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8일 전북 전주시 JB금융지주 본사에서 열린 정기주주총회. 2대 주주인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얼라인)이 추천한 사외이사 2명이 이사회에 입성하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철옹성 같던 국내 금융지주 이사회 벽을 행동주의 펀드가 뚫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얼라인은 2022년 JB금융 지분 약 14%를 인수한 뒤 경영진에 사외이사 선임·배당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주총 이틀 전, 얼라인이 기선제압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일이 있었다. 얼라인이 법원에 JB금융과 그 주주인 핀테크 업체 핀다를 상대로 제기한 ‘의결권 행사금지 가처분’이 인용된 것. 법원 결정으로 지분 0.75%를 보유한 핀다의 의결권 행사가 제한됐다. 주총 결과에 영향을 주기는 어려운 지분율이다. 다만 법원 결정은 “현 경영진과 이사회의 전문성과 독립성에 문제가 있다”는 얼라인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얼라인은 JB금융와 핀다가 서로 상호주를 보유하고 있고, 특히 JB금융은 보유 지분이 10%를 넘으므로 상법상 서로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제한해야 하는 경우라고 주장했다. 상호주는 계열관계가 아닌 두 회사가 보유한 서로의 주식을 말한다. 상법 제369조 제3항에는 ‘회사, 모회사 및 자회사 또는 자회사가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의 총수의 10분의1을 초과하는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다른 회사가 가지고 있는 회사 또는 모회사의 주식은 의결권이 없다’고 돼 있다. 기업이 맞교환한 주식이 결국 대주주와 경영진의 우호지분으로 활용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JB금융이 직·간접적으로 보유한 핀다 주식은 15%다. JB금융이 핀다 주식 5%를, 자회사 전북은행이 5%를 직접 가지고 있다. 나머지 5%는 전북은행과 계열 벤처캐피탈인 JB인베스트먼트가 만든 신기술투자조합을 통해 보유하고 있다. 핀다는 ‘금융그룹-핀테크 동맹’을 맺는다며 JB금융 주식을 장내 매입해 취득했다. JB금융이 신기술투자조합을 통해 가지고 있는 이 5%를 두고 얼라인은 “상법상 의결권 제한 대상인 상호주에 해당한다”고 주장했고 회사 측은 아니라고 맞붙었다.
전주지방법원은 3월 26일 의결권 행사금지 가처분을 인용했다. 신청 19일 만이다. 이 결정을 이끈 법무법인 한누리는 집단소송에 특화된 로펌이다. 2016~2017년 대형 증권사 주가연계증권(ELS) 피해 소비자 집단소송, 작년 아이폰 성능저하 업데이트 관련 집단소송에서 소비자를 대리해 승소를 이끌었다. KT&G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 중인 행동주의 펀드 플래시라이트캐피털파트너스(FCP)도 한누리가 자문했다. 이런 굵직한 국내 집단소송 사건을 여럿 담당한 김주영(사법연수원 18기) 대표변호사와 박필서(38기)·구현주(변호사시험 4회) 변호사와 김동욱(10회) 변호사가 얼라인 대리인단에 이름을 올렸다.
◇ “주식, 펀드가 소유한 것” 주장에 “공동 소유도 의결권 행사 제한 대상”
이 사건의 쟁점은 ‘신기술투자조합을 통해 보유한 상호주도 상법상 의결권 제한 적용 대상인가’였다. 얼핏 보면 당연히 적용될 것 같지만 김앤장법률사무소(김앤장)를 선임한 JB금융 측은 “신기술투자조합이 인수한 주식은 펀드의 재산에 속하는 것이고, 투자자인 전북은행이나 JB인베스트먼트의 고유 재산과는 구별되므로 의결권 행사 제한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신기술투자조합이 보유한 핀다 주식은 전북은행이나 JB인베스트먼트의 것이 아니고 조합 펀드의 소유라는 것이다. 조합 그 자체에 법 인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한누리는 주식을 공동 소유하는 경우에도 상호주 의결권 행사 제한 대상이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JB금융 측은 조합이 사실상 법인에 준하는 ‘비법인사단’이라고 변론하기 시작했다. 민법상 비법인사단은 재산을 ‘총유’하는 집단을 말한다. 총유는 개개인이 지분을 갖지 않고, 집단이 공동 소유한다. 단체의 색채가 강하다. 대비되는 개념으로는 ‘조합’이 있다. 조합은 재산을 ‘합유’한다. 합유는 여러 사람이 조합을 구성하고 소유권을 조합 명의로 하는 것이다. 조합은 비법인사단에 비해 단체로서의 성격이 약하다는 특징이 있다. 조합원 개개인의 주체성에 힘을 싣는다.
한누리는 JB금융 신기술투자조합이 조합이란 점을 입증하기 위해 판례와 공시 자료 분석을 하고 회사 측에 조합 규약을 요청했다. 조합이 어떻게 운영되는 지 상세하게 명시된 내부 문서를 확보해 얼라인에 유리한 방향으로 법원 판단을 이끌기 위해서다. 당장 주총이 20여일 남은 상황에서 최대한 빨리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재판부에 신속하게 절차를 진행해달라고 거듭 독려했다. 법원을 통해 받아본 조합 내규에는 단체가 재산을 ‘합유’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 “상법 규정 회피해 우호 지분 확보하는 사례에 제동”
한누리는 한발 나아가, JB금융이 핀다와 상호 지분 매입을 한 것이 우호 지분 확보 목적이라는 주장도 폈다. 구 변호사는 “JB금융 측이 상호주 의결권 제한 입법 취지에 반해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핀다에게 주식 취득 자금을 지원해 주식을 취득하게 한 것이란 취지로 주장했다”라며 “이런 경우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지 않는다면 입법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고 말했다.
사건을 심리한 전주지방법원 제11-2민사부는 한누리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이 사건 조합은 비법인사단이라기보다는 구성원의 개인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인적 결합체로서, 여신전문금융업법 등 특별법 적용을 받는 민법 또는 상법상 조합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며 “조합에게 의결권을 행사하게 한다면 향후 주총에서 이뤄진 결의 효력 등에 관해 또 다른 분쟁을 초래할 우려가 다분하다”고 판시했다.
박 변호사는 “합유 형태로 주식을 소유하는 경우에도 상법상 ‘상호주 의결권 행사 제한’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최초로 판시한 판결”이라며 “적지 않은 회사들이 이런 방식으로 상법 규정을 회피해가면서 우호 지분을 확보하거나 지배력을 견고하게 할 수 있는데 이번 결정을 통해 편법적으로 악용하는 사례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고 말했다. 구 변호사는 “이 가처분이 얼라인의 주주 제안 캠페인 결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