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거주하던 A씨는 2017년 2월 길을 지나다 빙판길에 미끄러져 부상을 입었다. A씨는 15일 동안 입원했고, 치료비가 입원비를 포함해 527만원이 나왔다. A씨는 인천시가 도로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인천시를 상대로 약 1800만원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을 심리한 인천지법은 인천시도 절반의 책임이 있다고 보고 A씨에게 치료비 263만원과 위자료 150만원 등 총 413만원을 배상하라고 2018년 9월 판결했다. 사고를 일으킨 빙판길은 상수도 공사 과정에서 유출된 물이 얼어 생겼는데, 인천시가 물이 얼지 않도록 도로를 관리할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최근 영하권 한파가 이어지고 눈까지 내리면서 빙판길 낙상 사고와 교통사고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휴대전화를 사용하면서 걷는 등 도로를 살피지 않고 걷다 순식간에 미끄러져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는 빙판길 사고의 경우 상황에 따라 국가나 지자체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가·지자체가 도로·계단 등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해 결빙이 생기고, 이로 인해 낙상사고가 발생하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배상법에 따르면 도로·하천 등 공공 영조물(국가 등에 의해 공공의 목적에 공용되는 인적·물적 시설)에 대한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손해가 발생할 경우 국가·지자체가 배상을 해야 한다.
빙판길로 인해 발생한 교통사고도 관리 소홀이 인정된다면 정부·지자체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앞서 승용차를 운전하던 B씨가 충북 진천군의 한 교차로에서 빙판길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레미콘 차량을 들이받아 뇌좌상·뇌출혈·늑골 다발성 골절 등 각각 전치 6~8주 진단을 받은 사건에 대해 청주지법은 2011년 11월 국가가 B씨에게 3억3958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당시 사고가 발생했던 도로는 원인불명의 누수현상이 발생하는 겨울철 상습 결빙구간이었다. 정부는 ‘결빙주의’ 표지판을 세우고 모래주머니까지 설치했지만, 재판부는 충분한 조치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도로 결빙으로 인한 사고가 충분히 예상되는 곳”이라며 “운전자는 결빙 여부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반면, 정부는 도로가 결빙될 수 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제설제를 살포하는 등 충분한 방호조치를 취하지 않아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전성이 결여돼 있다”고 판시했다.
2006년에는 아파트 현관문에서 빙판길 낙상 사고를 당한 경우에도 주택도시공사의 책임을 인정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에 거주 중이던 C씨는 아파트 현관 앞 빙판에서 미끄러져 좌족관절부 골절 등 전치 8주의 상해를 입었다. 서울서부지법은 아파트 임대사업자인 서울주택도시공사가 관리책임을 소홀히 했다고 보고 40%의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모든 빙판길 사고에 국가·지자체 과실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법조계는 도로 결빙 등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할 것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는지, 사고를 막기 위한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는지에 따라 국가·지자체의 책임 여부가 갈린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 인천에 거주하는 D씨는 1999년 인천 남동구의 한 도로에서 승용차를 몰다 빙판길에 미끄러져 반대편에서 운행하던 버스와 충돌했는데, 서울남부지법은 약 6년 뒤인 2005년 지자체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자체가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주의의무를 충분히 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도로관리자에게 부과되는 주의의무 정도는 관리 주체의 재정적·인적·물적 제약을 고려하는 등 상대적인 안정성을 갖추는 것으로 족하다”며 “사고 장소에 빙판이 일부 형성돼 있다 할지라도 도로에 형성된 모든 빙판을 일시에 제거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빙판 제거작업이 실시되지 않은 도로 구간에서는 D씨 스스로 도로상황에 알맞은 방식과 태도로 운전함으로써 사고발생 위험을 방지해야할 주의의무가 있다”며 “겨울철 비가 내린 직후 도로를 통행하는 경우 운전자로서 노면이 결빙돼 미끄러운 곳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하거나 인식할 수 있다. 도로상황에 대한 경고나 위험표지판 등을 설치하지 않았다고 하여 도로 관리에 하자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