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의 14층짜리 상가건물 뒤편 거리에는 5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근처 한 식당 입구에 ‘금연, 가게 입구입니다. 담배 냄새가 안으로 들어와요’라는 경고문이 무색할 정도였다. 일부 비흡연자들은 뿌연 담배연기를 의식한 듯 마스크를 코 위까지 올려썼다. 거리 곳곳에는 담배꽁초와 담뱃갑이 버려져 있었고, 하수구에도 꽁초가 수북했다.
이 거리 근처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모(55)씨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담배를 피워 경고문까지 붙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피운다”며 “식당이라 특히 냄새에 민감한데, 문만 열어두면 담배 냄새가 들어와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구청이 나서 흡연자들이 따로 모여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흡연자들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금연구역이 아닌데도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면 흡연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만난 김상현(38)씨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흘깃 쳐다볼 때마다 눈치가 보인다”며 “그렇지만 마땅히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장소가 없어 거리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실외 마스크 착용이 해제되면서 흡연구역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시작됐다. 비흡연자들은 담배 연기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지만, 흡연자들은 마땅한 흡연구역을 찾지 못해 거리·골목 등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흡연자·비흡연자 모두 흡연구역을 늘리자는 데는 동의하지만, 흡연구역 지정은 각 건물주의 자율에 맡겨 놓고 있어 좀처럼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작년 12월 기준 서울 내 금연구역은 28만8961곳이다. 금연구역이 아닌 곳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있다. 금연구역 28만여곳을 제외한 모든 곳이 사실상 ‘흡연 가능 구역’인 셈이다.
갈등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비흡연자들은 거리·골목 등에서 금연을 요구하고 있지만, 비흡연자들은 금연구역이 아닌 곳에서는 담배를 피워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흡연구역이 충분하면 모르겠지만 거리에서 흡연구역 찾는 것도 어렵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흡연자인 이모(43)씨는 “담배 냄새가 안 좋은 건 알고 있다”면서도 “비흡연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어 흡연구역을 분리해주면 편하게 흡연을 하고 싶다”고 했다.
현행법상 흡연구역 설치는 공중 이용시설 등 건물 주인이 자율적으로 설치하도록 돼 있다. 2018년 12월 기준 서울 내 흡연구역은 6200여곳에 불과하다.
정부가 걷어들이는 담배 관련 세금을 흡연구역 확충에 써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매일 담배 1갑을 피우는 흡연자의 경우 1갑 가격의 73.7%인 3318원을 세금으로 내고 있는데, 이 중 일부를 흡연구역 확충에 사용하자는 취지다.
윤석열 대통령도 ‘흡연구역 확충’을 대선공약으로 내놓은 바 있다. 담배에 포함된 세금을 재원으로 흡연부스 설치를 늘려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공간을 분리한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지자체마다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흡연구역 확충까지는 갈 길이 멀다. 서울시 관계자는 “각 지자체나 서울시 정책상 흡연구역 설치를 지양하고 있다”며 “서울시가 주도적으로 흡연구역을 설치할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