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낮 서울 여의도 더현대백화점 지하 2층 ‘팝마트’ 매장. 인근 직장인 최모(27)씨는 점심시간 시작과 동시에 지하도를 달려 도착했지만, 매장을 둘러싼 긴 줄을 보고 한발 늦었음을 직감했다. 그는 이날 입고되는 ‘라부부 마카롱 1탄’ 키링 시리즈를 노렸다. 하지만 기다림 끝에 들어선 매장 안 해당 인형들 매대엔 벌써 ‘매진’ 표지가 붙어 있었다. 최씨는 “오늘은 실패했지만, 이 시리즈를 다 모을 때까지 계속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털북숭이 몸에 날카로운 이빨, 장난기 있는 웃음을 띤 정체불명의 피겨 ‘라부부’를 앞세운 중국 브랜드 팝마트가 올해 홍콩 주식시장의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말 홍콩에 상장한 팝마트의 시작은 초라했다. 공모가 38.5홍콩달러, 인형 한 개당 가격은 13.5달러에 불과했던 이 기업 주가는 지난 13일 기준 272.6달러까지 치솟았다. 상장 이후 300%, 특히 올 들어서만 200% 초고속 상승하면서 세계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날 기준 시장 가치는 3661억홍콩달러(약 64조원)로 올해 한국 주식시장 최고 스타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시가총액(45조원)을 가뿐히 넘어섰다.
◇털북숭이 피겨 회사, 최고 스타 주식으로
2010년 베이징의 한 쇼핑몰에서 장난감 편집숍으로 시작한 팝마트는 홍콩 출신 유명 아티스트 카싱 룽이 2015년 더 몬스터스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현재 Z세대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IP(지식재산권) 기업으로 떠올랐다.
구글트렌드에 따르면 올해 팝마트 검색량은 헬로키티를 바짝 추격 중이다. 헬로키티는 포켓몬에 이어 역사상 둘째로 높은 수익을 창출한 수퍼 IP로, 팝마트의 라부부가 글로벌 수퍼 IP 반열에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팝마트에 대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키덜트(어린아이 같은 취미를 즐기는 어른)의 수요에 힘입어 팝마트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소비자 브랜드로 떠올랐다”고 분석했다.
몸은 다 컸지만 아직 귀여운 게 좋은 ‘어른이’ 소비자들 덕을 보는 브랜드는 더 있다. 한물간 캐릭터로 여겨지는 일본의 원조 캐릭터 ‘헬로키티’의 산리오 역시 최근 1년 새 도쿄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140% 급등했다. 그간 디즈니 등에 밀려 고전하다가 지난해 키티 50주년을 맞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디지털화, 글로벌 확장 전략, 각종 브랜드와의 협업 등을 펼치며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키티·티니핑… ‘귀여움’이 돈 된다
한국에는 ‘캐치! 티니핑’을 앞세워 어린이들을 공략하는 SAMG엔터가 있다. SAMG엔터는 올해 첫 주가가 1만3220원이었는데, 16일 8만2500원까지 뛰어 상승률이 520%를 넘었다. 최근 대표 IP인 ‘캐치! 티니핑’을 활용해 에스파, 하츠투하츠 등 SM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들을 본뜬 티니핑 캐릭터를 만들고 각종 콘텐츠, 굿즈를 만든다는 소식에 주가가 더욱더 뛰고 있다.
이 기업들의 공통점은 ‘귀여움(cuteness)’을 한껏 뽐내는 캐릭터 IP로 소비자 주머니를 공략한다는 점이다. 특히 소셜미디어와 인플루언서의 입소문이 얽히면서 귀여움에 대한 소비가 빠르게 전파된다는 점도 특징이다. 지난 3월 블랙핑크 멤버 리사가 자신이 모은 라부부 백참(bag charm)들을 공개한 이후 팝마트 인기에 더욱 불이 붙었다. 모건스탠리는 “소셜미디어 효과는 팝마트 인기를 더욱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소셜미디어를 탄 인플루언서들의 자발적인 광고가 팝마트의 타깃 소비층인 젊은 성인 여성에게 정확히 소구했다”고 분석했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지난 11일 팝마트 목표 주가를 종전 216달러에서 329달러로 52% 올리고 중국 소비재 섹터 중 가장 주목할 주식으로 꼽았다. 송예지 하나증권 연구원은 “팝마트의 경우 주가가 단기 급등한 부담 때문에 변동성 확대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다만 동종 업계 평균 성장률의 2배를 뛰어넘는 압도적 매출과 순이익 성장세가 예상돼 중장기적으로 주가 상승이 예상된다”고 했다.