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형사가 감에 의존해 범인을 찾는 시대는 지났다. ‘살인의 추억’ 박두만 형사 대신 ‘시그널’ 박해영 경위가 우리에게 더 익숙한 경찰의 모습이다. 첨단기술을 활용해 범인을 잡는 건 드라마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경찰이 일선 현장에서 어떤 첨단 기술을 활용해 범죄를 예방하고 범인을 잡는지 들여다봤다.
지난 9월 26일 오후 6시 30분, 서울 동작경찰서 사당지구대 소속 김기태 순경이 순찰차에 올랐다. 사당은 유흥가와 좁은 골목길이 밀접해 있어 순찰할 때마다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지역이다. 김 순경은 차량 내비게이션을 켠 뒤 익숙하게 인공지능(AI) ‘프리카스(pre-CAS)’를 작동시켰다.
프리카스를 켜자마자 지도 곳곳에 ‘JG’와 ‘TS’라고 쓰인 파란색 화살표가 떴다. JG는 과거 범죄가 수차례 일어나 3등급 내 고위험군 위험지역이라는 뜻이고, TS는 지역 주민이 순찰을 요구한 위치다. 화살표를 클릭하면 그곳에서 발생했던 과거 범죄·사건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김 순경은 프리카스가 알려준 JG·TS 지역을 바탕으로 순찰 루트를 짰다. “300m 앞, 우회전입니다.” 순찰차가 출발하자 익숙한 안내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프리카스는 그동안 축적된 112 신고, 설치된 폐쇄회로(CC)TV 위치, 교통사고 건수, 유흥시설 숫자, 학교, 공원 등은 물론 인구, 기상, 실업률, 고용률 등 각종 데이터를 자동으로 분석해 범죄 위험도를 예측하는 시스템이다. 특정 요일, 특정 시간에 어디에서 범죄가 발생할 확률이 높은지 분석해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김 순경은 프리카스가 짜준 노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CCTV와 여성 안심벨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위험물은 없는지 확인했다. 프리카스가 연동된 업무용 휴대전화에 이상 유무를 체크하면 해당 정보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김 순경은 “이전에는 감에 의존해 범죄 가능 지역을 예측해 순찰을 했는데, 이제 프리카스를 통해 범죄 확률이 높은 곳을 위주로 돌 수 있게 됐다”며 “순찰을 하면서 CCTV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고, CCTV가 필요한 구간도 생각해볼 수 있어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프리카스 도입으로 순찰 전 진행되는 일일 상황 보고 풍경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주요 사건 내용과 범죄 추세 등을 하나하나 공유한 뒤 순찰에 나섰지만, 이제는 프리카스가 분석한 결과를 통해 빠르지만 세세한 지시가 가능해졌다. 이날도 “오후 8시쯤에 폭행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하니 대기하다 상황 발생 시 신속히 대응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프리카스는 단순히 순찰 내비게이션 역할만 하지 않는다. 112 신고 내용 추세 등을 통해 범죄와 신고 간 상관관계를 파악하거나 신고된 키워드를 활용해 방범시설 증가 필요성 등도 알려준다. 그밖에 프리카스에 통합된 범죄 예방 자료들을 비교 분석할 수도 있다.
프리카스는 경찰의 출동 시간도 단축해줬다. 어느 지역에서 어느 시간대에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지 알려주기 때문에 선제적인 대응이 가능해진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프리카스 시범 운영 기간이었던 지난 6월 26~30일 112 신고 이후 출동에 걸리는 시간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초 단축됐다. 이형진 동작경찰서 경위는 “29초가 크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폭행 살인 등 중범죄 같은 경우엔 시민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경찰청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경찰의 ‘프레드폴(PredPol)’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프리카스를 약 8억원에 들여왔다. 프레드폴은 지역별 주요 범죄율 등을 분석해 잠재적인 범죄 가능성을 예방하는 식으로 운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