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2014년 출시한 '갤럭시 노트4 엣지'. 엣지 디스플레이를 사용해 기획한 첫 번째 스마트폰이다./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2014년 출시한 ‘갤럭시 노트4 엣지’(edge·모서리)는 시장에 기존에 없던 새로운 스마트폰 디자인을 제시했다. 엣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오른쪽 모서리가 휘어져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 휘어진 옆면에 보조 기능을 탑재해 화면을 더 넓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스마트폰 액세서리 시장도 들썩였다. 엣지에 딱 맞는 보호필름이 필요해진 것이다.

전자부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화이트스톤은 시장에 휘어진 옆면까지 붙일 수 있는 보호필름이 없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이를 사업 기회로 본 화이트스톤은 2016년 ‘엣지’용 보호필름을 개발했다. 기존 보호필름 제조업체들은 투명테이프(OCA)를 이용해 필름을 만들었는데, 이런 방식은 엣지용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액정과 필름이 완전히 붙지 않고 특히 엣지 부분이 들뜨는 현상이 나타나기 쉬웠다. 이에 화이트스톤은 물처럼 점도가 낮은 ‘점착 조성물’을 사용해 액정에 필름이 딱 붙도록 만들었다. 투명테이프(OCA) 대신 액체 형태 투명접착제(OCR)를 활용했다.

화이트스톤은 엣지용 보호필름에 대한 특허를 2016년 출원했다. ‘돔글라스’라는 상표로 제품 판매도 시작했다. 엣지가 잘 팔리면서 엣지용 보호필름도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곧 위기가 찾아왔다. 중국산 저가 보호필름을 수입하는 업체들이 우후죽순 엣지용 보호필름이라며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 한 장에 5000~1만원에 팔아 가격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했다. 품질 차이가 분명하지만 이를 알 리 없는 소비자는 저렴한 제품을 찾아 나섰다.

법무법인 바른 이성훈 변호사(왼쪽)와 정영훈 변호사가 '보호필름 특허'를 지켜냈다./법무법인 바른 홈페이지

◇ 점착 조성물로 붙이는 보호필름 특허내자 경쟁사 “액정 붙일 때도 쓴다”

공들여 만든 제품의 특허 침해 사건은 법무법인 바른이 맡았다. 바른 이성훈 변호사(사법연수원 14기)·정영훈 변호사(변호사시험 1회)가 투입됐다. 정 변호사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변리사로 근무했을 만큼 관련 분야에 전문성이 풍부했다. 이들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동시에 모방 제품 상당수가 중국에서 만들어져 넘어온다는 점을 확인하고 무역위원회에 수입·수출 금지를 신청했다.

수입 금지 결정이 나오자 업체들은 2020년 특허무효심판을 청구했다. 정 변호사는 “특허를 무효 시키려면 비슷한 선행발명이 있다고 주장해야 하는데 이들이 제시한 선행발명 중 하나가 액세서리인 보호필름이 아닌 액정패널 공정에서 ‘점착 조성물’을 쓸 수 있다는 걸 제시했다”고 말했다. 점착 조성물을 활용한 부착은 OCR 방식의 다른 이름인데, 액정패널을 스마트폰 몸체에 붙일 때도 사용된다. 한 업체는 깨진 액정패널을 갈아 끼우는 유튜브 영상을 제시하기도 했다. 액정패널을 붙이는 원리와 방식이 보호필름 부착과도 유사해 영상을 보면 화이트스톤이 개발한 제품을 떠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허 관련 분쟁은 특허심판원을 거친다. 산업재산권 분쟁 해결을 위해 설립한 합의체 심판기관으로 사실상 1심에 해당한다. 특허심판원은 사건을 들여다본 지 1년 만에 일부 특허를 무효라고 판단했다. 특허가 인정되려면 제품이 ‘진보성’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스마트폰 제작 과정에서 ‘액정패널’을 붙일 때 점착 조성물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보호필름 부착도 생각해 낼 수 있으므로 ‘진보성’이 없다고 봤다. 모방제품을 만드는 업체들이 사실상 ‘판정승’을 거둔 것이다.

대전광역시 서구에 있는 특허법원 전경./특허법원 홈페이지

◇ “부착원리, 기존 업체들과 달라” 바른, 법원에서 결과를 뒤집어

특허심판원의 결정에 불복한 바른은 특허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동시에 재판부를 확실하게 설득하고 기존 화이트스톤 제품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특허심판원에 특허 정정심판을 청구했다. 특허 정정심판은 특허 범위 등에 관한 내용을 정정하겠다는 청구다.

특허법원에서 진행된 소송에서 재판부가 화이트스톤의 글라스 보호필름이 ‘액세서리’인지 ‘액정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인지 혼동된다고 언급했던 것을 염두에 뒀다. 재판부가 특허를 받은 제품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면 특허 권리를 인정 받기는 더욱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에 특허 제품을 ‘표시장치의 표시영역을 보호하는 곡면 커버 글라스 보호필름’이라고 설명한 것에서 나아가 ‘점착 조성물을 필름 무게로 표시영역 사이에 퍼지게 한 후’ 등 부착 원리를 구체화 했다.

그러나 정정심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바른은 정정청구 소송을 특허법원에 제기하며 반전을 노렸다. 특허법원은 정정소송을 먼저 살폈다. 특허가 정정되면 권리가 바뀌므로 그 이후에 무효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수순이다. 정 변호사는 화이트스톤이 만든 보호필름이 기존 보호필름 제작업체가 이용하지 않는 방식(OCR)을 이용했으며 그 결과 경쟁사보다 품질에서 우위인 ‘진보성’이 있는 제품을 만들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힘을 쏟았다.

그는 “출원 당시 쉽게 생각할 수 없었던 방식이라고 주장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상대방은 각종 선행발명을 제시하며 보호필름이 전체를 덮는다는 ‘풀 커버’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며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엣지 부분을 못 덮는 제품도 많았고 어떤 업체는 엣지를 덮었다고 ‘풀 커버’라는 용어를 썼지만 실제 부착된 부위는 구부려진 엣지에만 한정돼 보호필름 가운데가 뜨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바른은 화이트스톤 제품이 ‘커버’가 아니라 ‘부착’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차별성을 부각했다.

‘커버’와 ‘부착’은 기능에서도 차이가 컸다. ‘커버’는 완전히 들러붙지 않아 보호필름 일부분이 떠올라 터치감이나 색을 인지할 수 있는 시인성이 떨어진다. 바른은 풀 커버 제품은 기능적으로 문제점이 있다는 점을 반론 근거로 삼았다. 화이트스톤의 보호필름은 ‘부착’을 통해 당시 기술적 문제를 해결했으므로 진보성이 있다는 주장을 전개했다.

◇ 법원 “특허심판원 결정 취소”…당시 사고방식 뛰어넘는 제품

기대하는 성적표를 받지 못한 실정에서도 법리에서 빈틈을 공략한 바른. 결국 특허법원은 지난달 특허의 진보성이 있다며 특허심판원 결정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갤럭시 노트4 엣지가 지금은 많이 사용되지 않고 있지만 ‘엣지 디스플레이’는 여전히 많은 스마트폰에 적용되고 있다. 엣지형 보호필름이 현재도 팔려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특허 가치는 값으로 매기기도 어렵다.

정 변호사는 “당시에는 OCR 방식을 보호필름에 적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자 재판부가 ‘너희는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액정 중앙에 점착 조성물을 떨어뜨리고 보호필름을 올리면 필름 자체 무게로 점착 조성물이 번지게 되고 표면장력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며 “이러한 주장을 재판부가 받아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변호사는 “특허에 무효 사유가 있는지 3년간 공방이 이어졌다. 특허심판원 결정을 뒤집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고 말하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러면서 “기본에 충실해 특허출원 당시 기술적 수준과 통상 기술자의 사고방식, 발전 동향이 무언지를 꼼꼼하게 파헤쳤기 때문에 결과를 뒤집은 것”이라며 “(모방 업체 주장처럼) 선행발명을 아는 사람이라면 통상의 기술 발전 동향에 따라 발명품을 쉽게 생각해 낼 수 있다는 주장을 증거와 법리로 깬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