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조선DB

지난해 9월 대검찰청이 국가재정범죄합동수사단을 신설했다. 탈세와 재정비리 근절을 위해 수사·과세·금융당국이 뭉친 것이다. 검찰이 탈세 범죄의 발본색원에 나선다는 소문은 지난해 7월부터 돌기 시작했고, 이에 김앤장 법률사무소, 법무법인 율촌·세종·화우 등 대형 로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조세형사 전문대응팀을 신설했다. 고객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시장을 선점하려는 조치였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 이를 바라본 시각은 달랐다. “조세 사건을 놓고 검찰과 붙었을 때 로펌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아니겠냐”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최근 3년 간 검찰이 기소한 수백억원대 탈세 혐의 사건 중 유죄를 받아 낸 게 없을 정도”라고 했고,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조세 분야만 파고든 변호사들과 검찰 간 역량 차이가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검찰의 조세범죄 수사 역량에 대한 위기감은 지금도 여전하다. 범죄가 지능화하면서 고액 탈세 범죄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에도, 이를 막을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세청 조사국을 줄이고 검찰의 직접수사 부서를 대폭 축소·폐지한 여파가 원인으로 꼽힌다. 법조계에서는 조세범죄 전문가 육성을 위한 토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풍파 겪은 검찰의 조세범죄 수사... “역량 하락 원인”

검찰의 조세범죄 수사는 오랜 기간 풍파를 겪어왔다. 2000년대 초 금융조세조사부, 2010년대 중반 공정거래조세조사부라는 이름으로 직접 수사를 해왔지만, 2020년 1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시절 ‘검찰개혁’이라는 기치 아래 형사13부로 개편되면서 직접 수사가 불가능해졌다. 그 전까지 국세청에서 고발된 사건들을 수사해오던 인력이 전부 뿔뿔이 흩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조세 범죄 수사에 부정적 영향이 생겼다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조세 사건은 ‘전문성’이 중요한 영역이다. 중요 기업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다 보면 해외 탈세나 재산 증여 과정에서 불거지는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드러난다. 거래 구조와 세법·회계에 대한 전문 지식이 있어야만 기업의 거래 장부와 관련자들의 진술 사이에서 진실을 찾아낼 수 있고, 복잡하게 얽힌 세법과 시행령 시행 규칙을 적용할 수 있다고 법조인들은 말한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에 앞서 서울지방국세청의 중수부격인 조사4국이 축소되며 검찰·국세청의 수사 역량이 전반적으로 하락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반발 심리로 조세 수사를 바라보고 조사4국을 축소했다는 시각도 있다.

국세청 출신의 한 인사는 “조사4국이 이명박 정부에서 진행된 태광실업 세무조사 등 많은 정치적 논란을 만들긴 했지만, 조직이 축소되는 바람에 기업 범죄 수사 역량이 부정적 영향을 받은 게 사실”이라고 했다.

조세 수사의 미비는 국민의 세금 문제로 귀결된다. 기소된 사건에서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됐을 경우, 이미 납부한 세금을 돌려줘야 한다. 지연 이자도 함께 줘야 하는데, 모두 국고로 부담한다. 국세청 등의 조사 과정에서 인지한 세금 액수가 클 경우 지연 이자만 수십억원에 달한다. 또 수사가 제대로 이뤄져야만 배임과 횡령, 사기 사건에 숨어 있는 탈세 범죄를 잡아낼 수 있다.

◇법원은 정반대... “검찰도 전문가 키울 토대 만들어야”

법원의 조세 사건 역량은 풍파를 겪은 검찰과 정반대다. 각급 법원에서 조세전담 재판부가 오랜 기간 운영돼 왔다. 또 대법원에는 ‘조세조’가 있다. 이들은 대법관이 사건을 심리하기 전 대기업 등 대형 사건에 관해 어떤 주장이 쟁점이 될지 등을 검토하는 역할을 한다. 조세 사건에 대한 경험이 많은 만큼 대형 로펌들도 연구관 출신 법관을 선호한다.

또 법원은 전담 재판부의 근무 기한을 늘리는 제도를 지난해부터 시행해 왔다. 의료와 건설 전담 법관을 선발해 한 법원에서 5년 간 근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전문성이 필요한 사건을 심리하려면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며 “형평성 문제가 있지만 좋은 재판을 하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판사들의 지원이 많았고, 법원은 이 같은 제도를 다른 전담 재판부에 확대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에도 전문가 육성과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는 “검찰은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기에 로펌이나 법원에 비해 시간이 부족하다”며 “특별히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에 한해 오래 머물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는 부장검사를 포함해 총 4명 뿐이다. 큰 사건을 수사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수사와 공판이 분리된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다는 주장도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조세는 수사와 공판을 분리하면 안 되는 분야로, 수사검사가 재판에 가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재판 중 수사 기록에 등장하지 않는 증인이 나오면 방어하기 힘들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