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쟁이 오빠 나 맥주 당기는데 같이 마시러 안 갈래?”
지난 7일 오후 8시쯤 서울시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포장마차촌에서 검은 옷을 입고 빨간 스카프를 둘러맨 여성이 한 남성에게 이같이 말하며 접근했다. 60대쯤 돼 보이는 남성은 “비도 오는데 술이나 한잔하자”며 고개를 끄덕이자 여성은 곧장 남성에게 팔짱을 꼈다. 여성은 저녁시간쯤 탑골공원에 나와 외로움을 달래려는 노인들과 함께 술이나 밥을 함께 먹으며 말벗을 해주고 돈을 받는 이른바 ‘올빼미 아줌마’였다.
이들은 서울 종로구 낙원동 ‘송해길’ 초입에 위치한 한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해물짬뽕탕과 함께 소주·맥주를 시키고는 본격적인 술자리를 시작했다. 여성은 남성 옆자리에 꼭 붙어 앉아 남성이 하는 이야기에 열심히 맞장구를 쳐줬다. 남성이 과거 다방에서 만난 여성들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자 여성은 남성을 치켜세워주며 호응해줬다.
남성이 “이 일을 한 지 얼마나 됐냐”고 묻자 여성은 “내가 쉰여섯이니까 2~3년 정도 됐지”라며 “가게 일 그만두니까 이제 할 것도 없고”라고 답했다. 그렇게 30분쯤 시간이 지나자 여성은 남성으로부터 지폐 한 장을 건네받은 뒤 빠른 걸음으로 가게를 나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인해 발걸음이 뜸했던 탑골공원이 외로움을 달래려는 노인들로 북적이고 있다. 낮에는 여느 때와 같이 무료 급식소가 만석이었고, 밤에는 올빼미 아줌마와 술 한잔 기울이는 노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탑골공원과 낙원동 일대를 매일 같이 찾는다는 80대 남성 김모씨는 “밥 먹으러 가서 돈 주는 건 40대 여자고, 더 나이 많은 사람이랑은 내 돈 내고 밥 먹지는 않는다”고 했다.
김씨의 말처럼 ‘올빼미 아줌마’는 이곳에서는 비교적 젊은 ‘4050′ 중년층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전에는 불법 성매매를 하는 ‘박카스 할머니’가 많았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박카스 할머니가 줄고 그 자리를 올빼미 아줌마가 채웠다고 한다. 모텔이나 정해진 장소에 가서 성매매를 하는 박카스 할머니와 달리 올빼미 아줌마는 낙원동 일대의 술집에서 함께 30분이나 1시간 정도 술을 함께 마시고 1만원이나 2만원 정도를 받는 게 차이점이다.
이 일대를 순찰하는 파출소 관계자는 “코로나 전에는 박카스 할머니와 관련된 노인 성매매 신고가 하루에 2건 정도 꾸준히 들어왔는데 최근에는 아예 신고가 없다”고 전했다. 올빼미 아줌마와 관련해서는 “성매매로 이어진 것은 아니라 단속하기도 어렵고 처벌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탑골공원은 낮 시간에도 노인들로 가득했다. 대신 전과 달리 노인들의 시끌벅적한 웃음소리나 대화소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난 5일 점심 무렵에 찾은 탑골공원 내 무료 급식소에는 노인들 약 600명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노인들의 식사하는 풍경이 이색적이었다.
코로나 집단감염을 우려해 종로구청이 수백개의 간이 책상과 의자를 모두 벽을 따라 배치한 것이다. 수백 명의 노인들은 벽을 바라보며 한줄로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따금 옆에 앉은 노인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조용히 식사를 마쳤다. 혹여나 코로나 확진자라도 나오면 무료 급식소가 폐쇄될까봐 스스로 조심하는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박동구(가명·78)씨는 “여기 온 노인들 거의 다 백신도 맞았고, 외로워서 얘기나 하려고 오는 건데 조용히 밥만 먹고 각자 갈 길 가는 게 서글프다”며 “쉴 곳도 없어서 바로 집에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아내와 사별한 뒤 탑골공원을 자주 찾는다는 최모(68·남성)씨도 “아들과 딸이 4명이나 있는데도 애들이 오지 않으니까 외로워서 여기 나온다”며 “예전에는 여기 나오는 사람들이랑 좀 친해지기도 하고 말벗도 하고 했는데 요즘은 그런 게 어딨냐. 다 조용히 끼니만 해결하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탑골공원에서 무료급식을 운영하고 있는 고영배 사회복지원각 사무국장은 “혼자 계신 어르신들이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사별과 이혼 등의 이유로 대화상대가 없으니 많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30% 정도는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노숙인 등이고, 나머지 70%는 말할 사람이 없어 심심해 오는 어르신들”이라고 덧붙였다.
노인들은 코로나로 인한 우울증인 ‘코로나 블루’ 취약계층이다. 가뜩이나 사회활동이 쉽지 않은데 그나마 있는 통로들마저 코로나 감염 우려로 제한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보건복지부가 올 2분기에 조사한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 노인 연령인 60대와 70대의 자살 생각 비율이 지난해 5월 4.71%에서 올해 6월 8.17%까지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노인들이 ‘코로나 블루’를 극복할 수 있도록 방역조치를 제한적으로라도 완화해줘야 한다고 설명한다. 김범중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에서 방역 지침을 강화하면서 사회적 기능이 떨어지는 1인 가구 노인들의 경우 사회적 관계망이 빠르게 축소됐다”며 “어르신들 중 대부분은 백신을 맞으셨기 때문에 복지시설을 소규모로 운영하며 부분적인 대면 만남을 허용해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그동안 가부장제에서 살아왔던 남성 노인들의 경우,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관계가 단절되면서 자살률이 높아진다는 통계가 있다”며 “남성 노인들이 혼자서도 잘 생활할 수 있도록 교육과 지원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