위가 없었다는 취지로 112신고 사건을 종결했다”고 판시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일선 경찰관들은 “기소가 될 만한 사건이 아니다”며 반발하고 있다. 1심 판결대로 무자격 안마사인 태국 여성을 후문으로 도망가도록 놔두고 이를 못 본 채 한 게 사실이라면,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직무유기 혐의로 기소하지 못한 만큼 해당 사건은 ‘봐주기 수사’가 아닌 단순한 실수이거나 단속 실패에 불과한데, 이를 공전자기록 등 위작 혐의로까지 기소한 것은 문제라는 주장이다.

경찰직협에 따르면 경찰은 박 경사 등에 대한 감찰을 벌였으나, 해당 업주로부터 봐주기 수사에 따른 대가를 받았던 정황을 확인하지 못했다.

민관기 경찰직협회장은 “보고서를 잘못 치면 다시 쓸 수 있는 것인데, 형사 입건해서 옷을 벗겨버리는 게 맞냐”며 “앞으로 현장 경찰관들이 겁나서 신고 받고 출동할 수 있겠냐”고 했다.

박 경사 등에 대한 항소심 재판은 11일 오전 수원지법에서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