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여기서 하는 거예요?”

'남가좌제2동 제2투표소'로 바뀐 서대문구 남가좌2동의 한 썬팅 가게./김민소 기자

1일 오후 2시 40분쯤, 투표소를 찾아온 정모(52)씨는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2동에 있는 한 썬팅 가게 앞에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남가좌제2동 제2투표소’를 찾아왔지만 투표소처럼 보이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썬팅 가게 바깥에 앉아있는 투표사무원이 정씨에게 “신분증 꺼내주세요”라고 하자, 그제서야 정씨는 투표소가 썬팅 가게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이 동네에서 하는 첫 투표인데, 썬팅 가게에 투표소가 있을 줄은 몰랐다”며 “모바일 지도에 투표소가 썬팅 업체로 떠서, 같은 건물에 있는 다른 층인 줄 알고 어디에 있나 찾고 있었다”고 했다.

이날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위해 설치된 이색 투표소들이 유권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투표소는 보통 주민센터·관공서·학교 등에 설치되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민간시설에 마련하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민간 장소를 빌려 투표소를 운영한다는 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측의 설명이다. 이날 조선비즈 취재진은 자동차 썬팅업체를 비롯해 웨딩홀 로비, 장난감대여소, 북카페 등에 설치된 이색투표소를 직접 다녀왔다.

서울 구로구의 한 웨딩홀 프로포즈 로비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민영빈 기자

이날 서울 구로구의 한 웨딩홀 프러포즈 로비는 구로5동 제1투표소로 변신했다. 투표관리원들은 그랜드피아노가 놓인 무대 앞 로비에 마련된 책상에 앉아 신분을 확인한 뒤 투표용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반대편에는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을 수 있는 기표소가 일렬로 줄지어 있었고, 유권자들이 투표를 제대로 하는지 참관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집에서 3분 거리에 있는 웨딩홀이라 간편한 차림으로 나온 유권자 염진희(23)씨는 “아무래도 주민들이 투표하기 쉽게 가까운 곳에 있는 웨딩홀을 투표소로 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19살 막내딸과 함께 투표를 온 김모(50)씨는 “올해 처음 지방선거 투표를 하는 딸과 같이 웨딩홀에서 투표를 했는데, 나중에 얘가 시집간다고 할 때 드는 감정을 미리 느끼는 것 같았다”며 “딸과 함께 투표를 하러 웨딩홀로 오는 건 확실히 재밌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 경험”이라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도화장난감대여점 역시 도화동 제2투표소로 탈바꿈했다. 이 투표소에는 알록달록한 종이꽃들이 게시판에 붙여져 있었고, 벽 천장에는 ‘탐색/조작놀이’, ‘역할놀이’라는 팻말이 매달려 있었다. 한쪽 벽면에 가득 진열돼 있던 장난감, 인형 등은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대신 그 앞에 다섯 개의 기표소가 설치돼 있었다. 평소 장난감을 대여해주던 자리는 투표관리원의 몫이 됐고 각종 장난감이 놓여있던 책상 위에는 ‘투표참관석’이라는 팻말이 있다.

장난감 대여점 인근 아파트에 거주하는 이유정(32)씨는 “딸아이와 함께 장난감을 대여하러 자주 들리는 곳인데 투표소로 변해 놀랐다”며 “집 가까이 투표소가 설치돼 있어 편리하다”고 했다. 또 다른 유권자인 최모(43)씨는 “지나가면서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장난감 대여소에 들어와 보긴 처음”이라며 “이색 투표장을 체험한 것 같아 신선하고 재밌는 경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1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 한 북카페에서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김민국 기자

같은 날 오후 서울 은평구 응암동의 한 북카페는 유권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곳은 평소 책과 커피를 찾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장소다. 북카페는 이날 ‘응암3동 제3투표소’로 지정돼 운영되고 있었다. 한 중년 남성은 벽이 샛노란 투표소의 외벽을 보고는 어색하다는 듯이 두리번거렸다. 부모님을 따라온 한 아이는 “원래 커피를 팔던 곳 아니냐”며 엄마한테 물었다. 투표소 내부도 이 공간의 용도를 증명하듯이 책으로 가득차 있었다. 투표를 마친 한 시민은 화장실로 향하다 책이 꽂혀있는 수납장을 보고서는 신기하다는 듯이 구경했다.

이곳에서 첫 투표를 한 이모(19)군은 “투표장의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며 웃었다. 이군은 “평소 독서를 좋아해 종종 이곳을 찾곤 하는데 기분이 묘하다”며 “이후에 있을 투표도 이런 색다른 공간에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응암동에 이사를 온 뒤 ‘북카페 투표소’를 처음 방문한 김모(76)씨는 “젊은이들이 좋아 할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우리같이 나이 든 사람들이 투표를 위해 방문하기에는 조금 어색한 장소이긴 하다”면서도 “가끔은 이런 장소에서 투표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투표소로서 격식 없는 공간이 적합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응암동 주민 이모(73)씨는 “투표는 국가의 중대사인 만큼 산만한 공간보다는 주민센터 같은 관공서에서 하는 게 보기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