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정부가 오는 20일 공식 출범한다. 앞으로 미국은 세계 각국을 상대로 다양한 제재를 강화할 전망이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국가 전략이 필요한 시기다. 국내 주요 로펌의 산업·통상 전문가 4명이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편집자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중간선거까지 2년간 성과를 내기 위해 각종 정책을 밀어부치는, 소위 광풍이 몰아치는 시기가 될 수 있다.”
임성남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은 17일 서울 종로구 태평양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트럼프 정부가 정책 성과를 내고자 하는 초반 2년에 협상 속도전에서 밀리면 청구서가 불어난다”고 했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11월 당선된 뒤 미국 조선업을 언급하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 바 있다.
임 고문은 “우리 정부와 기업은 트럼프 정부의 요구를 기다리지 말고, 먼저 제안할 수 있는 협상 카드를 여러 개 주머니에 넣어놔야 한다”고 했다. 미국이 특정 품목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기 전에 한미 양국에 모두 유리한 정책을 마련해둬야 한다는 것이다.
임 고문은 외교부에서 40년 근무하며 북미과장, 한미 안보협력관, 북핵외교기획단장, 주중대사관 공사,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1차관 등 요직을 거쳤다. 외교부 1차관이던 2017년 6월 문재인 전 대통령과 트럼프의 한미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임 고문은 “트럼프 1기를 경험해봤지만, 그때의 경험만을 가지고 2기 정책을 예측할 수는 없다”고 했다. 트럼프 1기 땐 공화당 온건파가 참모진 내에서 주류였지만, 2기 참모진은 대부분 트럼프 충성파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임 고문과 일문일답.
-트럼프 1기 외교 정책을 토대로 2기의 방향성을 전망해본다면.
“트럼프 1기 때는 소위 어른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같은 사람들은 온건한 공화당 인사다. 기본적으로 국제 협력을 중시하기 때문에 트럼프가 너무 나가려고 하면 말리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지금 트럼프 2기 진용을 보면 기본적으로 트럼프 충성파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 1기 때 외교관으로 재직했던 경험이 도움이 되겠지만, 그 때의 경험 만으로 2기를 예측하고 대처하는 것은 바보짓일 수 있다. 지금의 상황도 새로운 국면으로 인식하고 대처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이 처한 상황은 트럼프 1기와 비교해 어떻게 달라졌나.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운전석에 정치·외교가, 조수석에 과학·기술이, 승객석에 경제·통상이 앉아있는 형국이다. 경제와 통상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독립 변수가 정치와 외교가 됐다. 기업 외교의 시대가 됐다. 정치와 외교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기업들도 과거에 비해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
-트럼프 2기를 앞두고 정부와 기업이 가장 우려하는 것이 보편 관세 부과 가능성이다.
“트럼프가 취임 전에 공언했던 보편 관세, 중국에 대한 고율 관세를 전면적이고 즉각적으로 부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관세를 올리면 물가 상승이 초래되고 결국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높아진다. 작년 7월 채택된 공화당 정강정책 서문을 보면 트럼프 2기 정책을 예측해볼 수 있다. 서문 1·2번은 이민 정책이고 3번이 ‘엔드 인플레이션(End Inflation)’이다. 인플레이션을 끝내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참모진 사이에서도 관세를 두고 선별 부과할지, 점진적으로 부과할지 등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작년 기준 미국의 10대 무역적자국에 포함된다. 트럼프가 무역적자 해소를 핵심 정책으로 꼽는 만큼 우리나라를 향한 무역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을 설득할 창의적인 논리를 잘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이 대미 무역흑자가 많이 나지만, 투자를 위한 수출이 많았던 것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지 않나. 인베스트먼트 드리븐 엑스포트(investment driven export), 즉 투자가 이끄는 수출이었다고 설득할 수도 있다. 공화당은 정강정책에 미국을 제조업 초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미국의 제조업 부흥 과정에 한국이 기여하고 협력할 수 있는게 뭔지를 적극 알려야 한다.”
-트럼프는 거래를 하듯 협상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 정부는 협상할 때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할까.
“트럼프가 애독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추천한 책이 손자병법이라고 한다. 손자병법에는 ‘전쟁을 하지 않고 남을 굴복시켜라, 속임수를 세워 전투에 임하라’라는 말이 나온다. 트럼프는 첫번째 집권 때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트럼프가 작년 11월 대선에서 승리한 뒤 캐나다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하자 트뤼도 전 총리가 트럼프 사저인 마러라고 리조트까지 찾아가지 않았나. 그런데도 트뤼도 전 총리가 사퇴했다. 트럼프가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할지 말지는 알수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싸우지 않고 굴복을 시킨 셈이다. 너무 패닉하고 두려워할 필요 없다. 트럼프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면 된다.
큰 틀에서 조언한다면, 트럼프의 임기는 4년이지만 가장 중요한 기간은 전반부 2년이다. 이 2년간 소위 광풍이 몰아치는 시기가 될 수 있다. 트럼프 입장에선 중간선거에서 승리해 의회에서 우위를 점해야만 본인의 정책 아젠다를 실천할 수 있다. 이 기간 정책 성과를 내기 위해 해외 국가들과 협상을 빨리 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런 속도전에 잘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무언가를 먼저 요구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제안할 여러 개의 안을 주머니에 넣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 대응이 늦으면 자칫 청구서만 불어날 수 있다.”
-트럼프 2기 정책을 예측하기 어려워 우리 기업들의 우려도 크다.
“우리 기업간 공동 대응도 필요하다. 점과 점으로 대응하지 말고, 점을 선으로 잇고, 선을 면으로 만들어 대응해야 한다. 트럼프를 달래기 위해 개별 기업이 미국에 투자를 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자동차, 조선 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이 협력한다면 미국에 대한 더 좋은 협상 카드가 나올 수 있다. 예컨대 미국에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유예해주면 조선업 분야와 관련해 미국과 협력할 수 있다는 식의 제안을 할 수도 있다. (트럼프는 작년 11월 당선된 후 윤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미국 조선업이 한국의 도움과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기업 뿐 아니라 정부 부처도 공동 대응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미중 갈등이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할까.
“지금의 신냉전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초강대국이 대립하면서도 서로 경제적으로 샴 쌍둥이 수준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두 국가가 서로를 완전히 잘라버릴 수는 없다. 어느 한 국가에 밀착해야 한다는 식의 지향성을 가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보수 정권은 친미(親美) 성향이고, 진보 정권은 친중(親中) 정권이라는 도식적인 사고로부터 벗어날 필요도 있다.”
-트럼프가 다시 한번 북한 김정은과의 만남을 추진할까.
“북한 문제는 지금 트럼프의 우선 순위에서 밀려있다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사태에 더 관심이 많을 것이다. 지난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이 실패했다는 뼈아픈 기억도 아직 남아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외교부 1차관으로 임명돼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유임돼 2018년까지 차관으로 일했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소추됐다는 점에서는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다.
“그때와 지금은 큰 차이가 있다. 탄핵 정국을 촉발한 상황의 심각성이 다르다. 이에 따라 한국을 바라보는 대외 시각에도 차이가 있다. 2016~2017년에는 대통령을 체포하는 소동도 없었고 법 절차에 따라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당시 외교 파트너들에게 무언가를 많이 설명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지금은 전 세계가 ‘어떻게 한국이 이럴 수가 있나’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임성남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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