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준비하고 있다. / 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법조 경력이 없는 비(非)법조인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게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26일 철회했다. 이와 함께 대법원장을 포함해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증원하는 법안도 철회했다. 다만 대법관을 30명으로 늘리는 법안은 그대로 추진하기로 했다.

이날 민주당이 철회한 법안들은 애초부터 무리한 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비법조인을 대법관으로 임명하는 제도는 정권의 사법부 장악이 문제된 베네수엘라에서도 채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특정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이 대법관이 되더라도 재판을 할 때는 법률적 한도를 분명하게 지키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법조인은 “이재명 후보가 대법원에서 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유죄 취지의 파기 환송 판결을 받자 민주당이 ‘비법조인 대법관’ ‘대법관 100명 증원’ 법안을 추진했다”면서 “입법 의도 자체가 순수하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대법관 30명 증원 법안이 통과된다면 특정 정치 성향의 대법관이 대거 임명될 수 있다”며 “이 후보가 대법관 10대 2 의견으로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 판결을 받자 민주당이 대법원 구성 자체를 바꾸려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 베네수엘라도 15년 이상 법조 경력 있어야 대법관 될 수 있어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세계 각국 중에 대법관 증원이 가장 문제되는 사례로 베네수엘라가 꼽히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1999년 정권을 잡은 군부 출신 좌파 지도자 우고 차베스가 국민투표를 통해 입법부를 무력화하고, 그다음 사법부를 장악해 지금의 경제 위기를 맞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차베스는 2004년 대법관 수를 20명에서 32명으로 늘렸다. 친정권 인사들이 대법관에 임명돼 정권에 편향적인 판결을 했다. 2013년 차베스가 사망한 뒤 차베스의 정치적 후계자로 평가받는 니콜라스 마두로가 당선됐다. 마두로는 2022년 대법관 수를 다시 20명으로 줄였지만, 12명이 기존 대법관이고 야권 성향이라고 평가받는 대법관은 3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베네수엘라도 대법관은 법조 경력을 갖춘 사람들 중에서만 뽑는다. 베네수엘라 헌법에 따르면 대법관이 되려면 최소 법학 석사 학위를 딴 뒤 15년 이상 법조 경력이 있어야 한다. 혹은 15년 이상 법학 교수로 재직했거나, 15년 이상 현직 판사로 재직 중이거나 재직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도 법조인을 대법관에 임명

주요 선진국들은 대법관에 법조인을 임명하고 있다. 미국 대법원은 대법원장 1명과 8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다. 미국 헌법은 대법관 자격요건을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이에 따라 대통령은 누구나 대법관 후보로 지명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대법관은 모두 정치 경험이 없는 법조인 출신이다. 한 현직 판사는 “대법관 자격이 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아도 법조인 중에서 뽑는 게 당연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했다.

영국은 헌법개혁법에 대법관은 ‘최소 2년 이상의 고위법관직 근무경력 또는 최소 15년 이상의 자격 있는 변호사’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모두 법관 자격이 있는 자에 한해 대법관이 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캐나다는 10년 이상의 법조 경력이 있어야 대법관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일본은 우리나라 대법원 격인 최고재판소 장관과 재판관 총 15명 중 3명은 법률가가 아니어도 임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970년 이후 비법률가 재판관 자리에는 검찰 출신 2명과 행정관(공무원)·외교관·대학교수 출신 각각 1명씩이 임명되어 왔다.

이에 대해 한 현직 법관은 “외교 분야 등 현직 법조인에게 익숙치 않은 영역을 심리할 때 조력할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제한적으로 비법률가를 대법관에 임명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