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14일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대법원이 지난 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자, 심리가 너무 빨리 진행됐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대법원장을 국회로 불러 설명을 듣겠다는 것이다.
국회가 대법원장을 청문회에 세우는 것은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동안 국회가 대법원장 청문회를 열지 않았던 것은 사법부 독립을 존중하려는 취지라고 볼 수 있다.
민주당도 4년 전에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을 증인으로 부르자는 국민의힘 주장에 반대하면서 “논란 되는 모든 재판에 무분별한 질의·응답을 할 수 있다”고 우려했었다.
당시 국회 논의 과정은 의사록 등에 잘 나와 있다. 지난 2021년 2월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전체회의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출석요구의 건’을 의사일정에 추가할 지를 두고 표결했다.
앞서 김 전 대법원장이 임성근 당시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하면서 “민주당이 국회에서 법관 탄핵 논의를 하고 있다”는 이유를 댔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였다. 이에 김 전 대법원장이 탄핵을 이유로 사표를 반려한 적이 없다는 취지로 해명했지만 임 전 부장판사가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거짓 해명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국회 법사위 표결에서 재석 의원 18명 중 12명이 반대하면서 대법원장 출석 요구는 이뤄지지 않았다. 반대한 의원 12명 전원이 민주당 소속이었다.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대법원장의 국회 출석요구라는 것이 삼권분립의 대원칙,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매우 크기 때문에 여태까지 대법원장들에 대한 여러 문제 제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사위에 대법원장이 출석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재판을 담당하는 대법원장이 국회에 출석하는 선례가 생기게 된다면 논란이 되는 모든 재판에 대해서 무분별한 질의·응답이 또 가능해지는 그런 문제도 있을 수 있고 매우 위험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도 했다.
아울러 국정감사권이 부활한 1988년 이후에 국회가 대법원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한 사례도 없다.
한 법조인은 “그동안 국회는 입법, 행정, 사법을 엄격하게 분립하는 헌법 취지를 고려해 대법원장을 국회로 부르는 것 자체를 자제해왔는데 이번 대법원장 청문회는 선을 넘은 것 같다”고 했다.
국회의 대법원장 출석 요구가 국정감사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정감사법 8조는 ‘감사 또는 조사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계속 중인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訴追)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하고 있다.
이번 대법원장 청문회는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심리 경위와 관련해 이뤄질 예정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인 상황이므로 대법원장이 이 사건과 관련해 청문회에 나와 어떤 발언을 하는 것 자체가 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법부장 출신인 한 법조인은 “대법원장이 국회 청문회에 출석하는 선례가 생기는 것 자체가 사법부 독립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면서 “국회가 청문회 개최를 재고하거나 대법원이 원장 출석 여부에 대해 분명한 기준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