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 연합뉴스

서울 강남 소재 A 법무법인의 대표변호사 B씨는 최근 한 중소기업 회장의 배우자 C씨를 상대로 약정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B씨는 불과 얼마 전까지 C씨의 이혼·재산분할 소송 법률대리인이었다. 서울가정법원 재판부는 C가 부부 재산의 35%에 해당하는 1000억대 금액을 분할받아야 한다며 사실상 C씨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판결이 나오자, C씨의 태도가 돌변했다고 한다. C씨는 재판부가 C씨의 위자료 청구를 기각한 것을 문제삼았다. 그러면서 “성공보수를 계약한 것보다 깎아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 재산분할 소송에서 성공보수는 확정된 재산분할 금액의 7~10%다. 1심 재산분할 금액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B씨가 받을 수 있는 성공보수는 수십억원에서 최대 1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B씨는 “소송으로 가도 고객 입장에서는 밑지는 장사가 아니기 때문에 종종 있는 일”이라고 했다. 법원은 변호사의 보수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소송으로 가면 법원이 “변호사에게 큰 돈을 줘야 할 정도로 복잡한 사건이 아니다”라며 보수를 계약한 것보다 낮게 지급하라고 판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법원의 판결 관행을 일부 의뢰인들이 악용하는 것이다.

◇ 금융사도, 정치인도 “보수 못 줘요” 소송전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변호사가 고객으로부터 착수금과 성공보수, 시간당 근무수당을 받지 못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고 사건 수임 경쟁은 치열해진 상황에서 계약한 것보다 보수를 덜 주려는 고객과 법정 공방을 벌이는 일이 부쩍 늘었다는 게 많은 변호사들 이야기다.

중견 법무법인 D사는 작년 국내 한 금융사를 상대로 보수 지급 명령을 신청한 끝에 약 3000만원을 받아냈다. D사는 이 금융사의 민사 소송 법률대리를 맡았는데 계약을 맺은 후 회사 경영진이 바뀌었다. 새로운 경영진이 계약한 보수를 깎아달라고 요구했고, D사는 지나친 요구라고 생각해 법원에 보수 지급 명령을 신청했다.

유명인이 성공보수를 지급하지 않았다가 소송을 당한 사례도 있다. 대법원은 지난 3일 법무법인 찬종이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을 상대로 낸 성공보수금 청구 소송에서 ‘이 의원이 성공보수 7700만원을 지급하라’고 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 의원은 국민의힘 대표였던 2022년 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전환을 막아달라는 취지의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

이때 법무법인 찬종이 대리인을 맡아 착수금 1100만원을 받았고 성공보수는 추후 협의하기로 했다. 법원은 1차 가처분 신청은 인용하고 이후에는 각하하거나 기각했다. 법무법인 찬종은 가처분 사건이 모두 끝난 후 이 의원에게 성공보수를 요구했으나 받지 못해 소송을 냈다.

◇ 대법원, 형사 성공보수 ‘무효’... 민사도 엄격하게 봐

앞서 대법원은 2015년 ‘형사 사건 성공보수 약정은 무효’라고 판결한 바 있다. 민법 103조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되는 계약은 무효’ 조항이 형사 성공보수 약정에 적용된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민사 소송에 대해선 성공보수가 무효라고 판단하지는 않았다. 다만 대법원은 성공보수가 적당한지 판단하는 일종의 기준을 제시했다. 성공보수는 사건 수임 경위, 의뢰인과의 관계, 착수금 액수, 사건처리의 경과와 난이도, 노력의 정도, 소송물 가액, 의뢰인이 승소로 얻는 구체적 이익, 변호사회의 보수규정 등을 토대로 결정돼야 한다고 했다.

이런 판례에 따라 변호사 민사 사건 성공보수를 감액하는 1·2심 판결이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023년 1월 한 법무법인이 상속 분쟁 사건 의뢰인과 성공보수를 두고 다툰 사건에서 ‘상속재산의 10%를 법률자문료로 한 것은 과도하다’는 의뢰인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계약한 보수 34억원이 아닌 5억1000여만원이 적정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사건에 특별한 법률적 쟁점이 있거나 사실관계가 복잡해 소송대리인의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법조계에선 법원이 성공보수 액수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것을 두고 찬반 의견이 있다. 일부 변호사가 의뢰인이 사건 승소에 절박하다는 점을 이용해 과도하게 높은 성공보수를 요구하는 관행이 법조 시장에 자리잡아서는 안 된다는 시각이 있다. 반면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법원에서의 변론, 제출 서면 등은 변호사가 하는 업무의 극히 일부”라며 “그것을 가지고 판사들이 성공보수가 많다 적다 하는 것은 ‘판사가 일을 다 하는데 변호사가 왜 이렇게 돈을 버냐’는 식의 사법부 중심주의 사고”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