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전지 양극재 전문기업 엘앤에프가 3000억원 규모의 분리형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주주 우선 배정 후 일반공모 방식으로 발행하겠다고 했다. BW는 사모로 발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보니 엘앤에프의 이번 결정에 시장 관심이 쏠린다. 사모 투자자 모집에 난항을 겪던 엘앤에프가 내달 10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 풋옵션 행사를 앞두고 기존 주주에게 손을 벌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하면 주주 반발에 부딪히니, 고민 끝에 주주배정 방식의 BW 발행 카드를 꺼냈다는 것이다.

이번 BW의 신주 행사가액은 5만2원으로, 현재 주가(6월 18일 종가 4만8950원)를 웃돈다. 향후 주가 상승 여력이 높아야 기존 주주의 참여 유인이 생긴다. 최근 골드만삭스가 엘앤에프에 대한 투자의견을 ‘매도(SELL)’로 제시하며 목표주가를 8만원에서 4만원으로 대폭 내린 가운데 주가까지 힘을 쓰지 못하면 이 회사는 CB·BW 이중 자금난에 직면할 수도 있다.

엘앤에프 인터배터리 2025 부스./ 엘앤에프 제공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엘앤에프가 지난 16일 발행 공시한 3000억원 규모의 분리형 BW는 만기 5년, 표면이자와 만기이자율은 각각 1.0%와 3.0%다. 기존 주주에게 우선 공모한 뒤 실권주가 발생하면 일반투자자에게 공모한다. 남은 실권주는 4개 증권사가 나눠 인수한다.

회사는 BW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 중 2000억원을 리튬인산철(LFP) 양극재 부지, 공장건축, 기계장치 등 생산능력 확보를 위해 쓰겠다고 했다. 나머지 1000억원은 시설자금과 운영자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분리형 BW는 신주인수권과 채권이 분리돼 각각 독립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구조다. 투자자는 채권만 보유할 때 만기 시 원금 보장과 함께 연 복리 3%의 이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동시에 향후 주가 상승 시 신주인수권 권리 행사를 통해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다. 엘앤에프는 이번 자금 조달을 통해 LFP 사업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기존 주주의 투자 매력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는 점이다. BW의 채권 수익률이 5년 만기 기준으로 연 3%에 그치는 탓이다. 또 신주인수권 행사 가격이 현재 주가보다 높아 주가 상승 가능성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신주인수권의 가치가 높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결국 LFP 신사업을 통해 주가를 끌어올려야 하지만, 이제 생산시설 확보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 단계라 갈길이 멀다.

증권가에선 신사업 성과에 대한 의구심에 더해 엘앤에프의 자금난 가능성을 우려한다. 2차전지가 유망 산업이긴 하지만, 재투자 부담 때문에라도 당분간은 유의미한 이익 창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이차전지 업종 연구원은 “미국의 탈중국 기조 아래 LFP 양극재 사업에 진출한 것은 방향성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양산까지 아무리 빨라도 2027년은 돼야 할 것인데, 현재 회사의 자산과 재무 현황이 악화된 상황이라 다들 디폴트 리스크를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엘앤에프는 2023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영업적자와 당기순손실을 기록 중이다.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엘앤에프에 대한 투자의견을 ‘매도’로 하향 조정하고, 목표주가를 8만원에서 4만원으로 대폭 내렸다. 골드만삭스는 엘앤에프가 LG에너지솔루션(373220)에 매출의 80% 이상을 의존하는 등 고객사 집중도가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는 엘앤에프의 부채비율이 내년 376%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며,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이자비용)은 0.3%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당해 이익으로는 이자도 갚지 못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오는 7월에는 지난해 12월 발행한 6회차 CB의 풋옵션 행사 기간도 다가온다. 총 1000억원 규모로, 전환가액은 10만3974원이다. 현재 주가는 전환가액의 절반 수준으로, 주식으로의 전환 가능성은 사실상 낮아 투자자가 조기상환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번 BW 발행이 사실상 일반 주주에게 손을 벌린 모습이란 해석이 나온다. BW를 주주배정 공모 방식으로 발행하는 것이 업계에서 자주 쓰는 방식은 아니란 이유에서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사모 발행 방식이 절차와 비용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선호된다”며 “공모 방식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여 절차가 복잡하고 인수 수수료 등 각종 비용이 높게 책정되는 경향이 있어 자금 조달이 어려운 상황에서 선택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실권주 인수수수료율(12%) 역시 높은 수준이다. 한 인수금융 업계 관계자는 “인수수수료율은 자금 조달의 위험 부담을 나타낸다”며 “이차전지 업황이 워낙 좋지 않다 보니 인수수수료율이 상당히 높게 설정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엘앤에프 관계자는 “자본 확충과 재무 건전성 개선뿐 아니라 제품 포트폴리오 확장을 통한 성장 동력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BW 발행 이후에도 적극적인 주가 부양 활동을 통해 재무구조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