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 방산주 열풍이 지속되고 있지만 국내 유일한 탄약 생산업체 풍산(103140)의 주가는 다른 방산주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최근 풍산 주가도 많이 상승했지만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현대로템, LIG넥스원과 비교하면 상승폭이 크지 않은 모습이다. 풍산의 저평가가 이어지면서 증권업계에서는 회사가 과거 발표했다가 주주 반대로 철회했던 분할 계획이 다시 논의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풍산은 구리를 가공하는 신동 사업과 탄약을 만드는 방위 사업 두 가지를 영위하고 있다. 문제는 성장성이 큰 방위 사업과 정체된 구리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경영 비효율이 발생하고, 주식 저평가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풍산이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기업설명회(IR)마다 분할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검토하고 있다”고 답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회사 측은 “오랫동안 분할을 검토하고 있지만, 지금 당장 구체적으로 논의되거나 진행되고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최근 방산주 주가가 상승하면서 회사 측으로 분할 가능성에 대한 문의가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자들이 풍산의 분할 가능성에 크게 주목하고 있다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풍산이 다시 분할을 결정할 경우 인적분할에 나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성장 사업만 빼내 존속 기업은 껍데기만 남기는 물적분할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데다, 풍산은 지난 2022년 물적분할 계획을 발표했다가 주주 반발에 부딪혀 철회한 경험이 있다.
풍산은 지난 2022년 방산사업부를 풍산디펜스로 물적분할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풍산은 기존 주주 가치가 훼손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풍산디펜스를 물적분할 한 뒤 비상장 상태로 유지하겠다고 했다. 분할된 풍산디펜스의 상장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항으로 못박아 주주들의 불안을 잠재우려고 했다. 하지만 주가가 급락하는 가운데 주주 반발이 이어졌고 회사는 결국 분할 계획을 철회했다.
그러는 사이 올해 주식시장에서는 방산 업종의 주가 질주가 이어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필두로 한 현대로템과 LIG넥스원 등 방산주는 올해 들어 폭등세를 보였다. 동맹국에 안보를 지원하던 미국이 이를 지렛대 삼아 통상 압력을 높이면서 유럽 각국이 군비 증강에 나서자 한국 방산 기업에 일감이 몰려든 덕분이다.
연 초 35만원대였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는 시가총액이 현대차(005380)를 뛰어넘으면서 황제주(주가 100만원 이상) 등극을 눈앞에 뒀다. 현대로템 주가는 지난 6개월 동안 300% 가까이 올랐고, LIG넥스원 주가는 연 초 대비 두 배 수준을 넘었다.
전통적인 방산주로 꼽히던 풍산 주가도 상승했지만, 다른 방산주와 비교하면 상승폭은 크지 않았다. 연초 5만원 수준이던 풍산 주가는 현재 10만원을 넘었지만, 다른 방산주와 비교하면 여전히 저평가된 상태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재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풍산을 제외한 국내 주요 5개 방산주의 12개월 선행 평균 PER이 약 30배에 거래되고 있지만, 풍산은 9~10배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풍산의 저평가를 해소하는 쉬운 방법은 성격이 다른 두 사업을 떼 내 별도의 회사를 세우는 것이다. 물적분할과 달리 기존 주주에게 신설 회사 주식을 같은 비율로 나눠주는 인적분할을 하면 두 개 법인이 사업에 맞는 가치로 평가받을 수 있다.
또 풍산은 이미 류진 풍산 회장→풍산홀딩스→풍산으로 이어지는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고 있다. 며칠 전 인적분할을 발표한 파마리서치(214450)의 경우 대주주에만 유리한 분할 비율을 결정하면서 주주의 반발이 거셌지만 풍산은 인적분할 이후에도 경영권이 변동되지 않아 부담이 크지 않다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방산 대장주로 올라선 비결 중 하나로 지난해 CCTV와 정밀기계사업 등 비주력 사업을 인적분할한 결정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한화비전(CCTV)과 한화정밀기계(반도체 제조 장비)를 떼어내는 인적분할을 단행했다. 순자산을 기준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신설 지주회사의 분할 비율은 9대1였다. 덕분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방산 기업으로써의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회사의 분할 결정이 어떤 방향으로 이뤄지는 지가 앞으로 풍산 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