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강도 긴축 여파가 계속되며 우리 경제에도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한 총리는 이날 ‘우리 경제가 지금 위기에 처했냐’는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을 받고 “세계 모든 나라가 고통스러워하지 않느냐”며 이 같이 답했다.
일부 기업들은 이미 경제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대법원 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 2월 전국 법원에 접수된 법인 파산 신청은 총 100건에 달했다. 작년 2월(57건)과 비교해 두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1월엔 105건의 파산 신청이 접수됐는데, 이는 역대 1월 통계 중 최다 기록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한 언론사에서 주최한 행사에 참석해 “건설사들이 일주일에 2~3곳씩 부도가 나고 있다”며 “내년까진 이런 기업 구조조정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무총리에 이어 금융당국 수장까지 나서서 경제 위기를 시인한 지금, 우리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법무법인 율촌의 김철만(사법연수원 23기)·김기영(27기) 변호사는 명실상부한 기업 구조조정 전문가다. 김철만 변호사는 판사 출신으로 대우그룹, 쌍용자동차, 한진해운 등의 회생 절차에서 채권·채무자를 대리했다. 현재는 도산법연구회의 이사이자 서울회생법원 조정위원을 맡고 있다. 김기영 변호사는 STX의 조건부 자율협약을 시작으로 동부메탈, 포스코플랜텍, 현대상선의 구조조정을 자문했다. 공모사채의 출자전환 등을 조건으로 한 국내의 대형 자율협약·워크아웃 사례를 전부 자문한 유일한 변호사다.
얼마 전, 서울 삼성동 율촌 본사에서 두 변호사를 만나 우리 기업들의 현주소와 구조조정 방안, 구조조정 추진 시 유의해야 할 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었다.
-올해 경기가 경착륙해 전세계적으로 한계기업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이 나왔다. 현 상황을 진단한다면.
김기영 변호사(이하 김기영) : “2016~2018년에도 도산이나 구조조정 얘기가 계속 나왔으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유동성이 늘며 유예됐던 것 같다. 아직 불황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보긴 어렵다. 초입 단계에 불과하다. 불황이 본격화한다면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해온 일부 소형 금융기관들이 채무자들의 대출 원리금 미상환으로 인해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김철만 변호사(이하 김철만) : “과거 IMF 외환위기는 대기업들이 외화에 지나치게 의존하던 상황에서 국가의 전반적 금융 시스템 문제가 불거지며 발생했다. 이후 우리 대기업들과 금융기관들은 경험을 쌓으며 내부 통제를 잘 해왔다. 그 덕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충격을 덜 받았고, 현재도 금융 시스템이나 산업의 건전성이 전체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대기업들은 괜찮을 것이다. 다만, 팬데믹 기간 동안 기초체력을 기르지 않고 금융 혜택에만 의존해 생존해온 일부 한계기업들은 더이상 견디지 못할 것이다. 시스템이나 산업의 전반적 위기가 아니라, 일부 허약한 기업이나 개인들에게 문제가 될 것으로 본다.”
-특히 어떤 업종이 위험할까.
김기영 : “건설사들이 위험하단 얘기가 가장 많이 나온다.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미분양이 늘고, 그로 인해 공사대금을 조달할 수 없게 된 중소형 건설사들과 분양 수입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시행사들이 실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다음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 관여한 저축은행이나 중소 증권사들이 위험하다. 자금 상황이 안 좋다는 얘기가 시장에서 계속 나오고 있다.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들도 자금줄이 많이 막혀있는 상황이다. 투자를 받아야 그 돈으로 연구 개발을 하고 회사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데, 투자자들 입장에선 금리 이상의 수익을 내지 못할테니 지갑을 닫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사업의 실체가 뚜렷하지 않거나 장래 성장성을 내세워 저금리에 의존해 투자를 유치해온 회사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기업 도산이 3년 만에 증가했고, 고물가와 인력난 때문에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도산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건설업과 운수업에서 도산 사례가 특히 많다는데, 우리나라와 일본이 처한 상황은 어떻게 다른가.
김기영 : “일본은 장기 불황을 겪고 있다. ‘잃어버린 30년’이라고 하지 않나. 우리나라도 비슷하게 따라갈 것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일본은 전체 경제에서 내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서 오랫동안 저금리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 우리는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 외부 영향을 일본보다 훨씬 더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김철만 : “매년 10월 말에서 11월 초 한중일 3개국 도산법학자들이 모여서 심포지엄을 한다. 얘길 들어보면, 일본 경제는 주거래 은행을 중심으로 한 관치금융이 아직도 지배적이다. 한 은행이 ‘저 회사는 내가 꼭 살려야겠다’고 하면 다른 은행들도 따라온다. 어떻게 보면 일사불란한 모습이다. 그러지 않으면 일종의 ‘왕따’를 당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혀 그렇지 않다. 각 은행의 사정에 따라서 입장이 전부 다르다.”
-우리 기업들은 경제 위기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김철만 : “사실 회사 상태는 채무자가 가장 잘 안다. 신규 차입이나 투자 유치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여의치 않다면 채무자 입장에선 선택지가 몇 개 없다. 법정 도산 절차를 선택하거나 법정 외에서 자율적인 수단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 중 택일해야 한다. 전자는 회생을 통해 채무조정을 받고 다시 재무 상태가 좋아지면 정상적인 상태로 복귀하는 것이며, 후자는 워크아웃이나 채권금융기관과의 자율협약 등을 통해 채무조정을 해서 상태를 개선시키는 방법이다. 이도저도 안 되는 최악의 경우엔 파산 밖에 답이 없다.
회생절차는 부채 경감, 회사 분할이나 매각, 신주 발행, 주식 출자 혹은 소각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뤄진다. 다만 신주를 발행하면 기존 주주 지분율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주주들 입장에선 탐탁지 않게 여길 수 있다.
워크아웃도 마찬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일반적인 회생과 달리 상법상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최근 금융위에서 기초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어떻게 개정될지는 두고봐야겠지만, 기초법 절차와 회생절차를 연결해보자는 얘기가 나온다. 구조조정을 하다가 회생으로 전환해서 바로 회사를 정상화하는 방법도 논의되고 있다.”
-기업이 파산 절차를 밟을 때 어떤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김철만 : “파산절차는 담보권자의 담보권 행사를 방해하지 않기 때문에, 담보권 행사 후 남은 잔존재산을 현금화한 후 이를 배당하게 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배당률이 높지 않다. 파산 절차에서 통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로는 부인권(채무자의 행위에 따라 채권자들의 배당이 줄어드는 경우, 채무자의 행위 효력을 부정하기 위한 파산관재인의 권리)에 관한 소송이나 파산관재인의 재단 재산 현금화를 위한 소송 등이 있다.”
-구조조정 방법을 채무자가 아닌 채권자가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경우도 많지 않나.
김기영 : “훨씬 많다. 채권금융기관이 볼 때 ‘이 회사는 자율협약 등을 통해 살아날 수 있겠다’ 싶으면 워크아웃을 선택한다. 채권단에 금융기관이 많아서 서로 의사 합치를 이뤄 구조조정 방안을 쉽게 도출할 수 있는 구조라면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이 효율적이다. 반대로 채권자가 강제적 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법정 관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금융기관 채권자 외에 일반 상거래 채권자나 기타 일반 채권자들의 비중이 높은 경우가 여기 해당된다. 이들은 금융기관 채권자들이 나선다고 한들 쉽게 잘 따라오지 않고, 따라올 수도 없다. 그런 경우 어쩔 수 없이 강제적인 회생 절차에 들어가는 게 더 효율적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M&A를 시도하는 경우도 많다. 여러 이해 관계자들의 관계가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이해가 어떤 방식으로 합치되느냐에 따라 구조조정 방법이 달라진다고 봐야 한다.”
-회생을 선택하면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다. 법정관리를 무사히 졸업하고 회생에 성공하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김철만 : “사업에서 수익이 날 수 있도록 체질 개선을 하는 것이 우선이며, 회생절차에서 부담 가능한 수준으로 부채 규모를 조절해 정상적인 부채를 부담하는 회사로 재탄생하는 게 중요하다. 사업성이 없는 부문이나 비주력사업, 비수익자산의 경우 신속히 매각해 수익성 있는 부분만 남겨야 한다.”
-회생 시 채권자가 유의해야 할 사항은.
김기영 : “채권자들은 법원이 정한 신고 기간 내, 아무리 늦어도 회생계획심리를 위한 관계인 집회 이전에 채권 신고를 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못해 회생 계획에 그 권리가 반영되지 않으면, 권리를 상실하게 된다. 또 각 채권자가 가진 담보권의 내용과 가치에 따라 회생 계획에서 변제 받는 내용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잘 검토해야 한다. 그 외에도 최근 ‘채권자와 채무자의 계약이 미이행쌍무계약(회생 절차가 개시될 때 양 당사자의 의무 이행이 완료되지 않은 계약)일 경우 상대방이 회생 절차에 들어가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더라도 계약해제권이 무효일 수 있다’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이 나왔는데, 이처럼 계약 해제를 했다가 오히려 상대방으로부터 손해배상 청구를 당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계약해제권이 적법하게 발생한 것인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워크아웃은 어떤 조건하에 이뤄지나.
김철만: “주채권은행이 ‘우리가 요구하는 조건들을 충족해오면 채무조정을 해주겠다’고 제안한다. 여기서 말하는 ‘조건’이란, 다른 채권자들에게도 채무조정에 대한 동의를 받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공모사채 비중이 높다면 개인 투자자 수천명을 다 찾아가서 동의를 받아야 할 수도 있다.”
김기영 : “그런 문제 때문에 워크아웃이 개시되지 않다가 ‘출자전환 조건부 자율협약’을 통해 돌파구를 찾은 사례가 바로 우리가 수행했던 STX 케이스다. 당시 STX는 조선 등 계열사들의 재무 상태가 나쁘지 않았음에도 공중분해되는 상황이었다. 공모사채 투자자들의 동의를 받으려면 상법에 따라 사채권자 집회를 열고 조건 변경에 대한 의결을 거쳐 결의를 법원에서 인가 받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반 투자자 입장에선 회사가 망하지만 않는다면 채권은 돌아올 수 있는데, 회사 채권 절반을 주식으로 바꾸고 이자율을 낮추며 만기를 연장해달라고 하면 동의해주겠나.
당시 대부분의 대형로펌들도 워크아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처음 성공한 것이다. 이후 현대상선과 대우조선해양도 비슷한 방법으로 채무조정을 했다.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에 적합하지 않은 회사도 이런 조건부 채무조정을 통해 도산 없이 구조조정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채권자가 지나치게 많다면 회생이 오히려 더 쉬운 길 아닌가.
김철만 : “업종의 특수성에 따라 회생이 독이 되는 경우가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수주 계약을 체결해서 돈을 버는 회사다. 회생에 들어가면 건조 중인 선박들에 문제가 생긴다. 애초에 회생이라는 옵션을 택할 수 없었던 것이다.
김기영 : “회생에 들어가면 수주 계약이 취소돼서 선수금 환급보증(RG·조선사가 배를 건조해 선주에 넘기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조선사가 미리 받은 선수금을 금융기관이 대신 물어주도록 하는 보증)에 디폴트가 발생한다. 어떤 채무 계약에는 ‘크로스 디폴트(교차부도)’ 조항도 있기 때문에 RG 하나에서 디폴트가 발생하면 회사 전체가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 운송 계약이 끝나고, 해운 회사들은 얼라이언스가 전부 끊겨버린다. 해외 발주처들은 계약을 해지해버리고 다른 조선소에 맡기면 그만이다.”
-채무자는 구조조정에 들어가기 전 어떤 점을 가장 유의해야 하는지.
김기영 : “인가가 날 때까진 자신이 번 돈으로 일정 기간 버텨야 한다는 걸 유념해야 한다. 일정 수준의 현금이 있어야 한다.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도 응급치료를 견딜 체력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구조조정 절차에선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하다.
가장 큰 문제는 기업 오너가 위기의식을 제대로 못 느낄 때 발생한다. 구조조정 일을 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게 있다. 너무 늦게 착수해서 더 큰 어려움에 빠지는 회사가 많다는 것이다. 임원들 입장에선 오너나 의사결정권자에게 ‘계속 이대로 가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기 어렵다. 정확한 상황을 일깨워주면 화부터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론 ‘우리 회사에 아무 문제 없다’며 버티다가도 몇 달 지나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찾아오는 오너가 굉장히 많다.”
김철만 : “회사의 현 상태와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해 정말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불경기 상황에서는 선제적으로 구조조정 작업에 착수하는 게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자신의 상황에 대해 보수적으로 평가하고 만약의 사태가 벌어질 때 어떻게 할 지 대책을 미리 강구해야 한다. 일찍 시작한다면 서너가지 옵션 중 가장 좋은 선택지를 고를 수 있지만, 두세달 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도산뿐이다. 몇달만 빨리 액션을 취했어도 경영권을 지켰을 텐데 ‘어떻게 되겠지’ 하며 안일하게 있다가 경영권을 놓쳐버린 오너들도 봤다.
또, 모든 구조조정 절차는 집단적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집단적 절차를 잘 따라가지 않으면 내 권리를 상실하거나 손해배상 청구를 당할 수 있다. 도산 절차에 돌입하면 각종 계약이 우리가 알고 있는 민사적 절차에 따라 실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 구조조정에 문제점이나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김기영 : “산업은행이 국내 기업들의 구조조정에 대부분 참여하고 있음에도 구조조정 전문가가 별로 없다는 게 아쉽다. 국책 은행이다보니 공무원 조직과 성격이 비슷해, 2~3년마다 한번씩 자리를 옮긴다. 간혹 회생 자체를 모르는 분이 구조조정 실무를 맡기도 할 정도다. 위기가 터질 때마다 다시 처음부터 새로 공부해야 하니, 매번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산업은행뿐 아니라 변호사들도 마찬가지다. IMF 때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는 도산 구조조정 전문 변호사가 각광 받았지만, 이후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다른 업무를 하고 있다. 5~10년이 지난 경험은 활용도가 높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