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나 횡령, 배임 같은 경제범죄는 자본주의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보이스피싱이나 전세 사기 같은 범죄는 서민들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기도 한다. 정부와 검경이 경제범죄와의 전쟁에 나서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진화하는 수법 탓에 피해 건수와 액수는 매년 늘고 있다. 조선비즈는 경제범죄를 심층적으로 파헤쳐 추가 피해를 막고 범죄 예방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편집자주]
“정부가 관리하고 있는 비자금 수백억원이 있습니다. 작업 비용만 대면 이걸 빼내서 큰 수익을 얻게 해주겠습니다”
2017년 1월, A씨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B씨에게 솔깃한 제안을 들었다. 1억원의 작업비용만 투자하면 정부에서 관리하고 있는 비자금 300억원을 가져와 수억원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B씨는 “비자금 300억원을 가져오려면 우선 100억원의 수표가 있어야 한다. 100억원 수표를 빌리는 데 하루 이자가 3000만원인데, 3일만 빌리면 된다”며 “1억원을 빌려주면 그 돈으로 100억원 수표를 빌려와 300억원 비자금과 교환할 것이다”고 A씨를 유혹했다. 그는 A씨에게 비자금을 빼낸다면 원금 포함 5억원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만약 이행하지 못했을 때에도 1㎏ 골드바 4개를 지급하겠다고 말하며 골드바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A씨는 두차례에 걸쳐 총 1억원을 B씨 명의의 은행 계좌로 송금했다. 그러나 B씨의 주장은 모두 거짓이었다. 그는 1억원을 송금 받아 개인 채무를 변제하거나 범행에 사용할 자금 잔액증명서 등을 만드는데 사용할 생각이었다. 심지어 정부에서 관리하는 비자금도 없었으며, A씨에게 보내준 골드바와 돈다발 사진도 다른 사람에게 받은 가짜였다.
B씨는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지난 8월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은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20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A씨는 지난 2019년과 2021년에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사기)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재판부는 “가로챈 금원이 적지 않음에도 피해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정부의 비자금’을 빼서 수익을 나눠주겠다며 피해자에게 돈을 편취하는 방식의 사기는 과거부터 꾸준히 발생해왔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피해는 끊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숨겨진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거나, 비자금이 숨겨진 곳을 알고 있다며 이를 빼내기 위한 작업비를 피해자에게 요구하는 방식으로 범행을 저지른다.
최근에도 유사 범죄가 발생했다. 지난달 28일 경기 안양동안경찰서는 특정경제범죄법 위반(사기) 혐의로 50대 C씨 등 4명을 구속 송치하고, 4명을 불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 2019년 11월부터 평소 알고 지내던 70대 사업가 D씨에게 “정부가 비자금 명목으로 비밀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금괴 수천 톤을 빼내면 수백억원의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유혹해 작업비 명목으로 48억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다.
C씨는 D씨에게 자신의 일당을 사업가로 속이고, 정부 관료들과 친분이 있는 것처럼 속였다. 이들이 D씨에게 보여준 금괴 및 돈다발 사진은 온라인 상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이들은 48억원의 돈을 가로채고 이를 분배해 생활비 등으로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사기 혐의로 기소된 E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그는 일당과 함께 사업 자금이 필요한 피해자들을 상대로 “정부에서 음성적으로 관리하는 자금이 있는데, 5억원을 주면 정부 자금 50억원을 활성화해 지급해줄 수 있다”는 취지의 거짓말을 해 총 5억원의 계약금을 받아냈다.
또한 이들은 ‘전직 대통령의 현금 비밀창고가 있어 그 자금을 유통시킬 수 있다’는 소문을 이용, ‘150억원의 수익금을 나눠주겠다’고 피해자들을 유혹해 5000만원 상당의 수표를 건네받아 이를 가로채기도 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정부가 수백억원 규모의 비자금을 음성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주장이다”며 “범죄자들은 사진을 증거로 정계 관계자들과의 친분을 내세우기도 하고, 실제 현금 비자금이나 금괴 사진을 보여주며 현혹하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는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 고수익을 보장하면서 현금을 빌려달라고 하면 사기를 의심해야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