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쿠팡, SK그룹, 세계 7위 해운업체, SPC를 상대로 부과한 과징금을 취소하라는 판단이 이달 서울고법에서 잇따라 나왔다. 이에 관련업계는 물론 법조계에서도 큰 파장이 일었다. 그동안 공정위는 행정처분에 대한 불복 소송에서 전부 승소한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많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기업이 당사자인 주요 사건에서 완패한 사례가 일주일 사이 줄줄이 나오면서 공정위가 체면을 구겼다.
이런 판단을 한 재판부는 서울고법의 공정거래 전담 재판부인 행정 6부, 7부다. 서울고법은 1심 판결·결정·명령에 대한 항소·항고 사건을 전담하며 민사·형사·행정 전문재판부가 있다. 행정부는 토지수용·조세·노동·공정거래 사건을 다루고 공정위, 금융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 독립규제위원회의 행정처분에 대한 불복 소송도 담당한다. 그중에서도 행정 3·6·7부는 공정거래 사건과 함께 조세(3부), 노동(6·7부) 사건을 같이 한다. 경제계의 주목을 받는 굵직한 사건이 많다.
그런데 이번 법원 2024년 사무분담·인사에 따라 행정6부에 경제법 박사 학위를 딴 판사가 새로 전입해 공정위가 긴장하고 있다. 주인공은 백승엽(사법연수원 27기) 판사다. 재판 업무로 눈 코 뜰새 없는 판사들 중 로스쿨에 진학해 법학전문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사례가 많지 않은데다 경제법, 그중에서도 공정거래 관련 논문을 쓴 경우는 흔치 않다. 백 판사는 2017년 발표한 ‘공정거래법상 일감몰아주기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법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일감몰아주기의 성립요건과 위법성 판단 기준을 검토하고 본인의 해석론을 제시했다.
행정7부에 근무중인 배상원(34기) 판사 역시 경제법 박사다. 배 판사는 박사 학위 논문인 ‘배타조건부 거래’에서 사업자가 자신과 거래하는 상대방이 경쟁사업자와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행위의 부당성과 새로운 접근방법, 규율체계를 제시했다. 행정7부는 최근 공정위가 15년간 한국~동남아 항로의 해상운임을 담합했다며 96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해 세계 7위 컨테이너선사 에버그린이 제기한 시정명령 취소 사건에서 선사 손을 들어줬다. 작년 12월에는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지분 100%를 보유한 케이큐브홀딩스가 금산분리 규정을 어겼다며 공정위가 부과한 시정명령을 취소하기도 했다.
재판부에 특정 분야 박사 학위를 딴 전문가가 있는 것이 판결의 경향성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최근 판결들이 유독 주목을 받았을 뿐, 행정3·6·7부에서 공정위의 손을 들어준 판단도 꾸준히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지난 8일 있었던 아파트 기초공사용 콘크리트 파일 제조사 과징금 취소소송에서 행정7부는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해당 재판부에 재판장 포함 3명의 판사가 있고 공정거래 사건만 담당하는 게 아닌 만큼 특정 판사의 판단이 절대적일 수도 없다. 행정 3·6·7부가 담당하는 전체 사건 중 공정거래 사건 비중은 매년 다르지만 대략 20~30% 정도로 알려졌다.
법조계 일각에선 공정거래 전담 재판부에 경제법 박사 판사가 둥지를 트는 것에 대해 기대감이 크다.
국내 한 대형로펌의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공정거래법 법리가 다른 법률보다 복잡하다고 할 수는 없다”라면서 “하지만 변호사들 사이에선 재판부가 공정위에 대해 경쟁법을 오랫동안 집행해온 기관인 만큼 적절하게 행정처분을 했다는 생각을 전제하고 판단을 할 거란 우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처분관청의 판단을 1차적으로 신뢰하기보다 전문지식을 토대로 양측이 주장하는 법리와 논리를 철저히 따져볼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