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나 횡령, 배임 같은 경제범죄는 자본주의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보이스피싱이나 전세 사기 같은 범죄는 서민들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기도 한다. 정부와 검경이 경제범죄와의 전쟁에 나서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진화하는 수법 탓에 피해 건수와 액수는 매년 늘고 있다. 조선비즈는 경제범죄를 심층적으로 파헤쳐 추가 피해를 막고 범죄 예방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편집자주]
“친구한테 4000만원을 빌려준 걸 부모님이 알아버리셨어. 부모님이 화가 잔뜩 나서 내 계좌를 잠가버리셨어. 돈 빌려준 친구 이름으로 내 계좌에 송금 좀 해줄래?”
지난해 10월 15일 A(22)씨는 당시 교제하던 여자친구에게 급작스레 금전을 요구했다. 이들은 같은 달 초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만난 사이다. 부잣집 도련님 분위기를 물씬 풍긴 A씨는 데이트 앱에서 만난 여성과 금세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그러던 중 A씨는 “친구에게 큰돈을 빌려줬으나 부모님이 이를 알아차리고 자신의 계좌를 정지시켰다”며 여자친구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여자친구는 A씨 계좌로 350만원을 송금했다.
그러나 A씨는 부유한 집안의 자제가 아니었으며 친구에게 돈을 빌려준 적도 없었다. 사실 그는 도박 등으로 5500만원가량의 빚을 떠안은 ‘신용불량자’였다. A씨는 이러한 방법으로 지난해 10월에서 12월까지 여자친구에게서 5670만원을 받았다.
사랑을 빌미로 한 A씨의 범행은 해를 넘겨 이어졌다. 올해 3월 그는 데이트 앱에서 다른 여성을 만났다. 이번에도 금방 교제에 성공한 A씨는 전 여자친구에게 썼던 수법을 사용했다. “친구에게 4000만원을 빌려줬는데 부모님이 내 계좌를 정지시켰다. 내 계좌에 친구 이름으로 돈을 보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A씨는 올해 4월부터 5월까지 17차례에 걸쳐 여자친구에게 4121만원가량을 뜯어냈다.
A씨는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올해 10월 19일 서울북부지법 형사13단독(김병훈 부장판사)은 사기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또한 배상신청인에게 편취금 4000만원을 지급할 것을 명했다. 재판부는 “A씨가 사기죄 등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사기 등으로 범행을 저지르고 피해금액이 1억원에 이르는 점은 불리한 정상”이라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사랑을 빌미로 사기를 치는 이른바 ‘로맨스스캠’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로맨스스캠이란 연애를 뜻하는 ‘로맨스(Romance)’와 신용사기를 뜻하는 ‘스캠(Scam)’의 합성어로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접근해 친분을 쌓고 연인 관계로 발전한 뒤 각종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는 사기를 뜻한다. 말 그대로 이들은 사랑으로 상대를 현혹하고 허위로 쌓은 신뢰로 돈을 가로챈다.
지난 11월 29일 경북경찰청은 자신들이 해외에서 근무하는 군인·의사인 것처럼 속여 12명에게 로맨스스캠 수법으로 6억5000여만원을 가로챈 이집트 국적의 피의자 4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영국에 살고 있는데, 곧 한국에서 쥬얼리 가게를 하려고 한다. 돈을 화물로 보낼테니 보관해주고, 우선 통관비 500만원을 빌려달라”는 식으로 피해자들을 속였다.
국가정보원 국제범죄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국가정보원 신고센터(111콜센터)’에 접수된 로맨스스캠 피해 접수 건수는 28건이다. 이는 2020년 9건과 비교하면 3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연도별 피해 규모 역시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의 피해가 20억7000만원으로 2020년(3억7000만원)과 비교해 급증했다.
로맨스스캠에 당하지 않는 방법은 보이스피싱 예방법과 비슷하다. 상대를 덜컥 믿기보다는 객관적인 상황을 놓고 판단해야 한다. 소셜미디어상으로 접근해 금전을 요구하는 이들은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한 일선 경찰서 수사팀장은 “로맨스스캠을 시도하는 범죄자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화를 주고받으며 친분을 쌓으려 시도한다”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재력이 많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음을 자랑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말했다. 이어 “로맨스스캠 피해자들은 호기심을 내보였다가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금전 거래를 요구할 경우 의심하고 검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